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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Jul 18. 2018

[샐 위 딴스]때론 살기 위해 춰야한다

몸이 달라진다고?! 마법 같은 춤의 세계


글/이은  

[독립, 하셨습니까] 저자. 작가이자 영화 만드는 일을 하며 무규칙이종댄서로 불리고 싶은 사람. 현재는 웨스트코스트 스윙과 주크댄스를 추고 있다. 



춤추며 나이 드는 할머니가 되고 싶었다. 구부정한 어깨를 하고서 걷다가도 음악이 흘러나오면 눈이 번히 뜨이면서 초인마냥 허리가 와자작 펴지는 그런 모습을 늘 떠올리곤 했다. 땅을 쳐다보고 할머니처럼 발을 끌며 걷던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종일 학교에서 친구들의 괴롭힘과 따돌림을 받고 나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든 상태로 패잔병처럼 집에 오곤 했다. 그때 내 모습이 얼마나 처량했는지 낯모르는 아저씨가(아마 공사장 잡부였을) “너 무슨 일 있니?”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열 살 무렵부터 고질적인 어깨통증은 그래서 생겼다. 세상이 온통 무거웠고 얼른 어른이 되어 더 큰 곳으로 나갈 날만 꿈꿨다. 운동회 준비를 하느라 매스게임 안무 같은 것을 하면 언제나 주목받고, 칭찬을 받았다. 그때만큼은 날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애들도 날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니 춤이 소중할 밖에.   


21살 무렵 처음 춤을 추기 시작했으니 십여 년을 어깨가 굳은 채 거의 앉은 자세로 생활한 것과 다름없었다. 그나마 춤을 추고서는 통증이 별반 없었지만 이를 그만두자 몸에 문제가 생겼다. 30대 중반을 넘겨 척추측만이 온 것이다. 수술을 해야 할 만큼 심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에스 자로 휜 척추는 내장을 압박했고, 순환계에 문제가 생겼으며 신경통으로 양치질을 하다 손목이 아파 ‘억’ 소리 나는 지경이 되었다. 결국 살기 위해 몸을 바로잡고, 이를 유지할 근력을 갖추기 위해 운동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빚을 내서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고, 유기농 먹거리로 식단을 채웠다. 다시 춤도 시작했다.  


다행히 내 몸은 춤을 기억하고 있었다. 한 번 배워두면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는 것이 춤의 매력. 곁가지를 치듯 다른 춤으로 옮겨가도 습득해놓은 것들은 큰 어려움 없이 활용할 수가 있었다. 20대 초반 올드스쿨 힙합을 추면서 파워풀하고 큰 무브먼트에 익숙해졌고, 이제는 이를 한정된 커플 춤의 문법 안에서도 발산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솔로 댄서로서의 장점을 커플 춤에서 자신을 돋보여야 할 순간에 비기처럼 짠~ 꺼내놓으면 된다(물론 아주 많은 연습과 적절한 센스, 타이밍 캐치가 필요하다).  


다행히 지금 추고 있는 웨스트코스트 스윙(웨코)과 주크댄스는 개개인의 댄서 역량이 필요한, 어찌 보면 현대무용스러운 춤이다. 둘이 함께 움직이지만 공작새처럼 춤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팔로워의 롤을 수행하려면 우선 곧고 바른 몸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 주크는 ‘댄서를 위한 춤’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웨이브와 아이솔레이션은 기본이어서 춤 초보에겐 좀 버겁다. 그 와중에 주크는 굽이 있는 신을 신을 때가 많은데, 이것은 아직 적응 중이다. 작년에 다친 발목이 아직 완전하지 않아서 4센티 이상은 무리다. 힐이라고 해도 사실 여성들이 멋으로 신는 하이힐이 아니고, 충격을 흡수하는 쿠션이 내장된 댄스슈즈는 그보다 훨씬 편하다. 게다가 같은 디자인이라도 발 모양에 딱 맞춰서 제작하기에 피로도 덜 쌓인다. 걸그룹이 괜히 힐을 신고 춤을 출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   



커플 댄서들은 생각보다 연령대가 높아서 춤을 추기 전후로 몸을 잘 풀어주고 평소에도 요가나 스트레칭으로 관절을 돌보며 유연성과 근력을 다져야 한다. 내가 커플댄스 입문 당시에 췄던 스윙댄스(린디합)는 20대 중후반에서 30대가 주연령대이고(활동량이 갑!), 웨스트코스트 스윙, 살사와 탱고는 그보다 높은데 아예 중년댄서들을 위한 동호회가 따로 존재하기도 한다. 카페 등 온라인 공간에서 연령을 제한하는 동호회들도 있는데 그것은 누구에게나 오픈했을 때 과도한 작업이나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대개 ‘어린 여성 손 잡으려고 오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호회마다 운영진이 내규를 만들어 공지하고 있고 여러 문제를 예방하거나 일어났을 때 해결하기 위해 규모가 큰 곳에서는 아예 ‘윤리위원회’ 등의 문제해결기구를 따로 두기도 한다. 


춤을 추던 도중 언어적&신체적 성희롱을 당하면 춤을 중단하거나 끝난 후라도 문제를 제기하면 된다. 말처럼 쉬운 건 아니고 모든 경우가 잘 해결된다고 보기도 어렵지만,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킨 댄서는 나중에라도 도태되기 때문에 그때그때 필요한 증언을 확보해두는 것이 좋다. 증거가 없더라도 몇 월 몇 일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록해두는 것, 그리고 신뢰할 만한 댄서에게 이를 얘기해두는 일 등이다. 단톡방에서 계속 (우스개로) 야한 이야기를 하는 회원이 제제를 받는 것도 본 적이 있다.      


춤마다 허용되는 터치가 있고, 이건은 서로의 약속이고 규칙이다. 이를 스킨십으로 착각해서는 안 되고, 댄서의 몸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것. 

춤마다 허용되는 터치가 다르지만, 신호를 주고받기 위한 것이지 스킨십과는 명백히 다르다. 손이나 등을 잡고 춤을 추는 것과 그 손을 더듬거리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 실수로 그럴 순 있지만 당하는 사람은 실수인지 고의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과도한 스트레스를 무조건 참으면서 출 필요는 없다. 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부족함이 있겠지만(커플댄스계 ‘미투’가 등장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동호회나 춤판의 평판을 위해서라도 댄서를 돕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러니 두려움으로 시작조차 하지 않는 실수를 범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춤은 어디까지나 건강과 즐거움, 그리고 좋은 사귐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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