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 Nov 20. 2019

장갑 잃어버렸는데, 더 있으니까...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책임지는 법과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려는 노력

배경 이미지 출처: Pixabay



2019. 11. 15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은 장갑 한 짝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치곤 아들의 얼굴에 당당함이 묻어났다. 장갑은 더 있으니 괜찮다는 아들의 말에 나는 찬물을 살포시 끼얹었다. '네가 잃어버린 장갑은 하나밖에 없어서 약속대로 니 용돈으로 장갑을 새로 사야겠는걸.' 순간 아들의 큰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날씨가 쌀쌀해지던 10월의 어느 날이었지 싶다. 나는 아들에게 새로 산 요술 장갑 (근데 왜 요술 장갑이라고 불리지?) 두 개와 방수가 되는 얇은 장갑을 한 개를 내밀면서, 작년처럼 마구 흘리지 말고 잘 챙기라는 당부를 했다. 새로 사준 장갑을 잃어버려서 또 사야 하면, 용돈으로 알아서 사야 한다는 작은 협박도 빼먹지 않았다.


요술 장갑을 두 개 사준 탓이었을까? 아들은 방수가 되는 얇은 장갑도 두 개가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한 짝을 잃어버리고도 일말의 근심 없이 여분의 장갑을 쓰면 된다고 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렇지 어찌 그리 잃어버린 물건에 대한 미련이나 후회가 하나도 없을까?


슬픔에 푹 잠긴 아들을 살살 달래서 물어보니, 학교에서 장갑을 끼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장갑을 뺐다가 어디에 흘린 듯했다. 그럼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왔던 길을 되짚어가며 장갑을 찾아보면 되겠다고 했지만, 아들은 장갑을 자기 용돈으로 사야 한다는 말에 망연자실한 채 망부석이 된듯했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려는 노력을 전혀 보이지 않는 아들을 움직이기 위해 같이 찾아보고 못 찾으면 이번만은 특별히 새로 장갑을 사주겠노라고 달랬다. 손해 볼 것이 없는 제안에 정신을 차린 아들은 나의 손을 잡고 하굣길을 되짚어갔다.


아들의 장갑을 찾으러 가는 길에는 가로수 보호를 위해 설치된 철제 지지대 끝에 꽂혀있는 장갑들이 눈에 띄었다. 누군가 아들처럼 흘리고 간 모양이다. 핀란드 사람들은 주운 물건들을 대체로 근처에 눈에 띄는 곳에 살포시 올려놓아,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이 다시 와서 찾아갈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장갑들


아들에게 이런 상황을 설명하면서 아들의 하굣길을 되짚어가던 중 울타리로 심은 관목 위에서 아들의 장갑 한 짝을 발견했다. 땅에 떨어진 장갑을 누군가 눈에 잘 띄게 관목 울타리에 올려놓은 것이다. 한없이 기뻐하는 아들에게 멀쩡한 물건을 잃어버려서 새로 사면 자꾸 쓰레기가 늘어서 지구가 아파하니까 조심해야 한다는 당부를 했다. 그리고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는 다시 찾을 수도 있으니 되찾으려는 노력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당부도 덧붙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들에게 장갑 살 정도의 여유는 있으면서, 용돈으로 장갑사야 한다는데 왜 세상이 끝난 듯한 반응을 했는지 이유를 물었다. 새로 휴대폰을 사려고 돈을 모으고 있다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새 휴대폰을 사려면 얼마나 있어야 하냐고 묻자 150유로나 200유로 이상 있어야 하고 휴대폰마다 다르다고 했다. 의외로 기특하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지출 가능성에 그렇게 절망했구나 싶어 아들의 반응을 이해했지만, 장갑을 잃어버리면 아들의 용돈으로 새로 사야 한다는 다짐을 빼먹지는 않았다. 


작년 한 해 아들은 필통부터 시작해서 장갑까지 이것저것 다양하게 잃어버렸다. 유치원에서는 흘려도 장소가 장소인지라 거의 다 찾을 수 있어 물건 챙기는 버릇을 들이지 않았던 탓인지 초등학생이 된 아들은 이것저것 자주 흘리고 다녔다. 그런 아들의 태도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잃어버린 물건은 자신의 용돈으로 충당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이번 경험을 계기로 아들이 자기 물건을 조금 더 잘 챙기고, 잃어버린 물건이 있다면 찾으려는 노력을 조금이라도 하는 아이가 되었으면 한다. 그나저나 휴대폰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을 텐데, 아들 크리스마스 때 좋겠네~

혹시 아들이 확 지를까 봐, 아빠가 크리스마스 지나면 할인 많이 하니까 참으라고 했다던데...

매거진의 이전글 슬기로운 모금 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