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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Mar 05. 2021

핀란드 초등학교 학습상담

1년에 한 번 아이, 부모, 선생님과 함께 하는 학습상담

배경 이미지 출처: Pexels



2021. 3. 2


아들의 학습상담,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


팟캐스트를 들으며 빨래를 널고 있었다. 헤드폰 사이로 희미하게 부산함이 느껴졌다. 그가 웹캠의 앵글을 조절하며 아들과 함께 컴퓨터 앞에 있었다. 아들 담임선생님과의 학습상담이 이미 시작되었다. 내겐 아무 말도 하지 않다니! 빨래 널기를 멈추고 조용히 두 남자에 합류했다. 상담은 당연히 핀란드어로 진행되었다. 중간에 끼어든 셈이라 영어로 해달라기도 뭐하고, 아들이 주체가 되는 상담이니 핀란드어를 사용하는 것이 최선이기에 조용히 대화를 경청했다.


매우 어설픈 핀란드어 실력으로 아들이 수학을 매우 잘한다는 이야기만 이해할 수 있었다. 순간 소외감이 밀려왔지만 어쩌겠는가? 어차피 끼어들지 못할 바엔 빨래나 마저 널자는 생각에 슬며시 방을 나왔다. 빨래를 다 널은 뒤에도 상담은 계속되었고, 자석에 끌리듯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지만, 보이지 않는 언어의 벽은 여전했다. 그의 옆구리를 찌르며 입모양으로 통역을 요청했지만, 그는 상담이 끝난 후 요약을 해주겠다고 했다. 그의 제안이 효율적이라는 생각에 자리를 떴다. 얼마 후 그가 나를 불렀다. 아들의 담임선생님에게 궁금한 점이 없는지를 묻고 있었다. 


아들이 주의가 산만하진 않은지를 물었다. 그렇지 않다는 대답에 질문을 수정했다. 수업시간에 주어진 과제 (나머진 숙제로 하면 되는데)를 마치는데 정신이 팔려 다음으로 넘어간 수업의 흐름을 놓치는 경우가 없는지를 물었다. 가끔 그런 경우가 있지만, 문제 된 적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다음 상담 시간에 쫓겨 상담은 마무리되었다. 상담이 끝난 후에도 그와 아들의 대화가 이어져 상담 내용을 듣기 위해 한동안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듣게 된 상담 요약은 매우 짧고 무성의했다. 아들이 학교에서 무탈하게 잘 지낸다.


그는 이래저래 기다린 사람도 생각해야지 어쩌고 저쩌고 한소리를 듣고서야 조금 긴 상담 요약을 들려줬다. 아들의 학교 생활은 전반적으로 양호한 편이며 수학은 반에서 제일 뛰어나서 추가적인 과제를 받는다. 핀란드어는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뒤쳐지지도 않는다. 해리포터 시리즈 전권을 읽은 덕택에 단어와 읽기가 많이 향상되었다. 흥미로운 주제가 나왔을 땐 시끄러워져서 선생님의 지시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있다. 팀작업은 원만하게 수행한다. 대체적으로 능동적이며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 요청을 망설이지 않는다. 호기심이 풍부해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며, 특히, 자연, 과학 관련해서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싶어 하는 열정적인 학생이다.



1년에 한 번 아이, 부모, 선생님과 함께 하는 학습상담


아들이 초등학생이 된 후 1년에 한 번 아이, 부모, 담임선생님이 모여 학습상담을 해왔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의 세 번째 학습상담이 지난 화요일로 예정되었다는 안내 메일을 받았다. 메일은 코로나의 여파로 구글 미트를 이용한 온라인 상담으로 25분간 진행될 예정이라는 안내와 함께 앞의 상담이 밀릴 경우 예정된 시간보다 상담이 늦어질 수 있음을 알려왔다. 원활한 상담을 위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설문지를 작성하도록 요청하는 내용도 있었다. 그가 아이와 함께 설문지 작성을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담임선생님은 작성된 설문지를 받지 못했고 설문지 없이 상담이 진행되었다. 설문지가 상담 내용의 일반적인 틀이기에 간추려보았다.


