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 Aug 23. 2019

비가 오면 생각나는 부침개~

엄마의 부침개는 어떤 맛이었을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핀란드답지 않게 시원스레 비가 내리는 아침이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가수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의 노래를 절로 흥얼거리면서 '그 사람'보다는 '부침개'가 제격이라는 생각이 고개를 드는 날이다.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에 부침개 반죽을 내려놓을 때 나는 소리가 창밖에서 울려 퍼진다. 부침개를 부치며 창밖의 노래에 음을 더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어제 이미 열심히 친구 집에서 한껏 부침개를 부쳐서 오늘의 울림은 못 들은 척 외면한다. 발목이 부러져 수술한 병가 중인 친구 집에서 나는 부침개와 버섯전, 그리고 오삼 불고기를 만들었다. 친구는 디저트로 비쓰삐뿌우로 (Vispipuuro, Whipped Lingonberry Porridge)를 만들었다.


얼마 전 수술하고 음식을 사 먹기만 할 것 같아서 집밥을 먹일 량으로 바리바리 싸간 음식 중에는 나중에 먹으라고 끼어넣은 냉동 부침개가 있었다. 그 부침개를 데어먹던 날 친구는 너무 맛있다며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달랬다. 워낙 그날그날 내키는 대로 부침개를 만들기 때문에 레시피가 딱히 없어서 집에 가서 만들어줄 테니 친구가 보고 배우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올여름 유독 부침개를 많이 먹었다. 원래 좋아하기도 하지만, 친구네 도시 정원 밭에 위탁해서 기르는 깻잎을 따오면 깻잎을 넣어 만든 부침개가 당겨서 자주 만들어 먹었다. 게다가 기름을 듬뿍 넣어 살짝 튀기듯이 부쳐내는 부침개의 바싹한 매력을 깨닫고 부침개를 오물오물 잘도 씹어먹는 아들의 모습을 자꾸 보고 싶은 마음도 한 몫했다. 딸은 아쉽게도 부침개를 즐기기엔 아직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내가 선보인 부침개에 대한 답례로 친구가 선보인 간단한 핀란드 디저트인 비쓰삐뿌우로는 친구의 어린 시절 간식으로 친구의 엄마가 자주 해주던 음식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린 서로의 어린 시절 간식을 만드는 법을 추억과 함께 나누고 있었다. 핀란드 스타일의 단 음식과 한국 스타일의 짠 음식, 맛은 정반대지만 엄마의 정이 듬뿍 담긴 소박한 음식이라는 점은 다르지 않다.


내게 부침개는 엄마가 때때로 만들어주던 단골 간식 메뉴였다. 부추가 제철일 때는 부추를 주재료로, 텃밭에서 막 따온 애호박을 주재료로, 뚝딱 반죽을 만들어 엄마가 양껏 부쳐주시던 그 부침개의 맛이 문득 궁금해졌다. 자주 해주시던 기억은 나는데 맛이 영 기억나질 않는다.


안타깝게도 엄마한테 해달라기엔 난 너무 먼 핀란드에 살고 있다. 가깝게 계셔서 해달라고 해도 나이가 드셔서 변한 엄마의 손맛 탓에 그때 그 맛이 날지도 미지수다. 그래도 내가 부치는 부침개는 엄마가 해주던 그 모습을 보고 배워서 만드는 거니까 비슷하지 않을까? 그렇게 나를 달래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특강과 이불 빨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