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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Nov 05. 2019

슬기로운 모금 생활

아들의 학교 생활: 네팔 배우기와 성금 모금 걷기 행사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2019. 11. 3



네팔 걷기 행사


아들이 주말에 아빠에게 네팔을 언급해서 떠오른 아들의 학교 활동이 있다. 아들의 학교에서 가을 방학 전 금요일 (10월 11일)에 네팔 걷기 모금 행사가 있었다. 행사에 참여한 아들은 미리 후원자를 찾아 기부 약속을 받았지만, 학생들은 후원자 없이도 걷기 행사 참여가 가능했다. 걷기 행사에 참여한 학생은 정해진 걷기 구간을 돌 때마다 주최 측에서 나눠준 행사 책자에 도장을 받았다. 행사가 끝난 뒤 도장의 개수에 따라 후원자가 약속한 기부금을 내는 모금행사였다. 


엄마와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아들이 그려준 그림을 토대로 보면 학교 옆 시야가 트인 야외 시설들을 크게 한 바퀴 도는 걷기 구간은 1 km 조금 안되어 보였다. 아들은 도장을 8개나 받아왔는데, 반에서 도장을 가장 많이 받은 두 아이 중 하나라고 했다. 다른 아이들은 얼마나 걸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아들은 몇몇 반 친구들은 4~5바퀴 정도를 돌은 것 같지만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체육 수업의 일환으로 치러진 행사는 전교생 약 800명 정도가 다 함께 참여해서 최대 10바퀴까지 돌 수 있었다고 한다. 약속한 기부금은 일정기간까지 학교에 설치되어 있는 모금함에 현금으로 내거나, 행사를 주최한 비영리단체의 계좌로 송금할 수 있었다. 한 바퀴당 2유로의 기부를 약속한 아들의 후원자인 아빠는 계좌이체를 통해 16유로를 네팔의 초등학교를 위해 기부했다. 그나저나 아들 참 열심히 걸었다!



네팔 걷기 행사는 네팔의 낙후된 지역의 한 초등학교의 아이들 (159명)을 돕기 위한 행사로,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이 학업에 정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려는 노력이었다. 



아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네팔


네팔 걷기 행사는 가난한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치러진 행사다. 행사를 통해 기부금을 모아서 아이들의 학용품을 마련해주고자 했다. 네팔 아이들의 등굣길은 험난하다. 아들은 걸어서 15분이면 갈 수 있는 곳에 학교가 있고, 필요하다면 버스, 트램, 자동차 등 교통수단을 선택해서 탈 수 있지만, 네팔의 아이들은 많은 정원 (산이나 숲을 말한 게 아닐까 싶다.)을 지나 오로지 걸어서 2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는 학교를 다닌다. 걷기 행사 동안 상당히 많이 걸었지만, 네팔의 아이들의 등굣길보다는 짧은 거리를 걸었다. 핀란드 아이들은 학교에 입고 갈 옷이 충분히 있고 교복이 없지만, 네팔 아이들은 학교에 교복을 입고 가야 하는데 교복을 살 수 없어서 학교에 갈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핀란드는 점심을 학교에서 주는데, 네팔 아이들은 음식이 없어서 점심을 굶는 아이도 꽤 된다. 돈이 없어서 학교에 못 가는 아이들은 집에서 일을 해야 하는데 옳지 않다. 그러니 그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 



엄마의 생각 더하기


학창 시절 종종 이런저런 모금 때문에 학교에 돈을 가져간 기억이 있다. 누군가 도움이 손길이 필요하니 돈을 가져오라는 짧은 설명을 들었고, 기계적으로 공과금이나 서비스 요금 내듯이 성금을 냈던 것 같다. 기억이 희미해서 확실하진 않지만, 개개인의 가정환경은 고려하지 않은 채 의무적으로 돈을 내야 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부모님 덕에 곤란한 상황을 마주하지 않은 채 누군가는 곤란했을지도 모르는 그 상황을 의식조차 못한 것 같다. 드물긴 했지만, 반 친구의 여유롭지 못한 상황이 드러나는 게 큰 일 아닌냥 치부되는 상황을 내 일이 아니기에 보였지만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내 경험과 전혀 다른, 아들 학교의 성금 모금에 대한 접근이 내게는 매우 흥미로웠다. 대부분 부모가 후원자가 되겠지만, 성금을 내줄 후원자를 찾아 약속을 받아내고, 성금 수혜자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걷기 활동을 통해 아이의 노력에 비례하여 후원자가 기부금을 내는 접근이었다. 네팔의 또래 아이들에 대한 아들의 이해를 바탕으로 짐작하건대, 네팔의 아이들이 왜 도움이 필요한지 네팔 걷기 행사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교육이 충분했던 것 같다. 아이 입장에서 보면 자기가 걸은 만큼 성금이 정해지기 때문에 노력에 대한 대가로 도움을 주는 뿌듯함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특히, 학교는 배제하고 행사를 주도한 비영리 단체가 직접 성금을 걷는 것이 눈에 띄었다. 경제적으로 곤란한 학생들의 상황을 학교 측이 전혀 알 수 없는 익명에 가까운 모금이라는 점이 맘에 들었다. 비록 발달된 복지국가인 핀란드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사회는 가난 때문에 부끄러운 상황에 처하거나,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을 최대한 배제하는 배려가 있다. 십시일반의 성금이지만, 조심스러운 접근이 인상적이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친구들 부모의 경제 사정을 눈치챌 만한 상황들은 마주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상황을 마주하는 기회가 많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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