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같다. 이런저런 일이 다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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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미처 알지 못했다.
아이들이 잠든 뒤 마음이 차분해지려 할 때 그가 나를 불렀다. 그는 아들의 같은 반 학부모에게 이메일 받았다면서 왕따 이야기를 언급했다. 충격이었다. 안 그래도 지난 12월에 헬싱키에 왕따와 관련된 청소년 살인사건이 발생해 아들 주변에 왕따가 있진 않을까 신경이 쓰이던 차였는데... 피해자에 대한 왕따가 어린이집부터 시작되었다는 언론 보도에 놀라, 하교한 아들에게 일과를 묻는 질문에 변화가 생겼다. 즐거운 하루를 보냈는지, 아들을 힘들게 하는 이는 없는지, 눈에 띄는 이상한 일은 없는지 평소보다 더 자세히 묻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아들은 아무 일 없다고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한국의 단톡 방처럼 아들 반의 학부모들은 왓츠앱을 통해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원래 왓츠앱을 사용하지 않는 데다가, 해봐야 의사소통이 핀란드어로 이루어져 내겐 무용지물인지라 굳이 그 연락망에 끼려 하지 않았다. 그도 나처럼 왓츠앱을 사용하지 않고, 굳이 나서서 일을 떠맡을 필요가 없다며 무던하게 지내자며 신경 쓰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래서 우리는 아들반 학부모 사이에서 있었던 신경전에 대해 깜깜무소식이었다. 그가 어느 학부모에게 받은 문자를 시작으로 우리는 아들반의 왕따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아들반의 일련의 사건의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해 교장의 개입을 요구하는 학부모들의 청원에 힘을 실어달라는 문자에 그는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메일로 요청했다. 그렇게 아들반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에 대한 그의 조사가 시작되었다. 일단 오래도록 알고 지낸 이웃이자 같은 반 학부모인 지인에게 그가 자세한 내역을 물었다. 그녀는 우리에겐 동네 소식통이었기에 당연한 수순이었고, 왕따 관련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나에게 내가 주로 연락하는 아들의 오랜 친구 엄마에게 물어보기를 종용했다. 또한, 우리는 각자 자신의 방법으로 아들에게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지만, 예상대로 별 소득이 없었다.
이웃 학부모에게 물어본 결과 알게 된 자세한 이야기는 일단 우리를 안심시켰다. 문제가 된 그 어떠한 일에도 우리 아들은 전혀 관련이 없었다. 그래서 아들은 아무것도 몰랐나 보다. 어떤 이는 왕따가 1학년 때부터 조짐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내가 전해 듣기로는 1년여 동안 남자아이들끼리 충돌이 간혹 있었는데, 최근 몇 달간 정도가 심해져서 거의 매일 아이들이 바뀌면서 싸움이 지속되고 있었다고... 심지어 최근에 전학 간 아이가 하나 있는데, 연이은 충돌이 그 아이의 전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남자아이들끼리 싸움이 빈번해지자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학부모들끼리 왓츠앱에서 논의가 시작되었다. 논의가 논쟁으로 악화되면서 일부 학부모가 왓츠앱을 떠났다. 전학 간 아이의 엄마도 맘이 상해 왓츠앱을 떠난 이 중 하나였다. 주로 왕따의 중심으로 지목되었던 아이의 엄마는 자신의 아이를 감싸며 더 이상 자신의 아이에 대한 그 어떠한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다며 대화를 거부했다. 문득 부모가 귀를 막고 자신의 아이를 편들기 시작하면 왕따 문제는 해결하기 아주 어렵게 된다던 이웃 선생님의 경험담이 떠올랐다. 그러나 섣불리 누가 옳다 그르다 하기엔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하니 그저 모든 일이 좋은 방향으로 해결되길 바랄 뿐이다.
