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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Dec 19. 2019

아들의 스무고개?

김치, 라면이 멀까? 엄마가 잘 못 알아들어서 미안해!

배경 이미지 출처: Pixabay



2019. 12. 18


전날 저녁이 늦어져 잠자리에 늦게 든 탓에, 아들, 딸 둘 다 잠이 모자라 보이는 아침을 보냈다. 오늘은 다음날 피곤하지 않게 아이들을 조금 서둘러 재우자는 그의 재촉에 조금 일찍 저녁을 준비했다. 채식주의자인 그에게는 어제 만들어 놓았지만, 아직 맛보지 않은 버섯 두부 된장찌개를 주었다. 아이들과 나를 위해서는 마늘, 양파, 삼겹살, 버섯, 프렌치 빈을 볶아 간장과 파프리카 가루로 맛을 낸 오리엔탈풍의 스파게티를 만들었다.


저녁을 먹자고 딸, 아들, 그를 불렀지만, 늘 그렇듯이 딸만 식탁으로 달려왔다. 결국, 목소리를 높여 두 남자를 불렀다. 그는 왜 짜증 섞인 목소리냐고 반문했지만, 오지도 않고 대답도 없어서 그랬다고 대답이라도 하라고 그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평일 저녁에 항상 만들어주는 계란말이와 오이도 잊지 않고 식구들의 접시에 올려주고, 내 접시에는 김치를 올렸다.


다 같이 저녁을 먹기 시작하는 찰나에 아들이 "나도 김치, 누들!"이라고 내게 말했다. "김치 달라고?"라고 되묻자, "아니, 누들!"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스파게티 해줬더니, 라면 달라고 하는 아들이 괘씸했다. 계속 김치를 가리키며 누들이라고 요청하는 아들에게 화를 내고 싶지 않아, 그에게 아들이 왜 주는 밥 안 먹고 딴 거 달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을 했다. 결국, 아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에게 핀란드어로 설명해보라고 했다.

 

아들은 더 답답해하며, 아빠에게 설명하기 어렵다며, 나에게 김치, 누들 같은 거를 달라고 했다. 그가 아들에게 앞에 있는 음식이나 먹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 순간, 불현듯 아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지난주에 김치를 담갔는데, 그때 아들이 같이 만들었던 순무, 양배추 생채를 보고 먹고 싶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때 나는 순무와 양배추에 양념이 배려면 시간이 걸리니 다음에 달라고 해서 먹으라고 아들의 요청을 거절했다. 


아들은 내 그릇에 있는 김치를 보고 지난주에 봤던 생채를 떠올리며, 면처럼 생긴 김치를 달라고 했던 거다. 한국어가 서툴러 급한 마음에 김치, 누들이라고 단어만 외친 아들의 생채에 대한 묘사는 내게 너무 어려운 낱말 퀴즈였다. 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자, 내가 못 알아듣는데도 의기소침하지 않고 꿋꿋하게 김치, 라면을 말하며 생채를 달라고 한 아들이 대견했다. 


아들의 요구대로, 아들이 어렸을 때 먹던 것처럼, 작은 그릇에 생채를 담아 물을 부어주었다. 매운 음식도 곧잘 먹는 아이인데, 이상하게 생채는 물에 씻어 먹는다. 아들에게 꼬꼬마 때 물에 씻어 먹던 생채가 참 맛있는 기억으로 남아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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