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만 네 살이 되는 그녀에겐 너무 긴 발레 공연
2019. 10. 17
11월에 만 네 살이 되는 딸이 과연 발레 공연을 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의 답을 구하고자 안데르센의 동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발레 작품 '눈의 여왕' 무대 리허설을 보러 갔다. 좀 이른 감이 있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Kenneth Greve가 안무한 '눈의 여왕'은 이번 시즌을 끝으로 영영 볼 수 없을지도 모르기에 욕심을 부려봤다. 공연 중 아이가 소리를 지나치게 내거나 공연 내내 앉아있지 못할 경우, 공연장을 빠져나가기 쉽도록 일반 공연이 아닌 무대 리허설을 보러 갔다. 고맙게도 핀란드 국립발레단에서 일하는 아들의 대모가 우리를 초대해주었다.
리허설이 11시 30분에 시작해서 점심시간을 넘겨서 끝나기 때문에 중간 휴식시간에 아이가 점심으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까렐리안 파이, 주스, 물, 그리고 간간히 아이를 달래줄 젤리까지 챙겨갔다. 때마침 학생들의 단체 관람이 있어서 일반 공연장의 느낌을 조금 느낄 수 있었다. 딸아이는 처음 와본 오페라 건물을 탐험하느라 들떠있었다. 게다가 우릴 마중 나온 예쁜 이모까지 더할 나위 없이 신나 있는 아이에 모습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막이 오르고 공연이 시작되자, 할머니 역의 내레이션에 아이는 빠져드는 듯했다. 공연이 진행되면서 자신의 기분을 맘껏 표현하는 아이답게 (?) 조금씩 부산스러워졌으나, 이모 덕에 그래도 어느 정도의 얌전함을 유지했다.
중간 휴식시간, 딸에게 가벼운 점심을 먹이고는, 우리는 이모가 이끄는 대로 무대 구경을 갔다. 무대 위에서 통통 뛰면서 자신의 즐거움을 맘껏 표현하던 딸은 2막의 공연을 위해 대기하고 있던 한 발레리나의 손목에 붙어있던 반짝이를 유심히 관찰하기도 하고, 세트와 소품을 구경하기도 했다. 가능한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려는 듯이 아이는 이모의 손을 당기며 무대 탐험에 나섰다. 무대 이곳저곳에서 마주친 이모의 동료들은 아이가 귀엽다며 환한 미소로 아이를 반겨주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는 중간 휴식 시간의 무대를 낯설어하면서도 즐겁고 신나게 누렸다.
2막이 시작되었는데, 이모가 옆자리에 나타나지 않자 아이는 계속해서 이모를 찾았다. 그리고는 계속되는 공연이 아직 어린 딸에게는 지루했던지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공연을 그만보고 나가고 싶냐고 묻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욕심 같아서는 흥미진진한 싸우나 장면을 보게 하고 싶었지만, 내 욕심일 뿐이기에 미련 없이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떠나기 전, 이모에게 전화를 해서 공연을 다 보지 못하고 간다는 이야기와 함께 감사인사를 전했다. 딸은 안타깝게도 발레 공연 전체를 관람하기엔 어렸다. 기회가 된다면 1년 뒤에 다시 시도해 보기로 하고 나의 욕심을 고이 접어두었다.
공연장을 나와 볼일을 잠시 보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딸은 잠이 들었다. 딸이 피곤해서 더 공연에 집중할 수 없었나 보다. 공연을 끝까지 봤다면 이모의 동료들을 더 많이 보고 사진도 같이 찍고 또 다른 신나는 경험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아이가 지쳤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이모 덕에 중간 휴식시간에 무대 구경을 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정작 공연을 여러 번 본 아들은 딸처럼 무대를 뛰어다녀보진 못했다. 아들은 네 살 하고 한 달이 조금 지난 후 (2015. 11. 30)에 이모 덕에 '호두까기 인형' 무대 리허설을 아빠와 함께 무사히 관람할 수 있었는데, 딸은 시간이 더 필요한 듯하다. 둘 다 내 아이이지만, 많은 면에서 다른데, 공연 관람 태도에서도 다름이 드러났다. 내가 아이들의 다름을 변함없이 지금처럼 언제나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