이 와중에 일부는 휴직 중인 원래 담임이 왕따에 대해 안일하게 대처해 문제가 커졌다며, 쉬운 해결책으로 부재중인 사람을 탓했다. 개인적으로 겪은 휴직 중인 담임은 아이들에게 섬세한 사람이어서 안일하게 대처할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왓츠앱을 사용하지 않는 나로서는 따로 의견을 낼 수도 없지만 내고 싶지도 않았다. 오해가 오해를 낳고 있는 상황에 굳이 싸울 거리를 더할 필요는 없으니까...
왕따의 중심 주제로는 포트나이트라는 게임이 있었다. 포트나이트를 하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모여든 그룹이 그 게임을 하지 않는 아이들을 얕보고 무시하면서 충돌이 일어났다. 포트나이트를 하는 아이들은 남자답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샌님이라는 식의 놀림이 몇몇 아이들을 화나게 했다. 그런데 이게 왕따라고 할 만큼 심각한 건가? 내 아이가 그 입장이 아니라 공감하기 어려웠다. 아들은 포트나이트를 하지 않는데 그저 관심이 없어서일 뿐 못하는 게 아니어서인지 그런 약 올림이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빠가 게임 연구자이기도 해서 반 친구 누구보다도 다양한 게임을 접할 수 있는 아들은 게임에 관해서는 웬만한 놀림이 통하지 않으리라...
그나저나 그가 물어본 아들 친구의 엄마와 내가 물어본 아들 친구의 엄마의 반응에 온도차가 있었다. 왕따라며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과 남자아이들 간 충돌이 지나쳐 문제가 되었다고 받아들이는 사람이랄까? 상황을 잘 모르는 우린 그저 한 발짝 물러서서 이 일이 어떻게 해결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왕따 문제와는 결이 다른 폭력적인 아이에 대한 문제가 언급되기도 했다. 작년 가을이나 겨울에 전학 온 아이가 있다. 그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폭력적으로 대해 왕따로 인한 긴장을 더 악화시키기도 했다. 겨울에 아들이 같은 반 아이가 던진 얼음을 맞고 화가 나서 집에 온 적이 있었다. 이유 없는 폭력을 이해할 수 없었던 아들은 미처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아무런 대응 없이 집으로 돌아와 아빠에게 하소연을 했다.
아들의 오랜 친구는 크리스마스 즈음 거의 매일 이유 없이 문제의 아이에게 폭력을 당했다고 했다. 밀치거나 때리거나... 에휴... 아들의 오랜 친구가 착해서 망정이지... 아들의 오랜 친구는 평균 키인 아들보다 머리 하나 정도 더 크고 덩치도 상당한데... 아이가 순해서 적당히 당해준 모양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반에서 짱 먹을 아이인데...
문제의 아이는 폭력을 당한 아이들 학부모의 지속된 항의를 바탕으로 학교 관계자의 적극적인 개입이 이뤄졌고, 그 결과 폭력성이 줄어든 듯하다. 아이 스스로도 폭력적인 행동으론 그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을까?
왕따의 중심에 있다는 아이의 이름이 매우 낯설었다. 아들과 접점이 없어서 어울려 놀지 않는 아이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서로 부딪히지 않은 게 아닐까? 반면에 왕따를 피해 전학 갔다는 아이의 이름은 익숙했다. 코로나 때문에 생일파티를 하지 못한 작년을 제외하고, 아들이 두 번의 생일파티에 모두 초대했던 아이였다. 친구가 누구누구 있냐는 질문에 아들이 언급했던 이름이기도 했다. 전학 간 아이가 친구냐는 질문에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가 전학 간 이유를 혹시 아느냐는 질문에 아들은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반에서 다른 아이를 괴롭히는 아이가 있는지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가 있는지를 묻자 간단하게 고개를 저었다. 예상대로 아들은 왕따 사건을 전혀 몰랐다. 그러니 다른 엄마들이 아들은 왕따와 전혀 관련이 없다는 말을 하지... 아들의 무심함이 왕따와 거리를 두게 만들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