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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Jan 27. 2020

친구가 인종차별을 당했다.

부당한 일을 당하는 사람을 위해 나서 주는 이가 고맙다.

배경 이미지 출처: Pixabay



헬싱키 버스 안에서 친구가 겪은 인종차별


며칠 전 잠자리에 들기 전 그가 필리핀계 미국인 친구 A의 페북을 보았냐고 물었다. 그의 질문은 버스에서 마주친 노인이 A를 째려보며 가장 친숙한 f 욕을 하면서 중국인이라고 외치곤 그녀가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는 불쾌한 경험을 기록한 글을 가리키고 있었다. A는 자신은 악취가 나지 않으며 향기롭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A의 글에는 상당한 댓글이 달렸는데, 재치 있는 글들이 상당했다. 20년 동안 알고 지낸 A가 항상 향기롭다는 반응부터, 평범한 위로, 그냥 살아가라는 인종차별에 무지한 잘못된 위로 등이 보였다. 특히, 인종차별주의자의 반응을 우환 폐렴 사태와 연관 짓는 댓글들이 많았는데, 인종차별주의자가 국제 뉴스를 열심히 찾아본다는 반응부터 무슨 병이 돌고 있냐며 최근 뉴스를 묻는 반응까지 다양했다.



때로는 인종차별이 아닌 못난 사람의 못난 행동일 수도...


노인이 A에게 저지른 짓은 확실한 인종차별이었으나, 가끔은 그냥 못난 사람이 못난 짓을 하는데 어쩌다 보니 다른 인종을 향해 인종차별로 오해를 사는 경우도 있다. 아들이 어린이집에 다닐 때 유독 한 교사가 내 말을 씹고 퉁퉁 대길래, 조심스레 그에게 그녀의 대응을 묘사하며 인종차별을 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그는 웃으면서 그녀가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라고 했다. 자기한테도 똑같이 못나게 군다면서, 개인적으로 힘든 상황인데, 자신의 상황에 대한 화풀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그냥 너무 맘 상해하지 말라고 했다.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라고 한 그의 말이 의외로 위로가 되었고 그녀의 행동에 조금은 무뎌질 수 있었다.


내게 무례했던 교사는 요즘 아들이 다녔던 어린이집을 다니는 딸이 속한 그룹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의 태도가 너무나 달라졌다. 자기표현이 확실한 딸의 태도가 맘에 들었던지, 그녀는 내게 딸이 매우 사랑스럽다는 듯한 미소를 띠며 딸이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알려주곤 한다. 어쩌면 그의 말처럼 그때 진짜 힘든 시기를 살아내느라, 타인에게 못난 행동을 했던 것일 수도...



누군가가 부당한 일을 당할 때 나서 주는 고마운 이


핀란드 사람들은 일상에선 개인의 공간 (personal space)을 중히 여기고 타인에게 적당히 거리를 두지만,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면 지체 없이 나서 주는 편이다. 어쩌다 공공장소에서 무례하게 구는 사람과 마주쳤을 때, 누군가 대신 나서 준 적이 여러 번 있다. 친절한 그들 중 일부는 외국인에게 무례하게 구는 동료 핀란드인을 부끄러워하며, 핀란드인에 대한 오해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길이 미끄러워 넘어진 나를 번개처럼 나타나 일으켜 세워주고, 내가 괜찮은지를 확인하곤 사라진 행인도 있었다. 


아들과 함께였을 때라 기억나는 일화가 하나 있다. 아들을 유모차에 태워 데리고 다니던 시절, 빈자리가 많았지만 유모차 옆에 앉아 있는 내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노인이 있었다. 애초에 사려가 있는 사람이라면 빈자리도 많은데 굳이 내게 자리를 내놓으라고 억지를 부리지 않았을 텐데, 시비를 거는 노인을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 어린 아들에게 노인과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나는 조용히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어쩌다 보니 자기 옆으로 온 노인 때문에 당황한 아들을 달래주고 있는데, 상황을 목격한 한 청년이 불의를 참지 못하고 심술부리지 말고 다른 자리로 가라고 노인을 나무랐다. 노인은 청년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꼼짝하지 않았다. 나는 청년에게 정말 고맙지만, 본인의 불쾌함을 타인에게 퍼뜨리고, 부정적으로라도 타인에게 관심을 끌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무시가 최고의 대응이니, 괜히 불쾌한 노인 상대하느라 맘 상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상황에서 나를 도와주던 사람들이 떠오르면서 문득 노인이 친구 A에게 인종차별이라는 야만적인 행동을 할 때 주변에 맞서 주는 이가 없었나 궁금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핀란드 친구 하나가 A에게 아무도 나서 주는 이가 없었냐고 묻는 댓글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A를 위해 나서 준 이는 없었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모르겠으나, A를 위해 나서 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어딜 가나 나쁜 사람은 있지만 주변에 같이 나서 주는 이가 있어 핀란드가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조금 작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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