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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Dec 18. 2019

핀란드에서 아들 첫 안경 맞추기

안경 맞추는 게 머라고! 길고 느린 험난한 (?) 여정 속으로...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9월 초 (2019. 9. 11)에 메일로 아들 담임선생님이 아들의 시력을 측정해보라는 조언을 했다. 자리에서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지, 아들이 종종 칠판 앞까지 나와서 칠판의 내용을 확인한다고 했다. 그에게 핀란드 의료시스템은 한국과 다르니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가능하면 안과에 데려가서 시력검사와 기본적인 점검을 하고 안경을 맞췄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대수롭지 않은 듯, 자신의 안경을 바꿔야 하니, 안경점에 같이 가서 시력 검사를 하고 안경을 맞추면 된다고 했다. 다른 문제 때문에 잘 안 보이는 것일 수도 있으니 학교 간호사에게 문의해보라고 당부했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예상대로 시간만 흘렀다.


10월 말, 내가 손목이 아파서 보건소를 방문했다. 손목에 관한 상담이 끝나고, 진료실을 나서기 전, 간호사에게  아들 안경 맞추는 것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초등학생 아이가 처음으로 안경이 필요할 경우, 학교에 상주하는 간호사에게 시력 검사를 요청하고, 검사 결과에 따라 학교 간호사가 안과 전문의에게 진료를 요청하고, 의사 판단에 아이가 안경이 필요하면, 아이의 첫 안경은 무료로 맞출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집에 돌아와 간호사의 조언을 전했지만, 그는 산적해 있는 여러 가지 일 처리에 정신이 팔려, 아이 안경 맞추는 일을 외면하려 했다.


결국, 짜증이 난 내가 그를 붙잡고 아들 학교 간호사에게 메일을 보내도록 종용한 뒤에야 아들 시력 검사 요청 메일을 학교 간호사에게 보낼 수 있었다. 한국 기준으로는 모든 것이 천천히 돌아가는 나라라, 그도 느리고 모든 것이 느려서 기다림에 적응했다 싶다가도 울화가 터질 때가 있다. 다행히도 그의 뭉그적 거림과 달리 학교 간호사는 핀란드 기준으로 상당히 빠르게 일을 처리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호사의 답 메일, 시력 검사, 안과 검진 날짜 잡기 등이 일정 시간 간격을 두고 진행되었다. 결국 12월 초에야, 안과 전문의를 만나게 되었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그와 아들을 보내면서 어떻게 무료로 안경을 할 수 있는지를 잘 알아보라는 당부를 했다. 아이 첫 안경은 무료라는 말이 무슨 도시 전설도 아니고, 무료 안경을 해주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아들에겐 해당사항이 안된다는 애매모호한 말을 그에게 전해 들었다. 젠장! 의사소통이 원활하진 않지만, 꼭 필요한 정보는 확실히 얻어오는 내가 갈걸 그랬나 보다. 안과에서 돌아오는 길에 안경점 두 곳에 들려서 안경을 살펴보고 온 그는 안경테의 종류가 많지 않으며, 가격이 한 곳은 250유로, 다른 한 곳은 150유로였는데, 비싼 게 더 나아 보였다고 했다. 사진 좀 찍어오지, 말만 하는 그가 참 야속했다.


결국, 지난주 월요일 (2019. 12. 9)에 내가 아들을 끌고 시내 안경점을 이곳저곳 돌았다. 6년 전 즈음, 아들이 아기였을 때 망가트린 안경을 아직도 가끔 대충 고쳐서 쓰고 있는 그를 안경점에 다시 보내려 애쓰는 것보다는 내가 움직이는 게 빨랐다. 쇼핑을 싫어하는 아빠를 닮아선지 아들은 안경을 보러 이곳저곳 도는 것에 매우 지친 모습이었다. 개인적으론 동그란 안경테가 어린 해리포터 같아 보여서 매우 귀여웠는데, 아들은 네모난 안경테 모양에 코받침이 고정된 뿔테보다는 코받침 조절이 가능한 테를 선호했다.


어느 안경점이든 아이가 쓸만한 안경테의 선택의 폭은 무척 좁았고,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괜찮은 안경테는 최소 150유로가 넘었고 심지어 270유로짜리 테도 있었다. 100유로보다 저렴한 안경테는 장난감 같아 차마 아이에게 써보라고 권하고 싶지도 않았다. 거기에 안경알까지... 휴! 갑자기 한국에 가고 싶은 욕망이 불근 솟았다. 돈도 돈이지만, 고를 수 있는 안경테가 얼마 없다는 것이 슬펐다. 처음에 들렸던 안경점이 그나마 안경테가 좀 있었고, 만 16세 이하의 어린이에게 안경과 안경테를 같이 할 경우 정상가에서 40% 할인과 2년간의 보험을 들어주는 혜택이 있어서 백화점에 입점한 같은 브랜드의 안경 체임점으로 향했다.


안경테를 둘러볼 때 아들에게 아들이 쓸 안경이니 아들 맘에 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이거 해라 저거 해라가 아닌 아들이 좋은 것을 고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중간중간 아들이 안경테를 쓴 모습을 사진을 찍어 그에게 보내줬는데, 아들과 그가 고른 안경테가 달랐다. 나는 원래 안경테 고르는데 굉장히 까다로운 사람이라 이미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상태라 선호하는 안경테가 없었다. 결국 아들이 선택한 안경을 하기로 했다. 40% 할인 덕에 150유로 정도가 나왔는데, 내가 지불하고, 그에게 아들 크리스마스 선물인 핸드폰 가격은 알아서 하라고 통보했다. 빠르면 1주일에서 최대 2주일이 걸린다는 말에 또다시 내가 핀란드에 살고 있음을 깨달으며, 느림에 무뎌진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마침내 어제 (2019. 12. 17) 아들이 자신의 첫 안경을 손에 쥐었다.



헬싱키 아이 생애 첫 안경 무료 도시괴담의 진실은?


안경점을 돌아다니게 된 첫 안경 무료에 대한 도시괴담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혹시나~ 우리처럼 안타깝게 안경을 무료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헬싱키는 7살 이하의 아이들이 안경을 할 경우 첫 안경 값을 지원한다. 만약 아들 담임선생님이 아들의 시력 문제를 제기했을 때 (9월 11일), 우리가 빨리 대처했다면, 아들의 안경을 무료로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들은 10월 말에 8살이 되었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시에서 지원하는 첫 안경값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래서 그가 한순간 미워졌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어쩌겠는가? 그냥 사랑하며 사는 수밖에~ 으이구 왠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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