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 이야기: 박수는 두 손이, 사랑은 두 사람의 마음이 마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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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핀란드 학교 석사과정에 지원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을 때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달랑 한 학교만 지원해놓고,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하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중국 아저씨 Y가 메신저로 내게 왜 핀란드로 가려고 하냐고 물었다. 디자인으로 유명한 학교도 있고, 북유럽 디자인에 반해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되었고,..., 백야도 경험하고 싶고, 오로라도 보고 싶고, 주저리주저리 이유를 늘어놓는데, Y가 캐나다도 백야도 경험할 수 있고, 오로라도 볼 수 있으며, 좋은 학교도 많다고 한다. 뜬금없이 왜 그런 말을 할까라는 의문이 고개를 들 때, Y가 자기를 보러 캐나다 캘거리로 놀러 오라고 제안한다. 캐나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없고, 금전적 여유도 없고, 입학 허가를 받지 못하면 터덜터덜 한국으로 돌아가 무엇을 해야 하나에 대한 고민까지 마음이 엄청나게 무거운 와중에, 내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Y에게 완곡한 거절을 여러 번 했다. 그러나 Y는 마침 저렴한 비행기표도 많다면서 끈질기게 캐나다 방문을 제안한다. 결국 짜증이 극에 달해, 가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Y가 비행기표를 사 줄 테니 놀러 오란다. 자기는 캐나다 영주권 신청을 위해 캐나다 밖으로 나오지 못하니, 내가 와줬으면 좋겠단다. '머지? 미쳤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젤 먼저 떠올랐다. 어이없었지만 신기해서 밴쿠버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Y의 제안을 이야기하자, 친구는 표 값만 받아서 밴쿠버로 놀러 오란다. 먹튀를 하라고... 결국 Y의 제안을 거절했다. 나는 Y에게서 비행기표를 받아서 캐나다까지 Y를 보러 갈 만큼 Y가 보고 싶지도 않았고 그 정도로 친근한 사이도 아니었다. Y가 캐나다에서 너무 외로워서 나랑 어떻게 엮였으면 하는 마음에 작업을 건 것 같았는데,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Y는 첫 유럽 여행 때 이탈리아의 기차 안에서 만난 사람이다. 그 여행 동안, 첫 해외여행의 설레는 마음 덕에 기차 옆자리 사람들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곤 했는데, Y는 같은 동양인이어서 그랬는지 그가 기차에서 내리기 전까지 꽤 긴 대화를 나눴다. 180 cm가 넘는 큰 키의 전형적인 중국 남자의 얼굴을 가진 나보다 10살 정도 많은 Y는 중경대학을 나온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토목 엔지니어였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대규모 토목공사를 수주하는 이탈리아 회사에서 일하는데 때마침 본사로 출장을 왔다고 했다. Y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나름 이야기가 통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Y와 헤어지기 전 이메일 주소를 교환했다. 그렇게 Y와는 가끔 메신저로 일상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Y가 살짝 돌아서 캐나다로 놀러 오라는 제안을 하기 전까지 우리는 4년 넘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친구로 지냈다. Y가 내게 미친넘으로 다가오면서 우리의 친구 관계는 끝이 났고 기억으로 남았다.
여러 해가 지나 문득 그때를 떠올리며, 만약 내가 Y의 황당한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Y와 나는 로맨스를 겪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원하지 않는 사건을 겪었을 수도 있다. 그 누구도 모를 일이다. 지금보다 어린 시절 유독 비행기를 탈 때면 영화 속에 나오는 우연한 멋진 만남을 기대하곤 했지만, 비행기에서 내릴 때면 나에게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는다며 실망하곤 했다. 사실 누구나 우연한 멋진 만남의 기회는 마주하지 않을까? 단지 그 기회가 맘에 들지 않아 로맨스의 가능성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놓아버려서 눈치채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만약 내가 Y의 제안을 받아들여 우리가 현재를 공유하고 있다면, 우연히 기차에서 만난 남녀가 친구로 지내다가 남자의 용기 있는 초대로 사랑을 이루었다는 사랑이야기를 간직하고 있겠지. Y는 나의 그가 될 수도 있었지만, 당시 나와 Y의 마음이 마주하지 않아 나에게 미친넘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