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를 당하는 사람보다 사진이 도용된 사람이 제일 큰 피해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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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얼핏 보기엔 러시아 이름을 가진 매력적으로 생긴 여성이 친구 신청을 했었다. 로맨스 스캠인가? 난 여잔데, 왜 여자가? 호기심이 살짝 발동해서 프로필을 살펴보니 서로 아는 친구가 몇 있다. 그제야 이름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몇 번 본 적이 있는 내 절친의 직장 동료였다. 친구 요청을 수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한 절친의 베이비 샤워 파티 참석 여부를 묻는 메시지가 왔다. 깜짝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친구 몰래 연락을 취하느라 페북에서 친구 신청을 한 것이었다.
이번 주 Harrison Kim이라는 사람이 친구 요청을 했다. 모르는 사람 같았지만, 혹시나 지난번처럼 친구의 친구인가 싶어 프로필을 살폈다. 재미교포, 미군, 의사, 이혼남 정도의 정보와 사진 몇 장이 눈에 띄었다. 교집합이 전혀 없는 사람이니 손쉽게 로맨스 스캠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드디어 나에게도?
쓸데없는 호기심에 몇 장 안 되는 사진을 살펴봤다. 같은 날 올린 사진들로 자신감 넘쳐 보이는 의사 가운을 입은 중년의 동양 남자 사진, 수술 장면을 담은 사진,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결혼 기사 사진이 있었다. 허술한 사진 몇 장으로 사람을 속이려 하다니... 조금 더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의사 가운에 수놓아진 글씨를 들여다봤다.
Peter Rhee, MD
Trauma, Critical Care
Emergency Surgery
젠장! 성의가 없어도 너무 없다. 사진에 나온 이름이라도 쓰지. 친구 추가를 해서 좀 놀려줄까 잠시 고민했지만, 적당히 폐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나의 페북 계정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 바로 포기했다.
사기꾼의 게으름을 고려해보면 사진을 도용당한 피터 리라는 의사는 실존 인물일 것 같았다. 구글을 돌려보니, 그는 위키피디아 페이지까지 있는 퇴역 군인이자 의사로 2011년 애리조나 투산 총기난사 사건 피해자 담당의로 언론의 조명까지 받은 유명인이었다.
시간을 낸 김에 사진도용을 알려주는 게 좋을 것 같아 페이스북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페이스북 검색 결과는 더더욱 어이가 없었다. 같은 이름으로 그의 사진을 건 계정이 여러 개 보였다. 사진도 많고, 친구도 많고, 게시물도 상당한 시간에 걸쳐 올라온 계정이 하나 눈에 띄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본인 추정 계정에는 다른 스캠 계정의 소개에 쓰여있던 미군, 의사와 같은 정보는 보이지 않았다.
진짜 계정을 훑어보다 발견한 게시물은 사진도용을 알릴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얼마나 시달렸으면 냉소적으로 자신이 가짜라는 게시물을 올렸을까? 굳이 그에게 로맨스 스캠 관련 메시지를 보내 다시 상기시키고 싶지 않았다.
이 사람은 가짜다
글을 마무리하려고 마지막으로 나의 친구(?) Harrison Kim의 페북 페이지를 살피다 페북 주소가 눈에 띄었다. 페북은 사용자의 이름을 바탕으로 개인 페이지의 주소가 생성되는 것 같은데, Harrison Kim의 페북 주소는 Acheampong Rosemary였다. 구글 덕에 Acheampong Rosemary가 아프리카계 여성의 이름이라고 추정할 수 있었다. 추가로 몇몇 Peter Rhee의 가짜 계정들의 주소를 확인해보니 다양한 이름들을 볼 수 있었다. 개중에는 Peter Rhee 이름을 사용한 계정도 있었는데, 이 사기꾼이 제일 부지런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https://www.facebook.com/acheampong.rosem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