학교 다니는 것이 좋은가? 학교에 친구가 있는가? 싸움이나 왕따에 연루된 적이 있는가? 학교 생활이 지치진 않는지, 숙제가 과해서 피로하진 않은지? 점심 급식을 얼마나 먹는지, 입에는 맞는지? 하루에 집에서 몇 끼를 먹는지? 아침, 간식, 저녁, 저녁 간식? 수면시간이 얼마인지? 디지털 기기 사용시간은? 잠자기 전에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지, 숙제할 때 사용하는지? 디지털 기기가 우정을 돈독하게 해 주는지, 지식과 기술 획득에 이용되는지? 디지털 기기가 수면이나 숙제, 일상을 방해하진 않는지? 학생의 장점은 무엇이고, 향상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코로나 상황이 학교 생활에 영향을 끼쳤는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설문지에 대한 아들의 대답은 학교에 대해 전반적으로 만족하며 9시간 이상 숙면을 취하고, 상당 시간( several hours) 디지털기기를 이용하지만, 잠자기 전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원격 수업이 진행되던 시기에는 디지털 기기 사용이 많았으며, 평소 숙제를 할 때도 이용했지만, 지금은 숙제가 없어서 디지털 기기를 놀이 외로 사용하는 경우가 적다. 그러나 때때로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기도 한다. 디지털 기기가 수면이나 숙제, 일상을 방해하진 않는다. 수학을 잘하고 팀작업을 잘 수행하는 것이 장점이고, 핀란드어가 아주 능숙한 편이 아니어서 더 나아졌으면 한다. 영어도 더 잘하고 싶다. 영어는 게임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아니면 여동생이 잘해서 더 잘하고 싶은 것일 수도... 코로나의 영향은 별로 없었다.



다른 선생님, 다른 상담 스타일? 아님 온라인이라서?


올해는 아들의 담임선생님이 휴직이라 대체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두 선생님의 다른 교육 성향 덕에 의도치 않게 비교하게 된다. 휴직 중인 아들의 담임선생님은 열정이 넘쳐흐르시는 분이다. 이전에도 느끼고 있었지만, 대체 담임선생님 덕에 더 뚜렷이 알게 되었다. 휴직 중인 선생님은 숙제를 적당히 내주시는 편이었는데, 대체 담임선생님은 숙제가 거의 없다. 한번 있었나? 대체 담임선생님은 필요조건만 충족하는 게 아닐까 싶다.


아들이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을 땐 매일매일 숙제가 있어서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일부 학부모들은 선생님에게 숙제를 줄여달라고 요청했었다. 어느 학부모는 아이가 방과 후 숙제를 하느라 매일 45분이나 소비한다는 불평을 하기도 했다. 휴직 중인 선생님은 새 학기라 배울게 많아서 그런 것이니 차차 나아질 것이라며 학부모들을 달랬고, 어느 순간 숙제가 버겁지 않은 정도로 줄어들었다.


아들의 1학년 때 학습 상담은 아들이 현상황을 인지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였다. 휴직 중인 선생님은 아이의 상황에 대한 여러 개의 문장 카드와 아주 긴 온도계를 준비했다. 온도계는 책상 두세 개를 붙여놓고 올려놓을 정도로 길었다. 아이는 선생님이 준비한 문장 카드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서 높은 온도와 낮은 온도로 구분해서 올려놓았고 선생님은 상담의 결과물로 온도계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2학년 때는 아들이 자체 진단 질문지를 작성하게 하였고 후에 얼마나 나아졌는지를 확인하게 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습상담에 있어 휴직 중인 선생님은 무언가 손이 가는 준비를 하셨고, 아이가 더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반면 대체 담임선생님은 큰 그림에선 다를 게 없지만, 상담을 간편하게 하고 싶어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학습상담은 아이의 전반적인 생활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는 자리이다. 아이의 장점을 살펴보고 향상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를 짚어보기도 한다. 대체 담임선생님의 설문지는 학습상담의 목적을 충족시키긴 하지만 휴직 중인 선생님의 방법과 비교하면 좀 건조하게 느껴졌다.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 왠지 휴직 중인 선생님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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