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르는 나의 편견을 마주할 때의 당황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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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에 미친넘으로 남게 된 Y를 만났던 첫 유럽 여행에서의 또 다른 찰나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베니스의 황홀함을 뒤로하고 밀라노로 향하는 기차를 탔을 때다. 한국 사람에게는 낯선 6~8명이 마주 보고 앉아가는 컴파트먼트가 있는 기차였다. 베니스에서 출발하는 기차라서 승객들은 비어있는 컴파트먼트를 찾아 혼자 또는 일행끼리 자리를 잡았다. 혼자 여행 중이던 나도 비어있는 컴파트먼트를 하나 차지했다. 더 이상 빈 컴파트먼트가 없겠다 싶을 즈음 흑인 청년 하나가 맞은편에 앉아도 되냐며 자리를 잡았다.
나의 첫 유럽 여행은 꽤 오래전이라 휴대폰에서 인터넷 접속은 상상도 못 했을 뿐 아니라 로밍 서비스는 극소수의 사람들이나 이용할 정도로 비싸던 시절로 기차를 타면 여행 책자나 살펴보는 정도의 소일거리가 전부였다. 멀뚱히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서 지루함을 달랠 겸 그 흑인 청년과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한국 사람이고 여행 중이며 베니스에서 밀라노로 가는 중이다.'라고 내 소개를 했다. 그 청년은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이탈리아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고 했는데, 뉘앙스가 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 같았다. 그러던 와중 뜬금없이 그 청년이 '이렇게 혼자 여행 중이면 너 돈 많겠다.'라는 말을 해서 나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너 돈 많겠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주변의 상황이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나를 제외한 컴파트먼트에 앉아있는 승객은 다 흑인이었다. 그제야 이탈리아 사람으로 보이는 승객들이 그 컴파트먼트의 빈자리를 보고도 한결같이 지나쳐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도둑놈 소굴에 앉아있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때부터 나는 내 백팩을 절대 놔줄 수 없는 연인인 양 꽉 껴안고 앉아 있었다. 긴장해서 그런지 피곤해서 자고 싶었지만 잘 수가 없었다. 다른 칸으로 자리를 옮기자니 이미 밀라노까지 가는 길이라고 말을 해놔서 그 청년이 나쁜 의도가 눈곱만치라도 있다면 그것을 부추기게 될 것이고, 정말 무지로 인해 부러움의 표현을 서툴게 한 것이라면 굉장한 결례를 범하게 되는 것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음속으로 울면서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굳어있었다.
망부석이 된 나를 안심시켜준 이는 이탈리아의 군인이었다. 내 또래로 보이는 이탈리아 군복을 입은 준수하게 생긴 청년이 내가 앉아있는 컴파트먼트의 빈자리에 앉아도 되냐고 물으며 내 대각선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군인 청년이 자리를 잡자, 그 컴파트먼트를 한결같이 지나가던 이탈리아 사람들이 빈자리를 메우기 시작했고 금세 컴파트먼트를 채웠다. 그제야 가방을 꼭 껴안느라 어깨에 주고 있던 힘을 뺄 수 있었다. 나는 물론이고 다른 이탈리아 사람들까지도 군인 제복이 주는 안정감으로 흑인에 대한 두려움을 상쇄시킨 것 같았다. 곤경에 처했다고 착각하던 나의 맘을 편하게 해 준 멋진 군인은 동양인인 내게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질문을 몇 개 던졌지만,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그와 어눌한 영어를 쓰는 나 사이의 언어 장벽으로 인해 서로 미소만 짓고 말았다.
당시 나는 24살이었지만, 동안이었고, 편한 옷차림을 하고 있어서, 한국 사람의 나이를 짐작하지 못하는 외국인 눈에는 10대로 보였을 가능성이 크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너 돈 많겠다.'는 10대로 보이는 동양인 소녀가 혼자 여행 중인 반면 자신은 생계를 위해 고단하게 이탈리아 길거리 전전하며 장사를 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내가 부러워서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부러움을 세련되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그랬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 순간 공포에 떨었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고 그 흑인 청년과 그 컴파트먼트에 앉아있던 다른 흑인 승객들에게 미안한 맘이 들었다. 미쳐 인지하지 못했던 나의 인종에 대한 편견을 마주하고 난 뒤 나는 인종차별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장담을 못하겠다'는 말과 함께 그 흑인 청년의 '너 돈 많겠다.' 이야기를 언급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