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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Oct 25. 2019

8살 아들의 생일

아들의 생일을 축하하는 우리의 모습

배경 이미지 출처: Pexels



아들의 생일은 23일이지만 아들의 생일파티는 편의상 지난 일요일에 치렀다. 수줍음이 많아서인지, 여자 친구들과 공통의 관심사가 부족해서인지, 여동생을 제외하고는 오롯이 남자아이들만 참석한 생일파티였다. 가을 방학이 끝나는 주말이었지만 아들의 친구가 7명이나 온 성공적인 파티였다. 우리는 아파트 입주민들이 손님을 많이 초대할 때 사용하는 공용 공간인 클럽 룸을 빌려서 아들의 파티를 준비했다. 



8살 아들 생일파티 음식


아들이 초대한 친구 중, 한 명은 우유, 대두, 아몬드, 견과류, 바나나 등에 알레르기가 있다고 알려왔다. 다행히도 알레르기 정도가 심각하지 않아서 제조공정상 위의 재료들이 아주 조금 섞였을 경우는 문제 되지 않는다고 했다. 만약 알레르기 반응이 정말 심한 아이였다면 파티 음식 준비하기가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다. 알레르기 있는 아이를 배려하며 고르다 보니 선택의 폭이 조금 줄긴 했지만 다른 파티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음식을 낼 수 있었다. 생일 파티가 있기 며칠 전부터 아들은 종종 알레르기가 있는 친구를 배려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나쵸, 팝콘, 크래커, 쿠키, 젤리, 방울토마토, 청포도, 주스, 탄산음료 등 생일이니까 용서가 되는 음식들이 대부분이었다. 경험상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은 아이들에게 간택되지 않기 때문에 생략했다. 지난 몇 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가 아이들이 한입 배어 물고 버리게 되는 생일 케이크도 생략하자고 했지만, 아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나는 초콜릿 케이크를 구웠다. 올해는 기쁘게도 자기에게 주어진 케이크를 다 먹지 않은 아이는 한 명뿐이었다. 아쉽지만, 알레르기가 있는 친구를 위한 케이크는 없었다. 유제품 없이 케이크 만들기는 내게 너무 어려운 과제였다. 


엄마가 굽고 아빠가 장식한 초콜릿 케이크와 8살 생일을 알리는 생일 촛불 기차



8살 아들 생일파티 프로그램


보통 아이들의 생일 파티는 2시간 동안 지속되는데, 아이들에게 2시간 동안 과자만 주면, 싸우고, 소리 지르고, 미쳐 날뛰는 등, 엄청난 소요 사태 (?)가 발생하기 때문에 주최 측에서는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얼마 전에 있었던 아들 친구의 생일 파티는 아이들이 카포에라를 배우는 시간이 준비되기도 했다. 언어의 장벽 탓에 아이들의 소요 사태를 혼자 해결해야 하는 그는 작년에 아들 생일 파티에서 아이들을 한동안 순한 양으로 만들었던 영화 감상 시간을 가지려 했다. 나는 그가 가지고 있는 오래된 게임 콘솔인 드림캐스트의 게임을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둘 다 모니터가 필요한 상황인 데다, 다른 기기들은 작아서 옮기기도 쉬워서 결국 다 하기로 결정했다. 


준비되어 있는 음식을 먹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서서히 커질 때쯤 우리는 드림캐스트를 켜서 4명이서 같이하는 뿌요뿌요 게임을 시작했다. 게임을 같이 하는 것도 구경하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매우 즐거운 일인 듯했다. 물론, 그와 나도 아이들과 같이 게임을 했다. 그 후 모두가 즐거워하는 선물 개봉시간! 아이들은 자기 것이 아니어도 선물을 뜯는 시간을 매우 즐거워했다. 선물이 대부분 포켓몬 카드길래 의문을 표시하자, 그가 아들이 포켓몬을 좋아한다고 친구 부모들에게 언질을 주었다고 했다. 어쩐지... 그리고는 생일 케이크, 영화와 팝콘 순으로 아들의 생일 파티가 서서히 끝으로 향했다. 돌아가는 아이들의 손에는 스티커 한 장과 츄파춥스 사탕 하나를 쥐어주는 것으로 우리가 준비한 아들의 파티는 마무리되었다. 아들은 뿌요뿌요 게임을 다 같이 했던 게 제일 재미있었다며 내년에도 또 해달라고 부탁했다. 별 말 안 하는 아들 기준으로 최고의 만족 표현이 아니었을까?


