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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May 28. 2020

코로나 이후, 핀란드 치과 진료

조심하는 듯 안 하는 듯 알쏭달쏭한 대처

배경 이미지 출처: Pexels



2020. 5. 22



웃는 얼굴에  아니 충치!


2주 전이었지 싶다. 침대에 앉아서 웃고 있는 아들을 우연히 바닥에 앉아서 올려다보게 되었다. 순간, 아들의 왼쪽 위쪽 송곳니 옆 작은 어금니에 거뭇한 게 눈에 띄었다. 아들 이 사이에 무언가 끼었나 싶어 떼어주려고 살펴보니 이가 썩어서 페인 상태였다.


가을이 생일인 아들은 매년 생일 이후에 치과 정기검진을 받는다. 작년에도 어김없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즈음 치과 검진을 다녀왔다. 아래 큰 어금니 (영구치)에 작은 충치의 흔적이 있긴 하지만 진행이 멈춘 듯 하니 지켜보자는 의견 외에는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매년 빠짐없이 치과 검진을 받기 때문에 아침저녁 하루 두 번 이를 닦아주는 일 외에는 아들의 이를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게 웬일인가?


아들의 학교와 병원 관련 일들은 대체로 아빠가 처리하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그에게 치과 문의를 부탁했다. 이런저런 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그는 한숨을 쉬며 다음 정기검진까지 기다려보자고 했다. 어차피 코로나로 인해 치과 예약도 어려울 것 같다며... 썩은 부위가 상당해서 빨리 치료를 받는 게 좋을 것 같아 내가 알아보겠다고 했지만, 자꾸 깜빡해서 어느덧 일주일이 지나갔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무언가를 해주고 (그게 뭐였을까? 기억이 안 나네!), 그에게 대가로 치과 예약을 부탁했다. 영어로 어설프게 설명하는 것보다 핀란드어로 자세히 설명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핑계를 덧붙이며, 곁에 서서 또 잊지 않게 지금 전화를 걸라고 애교 섞인 압박을 했다. 모든 일이 천천히 진행되는 나라라 6월에나 치과에 갈 수 있으려니 한 예상과 달리 일주일 뒤 예약이 잡혔다.

헬싱키가 제공하는 보건소 복도에서 마주한 치아 관리 포스터



코로나 이후, 치과 진료


아들의 치과 검진과 강의 시간이 겹친 그를 대신해 아들과 함께 치과 검진을 갔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있지만 대중교통 이용이 망설여져 버스 대신 자전거를 탔다. 집에서 약 3km 정도 떨어진 보건소 가는 길의 2/3 정도를 자전거로 갔다. 아이가 자전거 타기에 번잡해 보이는 나머지 1km 정도는 둘이 손잡고 걸었다.

 

보건소 입구에 배치되어 있는 손 소독제를 바르고 들어서자 직원들이 우리에게 감기 여부를 물었다. 감기 증상은 없다고 하고 접수 기기로 가서 접수표를 뽑았다. 접수표의 안내대로 2층으로 이동하면서 코로나에 대한 우려로 엘리베이터를 2명만 타라는 안내문을 보았다.


엘리베이터 앞 안내문과 엘리베이터 안 접이식 의자


복도 대기실에서 천장에 매달려 있는 안내판을 때때로 확인하며 아들의 대기 번호가 불리기를 기다렸다. 진료실 문이 하나가 열리고 환자가 나오고 얼마 뒤 문이 다시 열리고 손잡이와 손잡이 주변을 닦는 손이 보였다. 코로나에 대한 세심한 주의가 맘에 들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개개인의 선택이라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다른 진료실 문이 열리고 환자가 나오고 떠났으나, 손잡이와 손잡이 주변을 닦는 손은 보이지 않았다.


아들의 차례가 되어 아들과 함께 진료실에 들어갔더니, 치과의사와 치위생사로 보이는 두 명의 의료진이 우리를 맞이했다. 치과의사가 예약 때 설명한 충치에 대한 정보와 감기 여부를 확인하고는 아들이 혼자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면 밖에서 기다려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렇게 나는 아들이 치료받는 내내 복도에서 기다려야 했다. 


