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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흔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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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Apr 01. 2019

런던에서 계란 세례를 받는다면...

인생수업 by P와 그의 여자 친구: 못된 장난을 대하는 법

배경 이미지 출처: Pixabay



런던 살 때 플랏 메이트였던 독일인 친구 P가 있었다. 독일에 살고 있던 P의 여자 친구는 우리 플랏에 종종 P를 보러 놀러 왔다. P의 여자 친구는 영어를 잘 못해 의사소통이 원활하지는 않았지만 싹싹하고 밝아서 언제나 환영받았다. 어느 날 알콩달콩한 P 커플이 집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으로 되돌아왔다. P 커플이 집 근처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던 중, P의 여자 친구가 지나가던 차에 타고 있던 못된 놈이 던진 계란에 맞아 더러워진 옷을 갈아입으러 다시 들어온 것이었다. P의 여자 친구는 대수롭지 않은 듯 바로 옷을 갈아입었고, 둘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집을 나섰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이를 나와 함께 지켜보던 한국인 친구가 자신이 똑같은 일을 당했다면 인종차별당했다며 의기소침해져서 하루 종일 우울하게 보냈을 텐데, 별일 아니라는 듯이 훌훌 털어내는 그들이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P커플은 그냥 못된 놈이 심술부린다고 넘긴 일을 우리는 인종차별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타인의 심술에 조금 둔해지거나 쿨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종차별로 보이는 행동이 때로는 그냥 못된 놈의 못된 짓으로 인종차별까지 고려한 지능적인 괴롭힘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령 인종차별을 당했더라도, P의 여자 친구에게 일어났던 일처럼, 사과받을 수 없거나,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냥 못난 놈이 못난 짓을 했구나 하고 못난 놈의 무식을 탓하고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화는 나겠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로 속을 끓여봐야 내 시간과 마음만 낭비하게 될 것이다. P 커플은 서로 떨어져 살아서 어쩌다 같이 보내는 시간이 극명하게 소중하기 때문에 좀 더 쉽게 스쳐간 타인의 행패를 떨쳐버렸을 수도 있다. 내 시간은 소중하니까 남의 못난 행동에 화를 내느라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그냥 스쳐가는 못난 놈으로 흘려보내는 것이 오히려 나를 위하는 길일 수도 있다.


딸아이가 태어나기 전 아들이 어렸을 때 동네 놀이터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가 우리를 가리키며 외국인이다라고 외쳤던 적이 있다. 아이의 말하는 뉘앙스가 비아냥이 살짝 섞여있었는데, 화가 나기보다는 저런 무식함과 용감함은 머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부모님이 미처 예절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박자 늦게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나무라는 모습을 보긴 했지만, 우리를 배려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가 무식하게 자라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반면에 그 아이의 행동을 무시할 수 있어서, 아들과 계속해서 즐겁게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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