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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Dec 10. 2020

엘프 모자 (tonttulakki)를 찾아줘!

어린이집에서 무언가를 잊어버리는 건 일상다반사! 찾으려는 노력은?

배경 이미지 출처: Pexels



2020. 12. 8


핀란드에서 12월은 크리스마스의 따스한 분위기로 어두움을 극복하는 달이다. 어린이집도 예외는 아니라서 종종 엘프 모자를 쓰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는 활동을 한다. 지난주 어느 날 엘프 모자가 필요하지도 않은데, 딸은 엘프 모자가 좋다며 빨간 모자를 어린이집으로 가져갔다. 그리곤 엘프 모자를 잃어버렸다. 어린이집에서 너도나도 다 있고 다 거기서 거기인 엘프 모자를 잃어버리는 건 흔한 일이다. 아들도 어린이집 시절 엘프 모자를 여러 번 잊어버렸다. 만일에 대비해 모자 구석에 이름을 써놨지만 분실을 막을 순 없었다. 


어린이집에는 물건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있다. 블랙홀로 사라진 물건은 다시 뽕하고 나타나기도 하지만 영영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얼마 전 딸의 실내화는 블랙홀로 여행을 다녀왔다. 친구가 장난으로 딸의 실내화를 숨겼는데, 숨긴 장소를 기억하지 못했다. 딸은 임시로 집에 있던 크록스를 가져가 실내화로 신었다. 코로나로 새 실내화를 사러가는 게 마땅치 않아 일주일 정도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다행히 며칠 뒤 실내화는 딸에게 돌아왔다. 


엘프 모자도 실내화처럼 블랙홀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딸에게 모자를 찾아보라고 했다. 다음날 엘프 모자를 찾지 못하고 돌아온 딸에게 어떻게 하고 싶은지 의견을 물었다. 딸은 엘프 모자를 같이 찾아달라고 요청하는 포스터를 만들어 어린이집 벽에 붙여놓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내놨다. 그다음 날도 딸은 엘프 모자를 찾지 못했지만, 찾아달라는 포스터를 만들었다며 내게 포스터가 붙어있는 벽을 가리켰다. 딸이 가리킨 방향에는 핀란드 국기를 큰 그린 그림이 붙어있을 뿐 딸의 포스터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벽 아래쪽에 붙어있는 A4 크기의 파란색 색지가 눈에 들어왔다. 색지에는 모자 그림과 함께 딸의 엘프 모자 찾기를 도와달라는 글귀가 있었다. 포스터는 아이들의 눈높이 정도에 있어서 내가 바로 찾을 수 없었다. 진한 파란색 색지로 만든 포스터는 내용이 눈에 띄지 않았는데 특히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글을 읽을 수 있는 또래는 많지 않으니 상관없을 듯했다. 


상황상 엘프 모자를 찾기 위해 포스터를 만든 딸의 노력이 열매를 맺긴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아이가 자신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노력이 내겐 반짝반짝 예뻤다. 딸에게 말은 안 했지만 블랙홀이 엘프 모자를 돌려주지 않을 것 같아 주말에 주려고 새로 엘프 모자를 사놨다.


VOISITKO AUTTAA IDAA ETSIMÄÄN TONTTULAKKINSA

   


딸이 만든 엘프 모자 찾기를 도와달라는 포스터



덧붙이며...

모자를 포기하고 이 글을 쓴 날 딸은 엘프 모자를 찾아 돌아왔다. 자기가 어느 방 선반에서 모자를 찾았다며 의기양양한 딸을 보며 그는 조용히 나에게 새로 사 온 엘프 모자의 용도를 물었다. 머 어쩌겠수? 엘프 모자 하나 더 있는 거지~

   

엘프 모자 찾은 기념으로 저녁 먹을 때도 엘프 모자 쓰고 있는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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