복도에 주로 혼자만 있다가 한 환자가 왔다. 복도가 텅텅 비어 공간도 넓은데 굳이 내 근처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그 환자가 다소 불쾌하게 느껴졌다. 핀란드 사람이 다 된 것일까? 내 근처라고 해도 2미터 정도는 떨어져 있었는데... 시간이 참 더디게 간다고 느껴질 때 진료실에서 아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얼마 뒤 진료실 문이 열렸다. 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진료실마다 붙어있는 코로나 관련 안내문과 진료 대기를 하는 길고 긴 복도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긴 했으나, 문 옆에 바로 서서 의사의 설명을 들었다. 의사는 아들의 치아 X-ray 사진을 보여주며 섞은 이를 가리켰다. 상당한 크기의 충치를 치료했고, 2시간 뒤 부분 마취가 깰 텐데 아프다고 하면 진통제를 주라고 했다. 진통제를 먹고도 계속해서 통증을 호소하면 아래 영구치가 자리를 잡고 있으니 문제의 이를 발치하면 된다고 했다.


그리곤 지난 검진 때 지켜보자던 큰 어금니를 가리키며 충치가 작긴 한데 치료를 하는 게 좋겠다며 진료실과 같은 층에 있는 안내데스크에서 예약을 잡고 가라며 예약 요청 메모를 건네주었다. 혹시나 치료한 이를 발치해야 할 상황이면 큰 어금니 진료예약을 발치로 돌리고 또 다른 예약을 잡으면 되지만, 예약했던 번호로 미리 전화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의사가 말한 안내데스크에서 가능한 제일 빠른 시간인 6월 9일 저녁시간에 진료예약을 하고 보건소를 나섰다.


돌아오는 길, 아들에게 다음 달에 또 충치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자 금세 아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충치 부위가 작아서 아프지 않을 것이라고 위로했지만 아들의 반응은 여전했다. 충치 치료라는 말에 꽂혀 설명이 들리지 않는 듯했다. 아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허공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충치의 크기를 비교해줬다. 아주 큰 동그라미와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설명하자 아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제야 큰 어금니 충치 치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린 듯했다. 



직접 마주한 보건소 풍경과 카더라 통신 풍경


의료진을 비롯한 청소부까지 직원들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핀란드 질병관리 본부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의 마스크 착용이 바이러스 전파를 막아줄 뿐, 건강한 사람의 마스크 착용은 불필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이 와중에 눈에 띄는 보건소 직원들의 마스크 착용은 서로를 위해 조심하는 것 같아 더욱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주변에 물어보니 보건소나 병원마다 조금 다른 기준을 가진 듯했다. 임신한 지인이 다녀온 보건소는 직원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라텍스 장갑과 마스크를 끼고 온 자신을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고 했다. 간혹 마스크를 쓴 산모는 대체로 외국인으로 보였다고... 임신 관련 정기검진을 관장하는 네우볼라에서 검진 시 웬만하면 임산부 혼자 오라는 당부를 하기도 했다고 했다.


충치 치료하는 동안 밖에서 기다렸다는 내 말에, 한 친구는 자신이 아는 임신한 친구가 초음파 검진을 하러 병원에 남편과 함께 갔는데, 의료진이 임산부의 남편을 밖에서 기다리게 했다고 했다. 첫아기인데도 불구하고 초음파로 아기의 움직임을 볼 수 없는 상황이라 아내가 핸드폰으로 초음파 동영상을 찍어서 보여줬다고 했다. 핀란드는 한국처럼 초음파 검진을 동영상 파일로 제공해주지 않는다. 


코로나에 대한 대응이라지만 첫 아이에 대한 설렘으로 동행한 사람을 밖에서 기다리게 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애초에 병원에 혼자 오라고 공지를 하던가... 심지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편의 출산실 출입도 금지였다고 했다. 두 아이를 출산하는 내내 그와 함께한 나는 그 없이 출산하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라, 코로나 이전에 이미 아이를 둘이나 나서 키우고 있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들은 의료계의 코로나에 대한 대처가 과학적이고 철저하다기보다는 그래도 뭐라도 하고 있다는 마음의 안정을 위한 대처라는 생각에 마음이 좀 씁쓸해졌다. 보건소 입구에서 비접촉식 체온계를 통한 발열 체크가 아닌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구두 체크는 뭔가 부족해 보였다. 아들의 충치 치료에서는 어차피 진료실에 들어가 설명을 들을 텐데 굳이 복도에서 기다려야 하는 것도 잘 이해되지 않았다. 누군가는 진료실의 손잡이를 닦고 누군가는 닦지 않는 등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기준으로 코로나를 바라보는 것이 일반인들 뿐 아니라 의료진들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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