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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흔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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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Apr 04. 2019

도움 품앗이 어때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받은 갚을 수 없는 도움을 갚는 방법

배경 이미지 출처: Pixabay



돌이켜보면, 굉장히 위험한 경험이 됐을 법도 하다. 2000년대 초반, 포스코 사거리 근처에 위치한 벤처 기업에 다녔다. 한밤 중의 퇴근길, 갑자기 이유 없이 엄청 아팠다. 때마침 장대비가 미친 듯이 쏟아졌고, 곧 쓰고 있던 우산이 있으나 마나 할 것 같았다. 그 날따라 택시 자체가 종적을 감췄다. 5분만 그대로 서있다간 쓰러질 것 같았다. 지나가던 LG-OTIS 서비스 승용차 한 대가 내 앞에 멈췄고, 운전자가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택시 잡는 중이니 신경 쓰지 마시고 가시라고 했다. 택시가 잘 안 잡히는 것 같으니 같은 방향이면 태워주고 아니면 그냥 갈 테니 일단 집이 어딘지 말해보라고 했다. 갑자기 심하게 아파서 정신이 없던 차에, 평소 같으면 그냥 가시라고 했을 텐데, 오히려 사는 곳을 말했다. 그랬더니 같은 방향이니 데려다준다고 했다. 그 자리에 눕고 싶은 정도였기에 생각 없이 그 차를 탔다. 운전자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쓰러질 것처럼 보인다며 당시 살고 있던 낙성대 원룸 앞까지 태워다 줬다. 게다가 집에 약은 있냐며 진통제까지 챙겨주었다. 그러고는 사실 집이 분당이라고 했다. 거의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살짝 우겨서 그냥 가려던 운전자의 명함을 챙겼다. 후에 감사 표시를 해야겠다는 마음이었지만, 받은 명함을 잃어버렸다. 결국 고맙다는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절실한 때의 완벽한 타인의 도움에 대한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다. 늘 마음 한구석에 갚아야 할 빚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LG-OTIS 서비스 기사님이었던 것 같다는 기억밖에 없어서 고마움을 표현할 기회가 이번 생애는 없을 것 같다. 언젠가부터 도움이 필요한 타인과 마주치면 그분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리고 보답하지 못한 미안함을 덜고자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망설임 없이 손을 내밀게 된다. 사실, 나는 그분 말고도 다른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거쳐 오늘을 잘 살아가고 있다. 잘 아는 사람들부터 LG-OTIS 서비스 기사님처럼 스쳐가는 사람들까지... 일일이 그들의 도움에 보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처럼 다른 사람들도 일일이 보답할 수 없도록 만들어서 사람들이 빚진 마음에 조건 없이 남을 돕도록 이끄는 것이 해결책이 아닐까? 아이가 생기니 더더욱 도움이 돌고 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내가 항상 아이들 옆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돌봐줄 수 없을 것이다. 옆에 있어도 능력이 부족해서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 내 도움이 필요할 때 망설임 없이 손을 내미는 것이 결국 내 아이들을 돕는 일이 될 것이다. 도움 품앗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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