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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Nov 01. 2019

지난 주말, 아들의 체스대회

경기에 임할 때는 대담하게, 결과를 알릴 때는 수줍게?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2019. 11. 1



아들, 체스대회 나가다!


지난 토요일, 일요일 양일간, 핀란드 전국 학생 체스대회가 열렸다. 토요일 4게임, 일요일 3게임, 총 7게임을 이틀간 치르는 대회였다. 기특하게 아들은 토요일의 4경기를 다 이겼다. 특히, 마지막 게임에서 이번 대회 가장 어려운 상대를 박빙의 차로 이겼다는 점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일요일 게임은 상대적으로 쉽게 풀어나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일요일, 매 경기마다 결과를 보고 하던 전날과 달리 조용한 그에게 메시지로 경기 진행상황을 물어봤다. 당시 나는 아들의 체스 경기를 따라가지 않고, 어린 둘째와 집에서 다채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간단한 대답 대신, 체스 경기를 생중계해주는 링크와 경기 결과를 보여주는 링크를 보내주었다. 덕분에 무방비로 갑자기 아들의 경기를 관전하게 되었다. 하필 마주한 경기는 이전 전적을 생각하면 쉽게 이길 것처럼 보이던 경기였는데, 쉬이 풀리지 않고 양측 모두 팽팽하게 끝까지 치닫고 있었다. 접전을 거듭하고 있는 경기를 보고 있자니 내 맘이 한없이 쫄깃쫄깃해졌다. 게다가 아들의 상대가 실수하길 바라는 마음까지 자식 경기 관전은 할 짓이 못된다. 그냥 결과만 보는 게 정신건강에 좋은 것 같다. 결국 그 경기는 비겼다. 


전날 전 경기를 다 이긴 탓일까? 게다가 최대 적수까지 이겨놓아서 그런지 아들의 비긴 경기는 매우 공격적이었다. 상대를 너무 얕잡아 본 느낌이랄까? 경기를 빨리 끝내고 싶은 듯 체스 기물을 제거해나가는데 집중한 느낌이었다. 비긴 게임의 충격 때문인지 마지막 게임은 전 게임보다 신중하게 임하는 것처럼 보였고, 어렵지 않게 이겼다. 이로써 아들은 6승 1 무로 U-8 그룹 (8살 이하)에서 금메달을 땄다. 잘했다~ 내 아들!


체스대회에서 금메달 딴 아들



아들의 재능에 대한 생각


토요일 4경기를 이기고 돌아온 뒤 그가 내게 이 정도면 아들이 체스를 아주 잘한다고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아들의 체스가 얼마까지 성장할지 모르겠다며 대체로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는 편이다. 아들이 체스를 잘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들이 그저 그 나이 또래에서 체스를 잘하는 아이로 멈출지, 세계적으로 잘하는 사람이 될지는 정말 모를 일이기 때문에 나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쪽이다. 어린 시절, 나는 고등학교까지 한 가지를 유독 잘하던 아이였다. 대학에 가고 나서야 그것을 아주 잘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속한 사회를 넘어 다른 곳을 바라보면 뛰어난 사람들은 늘 어딘가에 있다. 그래서 1등이나 최고라는 수식어를 주는 결과에 집착하기보다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체스대회나 어떠한 대회도 대진 운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실력이 전부가 아닌 경우가 상당하다. 이번 대회 결과에서도 아들이 속한 그룹에서 5승을 한 아이들이 셋이나 되었으나, 그중 운 좋게(?) 어려운 상대와 경기를 다른 두 아이보다 더 많이 한 아이가 3등을 차지하였다. 이전에 아들도 같은 승점에서 대진 운 탓에 순위가 밀린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아들이 결과에 연연하기보다는 체스 자체를 즐기면서 하기를 소망한다. 


다행히 아들은 결과보다는 경쟁과 도전을 즐기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더더욱 아들이 체스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는 그의 주장에 100% 동의하기가 어렵다. 체스 자체가 주는 즐거움과 체스를 두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경쟁, 도전에 따른 긴장감 중 아들이 어느 것을 더 즐기는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들은 이런저런 상황에서 자기보다 무언가를 잘하는 아이가 나타나면 그 아이를 따라잡으려고 그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여러 번 있다. 그래서 가끔은 아들이 체스보다는 경쟁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대회 결과 알리기


금메달을 걸고 돌아오는 길에 그는 아들에게 월요일에 학교에 메달을 가지고 갈 것인지를 물었다. 아들은 메달을 학교에 가지고 갈 의향이 없다고 했다. 아들은 체스게임에서는 어른과도 대등하게 경기를 펼치지만, 일상에서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아이다. 혹시나 아들이 말하지 않을까 봐, 그가 아들 담임선생님에게 이메일로 아들의 체스 전국 대회  U-8 그룹 우승을 알렸다. 아들 담임선생님의 답장에 따르면 아들이 월요일에 주말에 한 일을 이야기하는 시간에 체스대회 우승을 언급하긴 했으나, 부끄럼을 많이 타는 아이답게 그게 전국 대회 우승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선생님의 답장에 쭈뼛쭈뼛 체스대회 나가서 이겼다고 말하는 아들의 모습이 떠올라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며칠 뒤, 둘째를 데리러 갔다가 아들의 유치원 선생님과 마주쳤다. 유치원 선생님에게 아들의 체스대회 금메달 소식을 알리며, 담임선생님의 메일 답장을 언급했다. 아들다운 행동이라고 호탕하게 웃던 유치원 선생님이 내게 아들에게 종종 잘하고 있다는 표현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자라던 시절의 한국 같으면, 학교에서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시상식을 하며 체스대회 우승을 축하했을 거지만 핀란드는 그런 문화가 없다고 하자, 유치원 선생님은 핀란드는 자랑하는 문화가 없다며 웃었다. 아무래도 아들이 자랑할 줄 모르는 핀란드 피를 더 많이 받은 것 같다고 하자, 유치원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며 아들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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