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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흔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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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Mar 26. 2019

(마흔 넘어)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스스로를 달래며 어제를 돌아보지 않고 내일이 아닌 오늘을 살려고 애쓴다.

배경 이미지 출처: Photo by Djim Loic on Unsplash



세상 누구나 자신만의 어린 시절을 거쳐 현재의 자신에 도달한다. 나도 그 시절 그 나이 때에 맞는 희로애락을 겪으며 나만의 어린 시절을 거쳐 지금의 나로 살아가고 있다. 10대에서 20대까지의 나는 유독 오늘을 살면서도, 오늘을 마주하지 않고, 내일을 바라보거나, 어제를 되돌아보며 후회를 하곤 했다. 살아가는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어제 더 열심히 했어야 하는데, 무얼 한 거지라는 책망을 하거나, 내일은 잘해야지 하며 남아있는 오늘을 포기하곤 했다. 설령 나의 오늘이 맘에 들지 않더라도, 오늘의 작은 성취를 깨닫고 다독였어야 했다. 내일의 나에게 지나친 기대를 떠넘기지 않고, 조금씩 나아가는 오늘을 모아, 성취 가능한 내일을 꿈꿀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그런 내가 있었기에, 나를 달래며 조금이라도 나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어린 시절 나는 미래에 대해 수많은 꿈을 꾸었다. 40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미래의 나에 대해 꿈을 꾸긴 하지만 그때와는 사뭇 다르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 다양한 꿈을 꾸는 것은 어린 시절의 특권이 아닐까? 흥미롭게도, 나만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린 시절 내가 그린 미래는 간혹 아이와 친구같이 지내는 엄마의 모습을 떠올린 것 이외에는 30대 이후의 삶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일찍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서른이 넘으면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엄마로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에 나보다는 우리로 살아갈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없어서 그랬을까?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게 20대라 여겨 그 이후는 상상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걸까? 미처 깨닫지 못한 나이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나의 꿈을 제한한 것일까 아니면 그저 난 상상력이 부족했던 걸까?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어느 일본 만화책이 불현듯 떠오른다. 20살이면 늙기 시작하는 나이라 아름다운 시절이 끝나기 전인 10대에 삶을 마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10대들이 나오는 만화였다. 만화책의 주요 인물들은 10대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것을 이뤘다. 따분한 어른으로 변하기보다는 죽음이 났다는 멋진 10대의 저항이 당시 10대였던 나로서는 꽤 맘에 들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던 시절이라 20대의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은 무시한 채 이야기 속 그들의 멋진 삶에만 집중했다. 만화 속의 10대와 달리, 현실의 10대였던 나는 이룬 것 하나 없이 조급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이룰 내일만 넘보는 처지였다. 10대가 몇 년 안에 무얼 얼마나 이룰 수 있다고 그렇게 동동 거렸을까? 무엇을 잘하는지 좋아하는지도 아직 잘 모르는 나이였는데... 그래도 끊임없이 내일을 꿈꾸고 오늘에 좌절하고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갖추어가며 그렇게 10대, 20대, 30대를 넘겨 오늘에 이르렀다. 


꿈꿔보지 않았던 30대 이후의 삶은 나쁘지 않았다. 나 자신을 조금씩 더 알아가며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지 않았던 아니 못했던 나이의 삶을 살며, 미리 그려놓은 밑그림 없이 그때그때 적당한 것들을 하며 쓸데없는 욕심들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그냥 한번 해보지.'라는 체념에 가까운 시도를 통해 내 상상을 넘어서는 소소한 것들을 해봤다. 40이 넘으면서, 미리 짜 놓은 이 시기의 나에 대한 계획이나 기대가 없었기에, 현재의 나에 맞게 생각해서 정해놓은 제약 없이 이것저것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물론 나이가 가져온 공격 (허락 없이 오는 노화)과 선물 (삶을 통해 얻은 지혜)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곡예하듯이 나아가야 하지만, 어린 시절의 혼란스러웠던 나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니, 나쁘지 않은 길을 걸었던 것 같다. 나이 드는 내 몸의 변화에 새로이 적응하고 한 숨 돌리면, 다시 또 변화를 맞이하라고 재촉하는 것 같은 내 몸이 원망스럽기는 하다. 그렇다고 병이 생긴 것은 아니다. 그저 자연스러운 몸의 노화를 내 마음이 뒤따라가면서 너무 빨리 간다고 짜증을 부리는 것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그들은 내가 미쳐 생각지 못한 자신의 늙어가는 모습을 그려봤을까? 하루하루 정신없이 내 삶만 살피다가, 가끔 주위를 돌아보면 변해버린 친구들의 모습에 기분이 묘해지기도 한다. 아이가 주는 행복을 누리기 위해 아이를 낳고 기르느라 나의 시간을 대가로 내놨듯이 나와 같이 나이 먹는 내 친구들도 무언가를 얻고 무언가를 내려놓는 거래를 했겠지. 설령 그 거래가 불공평했더라도 마냥 젊음을 내어주지는 않았으리라. 이제 겨우 40인데, 마치 70 먹은 노인네 같은 태도를 가진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들기도 하지만, 가끔은 나의 위치를 확인하고 나를 달래줘야 하지 않을까? 매일매일 조금씩 지쳐가는 나를 달래고 더 넓은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만큼 원하는 것을 하다 보면 의외의 장소에 도달하는 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50대의 내가 이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길 바라며 오늘도 나는 나를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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