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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May 05. 2020

사고뭉치 향수를 입다.

향수는 살짝 뿌리는 게 아니에요! 이마에 화끈하게 칙! 칙! 칙!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2020. 5. 3


아이들이 알람 없이 일찍 일어나는 일요일, 어김없이 일찍 일어나 사브작사브작 무언가를 하던 딸이 아직 잠에 파묻혀 몽롱한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진한 향수 냄새가 내 코를 강타했지만, 피곤했던 나는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딸은 잠시 내 품에 머물다 오빠와 이런저런 놀이를 하러 간 듯했다. 


갖지은 밥, 소시지와 다진 채소를 잔뜩 넣은 오믈렛, 채식주의자인 그를 위해 소시지 대신 버섯을 넣은 오믈렛, 오이소박이, 삼겹살과 채소를 듬뿍 넣어 자작하게 끓인 부드러운 된장찌개 등을 낸 늦은 첫끼는 아침이라기보다는 브런치에 가까웠다. 부드럽고 따뜻한 한 끼를 위해 모두가 식탁으로 모였다. 잠결에 내 코를 자극했던 냄새가 딸에게서 났다. 


웬 향수 냄새인지를 딸에게 물었다. 화장실에 놓아둔 향수를 이마에 세 번 뿌렸다고 했다. 나는 어느샌가부터 다양한 향에 두통으로 반응해 일상에서 향수를 사용하지 않는다. 덕택에 무용지물이 된 향수 하나를 방향제로 가끔 쓸까 해서 화장실 선반에 놓아두었는데, 그 향수병이 딸의 눈에 띈 것이다. 향수병에 빠졌다 나온 것 같은 딸은 정작 괜찮은데, 옆에 있는 내가 감당할 수가 없어서 딸을 씻겼다. 그렇게 향수 사고는 일단락되는 줄 알았다. 


가족과 함께 바위 언덕으로 산책을 다녀온 뒤 휴식을 위해 잠깐 누운 침대에서 다시 향수 냄새와 마주했다. 머리가 서서히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향수 냄새 탓인듯해 침구를 확인해 보니 여기저기 향수 냄새가 배어있었다. 아침에 향수를 뿌린 채 내 품에 안겨있던 딸이 남긴 자취였다. 집안의 모든 베갯잇, 이불보, 침대 시트를 간지 일주일도 채 안되었건만, 내 침실의 베갯잇, 이불보, 침대 시트를 다시 갈았다. 방안에 밴 냄새를 빼기 위해 창문을 열고 초를 켜 둔 후에야 향수 냄새가 사라졌다. 덕택에 산뜻한 잠자리를... 그만이기에 다행인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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