뿌요뿌요를 둘러싼 아이들



뜻밖의 작은 사건 그러나 당사자에겐 너무나 큰 사건


약속된 2시간이 지나자 보호자들이 하나둘씩 아이를 데리러 오기 시작했다. 일부는 보호자 없이 스스로 집으로 향하기도 했다. 드디어 아들의 생일 파티를 무사히 해치웠다고 생각할 때 한 아이가 신발이 없다고 했다. 아들의 학교 친구들은 그 아이를 제외하곤 다 돌아갔고, 우리 가족과 아들을 데리러 온 딸의 대부네 가족만 남아있었다. 누군가 신발을 바꿔 신고 간 것이었다. 때마침 근처에 있던 딸의 대부가 지금은 어쩔 수 없으니 남아있는 신발을 신고 가서 학교 가서 바꿔 신으라고 차분히 아이를 달랬지만 모자를 눈까지 내려쓴 아이는 울고 있었다. 그때까지 뒷짐 지고 있는 그에게 머라고 하자, 그제야 아이의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줬다. 아이의 아빠도 우리와 같은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보다 아이를 더 진정시켜주지 않았을까?


산 넘어 불구경하듯이 가만히 있던 그에게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우리가 보기엔 별일 아니지만 저 나이에는 굉장히 큰 일일 수도 있고 모든 게 자기 잘못이라고 자책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잘 달래줘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는 귀담아듣지 않은 것 같았다. 다음날 우리는 다행히도 신발을 찾았다는 문자를 그 아이의 아빠에게서 받았다.



부담 없는 생일 나눔


아들의 생일 당일 아침에 생일을 기념해서 친구들과 나눠먹으라고 젤리를 들려 보냈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에게 전해줄 상황이 안돼서 젤리를 그냥 그대로 가지고 돌아왔다. 다행히도 다음날 잊지 않고 나눠먹고 남은 젤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의 생일이면 학교나 어린이집에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젤리나 과자 (2~3유로 상당)를 보내곤 한다. 보통 점심 식사 후 후식으로 개인당 소량을 나눠주기 때문에 많이 보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파는 제품을 보내는 것이다.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을 위한 배려다. 집에서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이 알레르기가 심한 아이에게는 위험할 수도 있는 최악의 경우를 피하기 위한 모두의 작은 노력이다. 정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오히려 눈치 보지 않고 부담 없이 아이의 생일을 같이 축하하는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들 생일 당일, 우리 가족 저녁


아들은 마른 편으로 입이 좀 짧은 편이다. 그런데 가끔 과식을 하는데, 그게 라끌렛을 먹을 때랑 샤부샤부를 먹을 때다. 최근 라끌렛을 여러 번 먹은 편이라, 언제 먹었는지 기억이 희미한 샤부샤부를 아들의 생일 저녁 메뉴로 정했다. 내 기준으로 안타깝게도 그가 채식주의자라 모두를 위해 채식 샤부샤부를 먹었다. 다양한 버섯, 배추, 브로콜리, 유부, 부죽 (건두부), 에그누들, 감자를 육수에 익혀 소스와 함께 먹었다.


8년 전 아들과 만났던 그날을 회상하며 그와 말을 맞춰봤는데, 내가 택시 부르라며 욕한걸 그는 기억하지 못했다. 우리는 조금씩 다른 기억의 퍼즐 조각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 되지 않은 일 같은데 벌써 8년 전이라니~ 태어나자마자 엄마한테 똥을 싼 이야기를 당사자인 아들에게 해주자 놀라며 장난스레 웃는다. 그 사랑스러움이란... 우리는 아들에게 컴퓨터에 연결해서 쓸 수 있는 조이스틱과 디스코 조명을 선물했다. 아들은 선물이 상당히 맘에 든 눈치였다. 


아들의 생일 저녁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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