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작인데...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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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작은 어금니 충치 치료 후, 예약한 큰 어금니 충치 치료하는 날, 아빠와 아들은 지난번 아들과 내가 그랬듯이 대중교통 이용하지 않고, 운동삼아 자전거와 도보로 보건소를 다녀왔다. 여전히 보호자는 진료실이 아닌 복도에서 기다려야 했다. 의료진에 따르면 아들이 용감하게 충치 치료를 받았다고...
보통 아이들은 병원 진료 후 아주 작은 선물을 받는다. 지난번 충치 치료 때 아들은 작은 스티커 두 개를 받았다. 치과 정기검진 때는 종종 칫솔을 받기도 했다. 어제는 아이에게 줄 작은 선물이 동이 난 듯하다. 아들의 용감함을 무시할 수 없었던 의료진은 다른 방까지 가서 선물 거리를 찾는 듯했다고... (아빠에 의하면 3분은 족히 되는 시간이 이었다고...) 그러나, 딱히 선물이 될만한 물건을 찾지 못했던 모양이다. 결국, 아이를 빈손으로 보낼 수 없었던 의료진은 선물로 덴탈 마스크 한 장을 주었다.
방학이다. 아들은 유튜브 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하면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항상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기에 몇 가지 규칙을 제외하고는 아들이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에 대해 크게 간섭하지 않는 편이다.
우선 아침에 동생이 어린이집 가기 전까지 동영상 시청이나 게임은 금지다. 오디오북은 예외다. 아들이 게임이나 동영상 시청을 위해 너무 일찍 일어나 다른 가족들의 수면을 방해한 적이 꽤 있다. 게다가 딸이 오빠를 따라 자연스레 동영상을 보느라,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미루는 경우가 몇 번 발생했다. 동영상 시청이나 게임을 못하면 무얼 하냐는 아들의 항의에 오디오북 청취를 예외로 두었다.
줄곧 컴퓨터 앞에 앉아있기를 금했다. 그냥 두면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 법도 한 아이기에 생각날 때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쉬기를 강요한다. 그런데 쉬라고 하면 부엌으로 달려와 "자몽주세요!", "우유에 시리얼 주세요!", "냉동 블루베리 주세요!" 등등 왠지 엄마에게 간식 요구를 빙자한 항의를 하는 것 같다.
가끔 엄마가 한국어로 된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아들이 읽도록 시킨다. 아빠는 아들이 체스를 하도록 독려하고, 가끔 복싱 미트 대용으로 두꺼운 가죽 벙어리장갑을 끼고 아들에게 복싱 연습을 시킨다. 오후엔 운동을 겸한 산책을 하며 부자간의 대화(?)를 즐기곤 한다.
어느 순간부터 오디오북을 듣던 아들은 동영상 시청이나 게임을 하지 못하는 시간을 오디오북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동생 등원 전까지의 시간이라든지, 간식을 먹지 않는 휴식시간, 잠자기 전 15분 정도의 시간 등에 오디오북을 듣는다.
아들이 디지털 매체에만 의존해 시간을 보내는 듯하여 학교 과제로 가끔 하던 15분에서 20분 정도의 책 읽기(핀란드어)를 아들의 하루 일과에 추가하였다. 때때로 핀란드어로 된 책의 내용을 엄마에게 한국어로 설명해주기를 요청하고, 아빠에게 책 내용을 설명하도록 한다.
오빠가 읽던 책인 피노키오를 엄마에게 읽어달라며 가져온 딸에게 여느 때처럼 "핀란드어 책은 아빠에게"라고 하려다가, 아들이 읽어줘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렇게 얼마 전부터 아들은 동생에게 책 읽어주기(피노키오)를 시작했다.
아들이 유튜브 영상 시청과 게임을 즐기는 것에 느슨하게 대처하는 대신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식사시간, 취침시간에 묵묵부답일 경우 일정기간 동안 유튜브 영상 시청과 게임을 금지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아들은 세상 끝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불을 뒤집어쓴다.
동영상과 게임 금지로 인해 생긴 시간을 아들은 창의적인 놀이로 채운다.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거나, 레고로 무언가를 만든다. 일주일 금지 처분을 받은 최근, 벌이 과했다는 생각에 보던 책을 다 읽으면 일상으로 돌아가도 된다 했더니, 아들은 단숨에 그 책을 읽었다. 이전에 보지 못한 높은 집중력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난 동영상과 게임 금지를 남발하진 않지만 좋아한다.
지나치게 컴퓨터 앞에만 있는 듯해서 아들을 붙잡고 영어책과 한국어 책을 같이 읽는데, 아들이 몸을 베베 꼰다. 어린 시절 내가 언어에 재능이 부족했기에 나는 아들의 언어발달에 대한 기대치가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 영어책을 같이 보면서 아들이 제법 영어를 잘 읽고 이해하는 것이 대견했다. 아들을 너무 과소평가했나?
한국어 책을 더 읽자고 하자, 아들은 온몸으로 하기 싫음을 표현했다. 컴퓨터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 난 불손한 태도에 나는 싫으면 책도 컴퓨터도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폭발해버렸다. 아들은 나라를 잃은 것 같이 대성통곡하였지만 컴퓨터로 시간을 보내는 대신 주사위를 던지며 각각의 숫자가 나오는 경우를 종이에 기록했다. 아들은 자신이 확률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까?
잠들기 전 아들에게 너무 컴퓨터만 붙들고 있으면 바보가 될 수도 있으니 책도 읽고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며 내일부터는 일상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런데 아들은 바보가 될 수 있다는 말에 겁을 먹고는 눈물을 뚝뚝 훌리며 울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겁이 많니? 아무거나 입에 넣는 딸에게 잘못하면 탈 나서 죽을 수도 있다고 화를 낼 때 세상 물정 모르는 딸은 나름 평온한데 반해 아들은 동생이 죽는다면 대성통곡하며 슬퍼했는데... 감수성이 뛰어나다 못해 넘쳐흐르는 건가? 아이들이 잠들고 그에게 바보가 된다는 말에 잔뜩 겁먹은 아들의 이야기를 전했더니, 아들 협박 좀 그만하라며 그가 내게 핀잔 아닌 핀잔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