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팔면 만들어 먹으면 된다! 게다가 그 과정이 휴식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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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씬한 삶보단 건강하고 맛있는 삶을 위하여!
치즈케이크를 구울 요량으로 필요한 재료를 사 나른 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마음속으로 이제 케이크를 구울 때가 되었다를 여러 번 외쳤지만... 이런저런 일을 하다 케이크는 다음에 구워야겠네로 하루를 마감한 지 여러 날... 휴식으로 여겼던 일을 몰아하다 지쳐버린 내가 큰맘 먹고 마음을 내려놓고 한 일을 결국 치즈케이크 굽기였다.
여느 아침처럼 아이들의 등교를 챙기고, 아침을 먹고, 전날 하루 종일 붙들고 있던 브런치 글을 마무리해서 발행하고, 빨래를 널고, 장을 보고, 점심을 먹고, 나의 하루가 여전히 빈틈없이 채워지고 있었다. 단지 서두르지 말자, 조급해하지 말자, 천천히 해도 된다, 오늘 꼭 해야 할 일이란 없다를 속으로 되뇌며 나를 달랜 게 달랐을 뿐이다. 제대로 된 휴식을 위해 아무것도 안 하고 멍 때리기를 수행하기엔 머릿속에 똬리를 튼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마음에 걸렸다.
적당히 강박을 달래며 휴식다운 휴식을 취하기 위해 평소 아이들을 재우고서야 굽던 치즈케이크를 대낮부터 굽기로 했다. 미루던 일이기도 하거니와 예전에 사다 놓은 재료 중 크림의 유통기한이 임박하기도 해서 해야 할 일로 변환되었으니, 강박에게 충분히 위안이 될 일이었다. 휴식이 필요한 나는 베이킹 자체가 주는 힐링을 즐기기로... 베이킹보단 힐링에 초점을 맞췄기에 효율적인 준비과정보다는 내키는 대로 나중에 필요한 치즈 반죽을 먼저 해놓고, 케이크 베이스로 쓸 초코케이크 반죽을 준비했다.
대체로 가벼운 질감의 치즈케이크가 주를 이루는 핀란드에서 내가 좋아하는 오븐에 구운 꾸덕꾸덕한 치즈케이크를 사 먹기는 쉽지 않다. 어쩌다 브라우니 치즈케이크 레시피를 발견하고, 유레카를 외치며, 조금씩 레시피를 변형해서 만든 나만의 레시피는 아이들을 위한 초코머핀과 치즈케이크를 동시에 구울 수 있다. 다이제스티브 과자를 뿌셔 만든 치즈케이크 베이스를 좋아하지 않아, 한동안 베이스 없는 치즈케이크를 구웠고, 어느 순간 흥미를 잃어 치즈케이크를 멀리 했었다. 브라우니 치즈케이크는 나의 치즈케이크에 대한 사랑을 되찾아 주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느릿느릿 머핀 틀과 파운드 틀에 초코 반죽을 부어서 오븐에 넣어놓고, 오븐이 할 일을 하는 동안의 강요된 기다림은 나의 휴식이 되었다. 따끈한 초코머핀과 초코케이크가 완성되고, 치즈 반죽을 부어서 더 구워야 하는 파운드 틀의 초코케이크가 식기를 기다렸다. 평소보다 치즈 양이 늘어난 탓에 파운드 틀이 작아 1회용 알루미늄으로 된 작은 용기를 찾아 반죽을 나누어 부었다. 그리곤 다시 오븐으로, 이전보다 더 긴 시간의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늘 하던 데로 치즈 반죽을 준비했던 그릇에 며칠 뒤 딸에게 해줄 크레페 반죽을 했다. 은근 설거지 그릇 줄이기를 좋아해서 한 번에 가능한 이것저것을 다 하려는 성향이 있다. 보통 레시피의 양보다 1.5배로 하는데, 중간에 계산을 잘못했는지 반죽이 좀 된 것 같았다. 레시피를 주로 하는 양에 맞추어 고쳐놓던지 해야지... 밀가루의 양을 되짚어보고 그에 맞게 다른 재료들을 추가적으로 더 넣어 눈으로 반죽 농도를 맞췄다. 완성된 반죽은 냉장고에서 숙성을 거친 뒤 크레페가 될 것이다.
오랜 기다림의 끝에 치즈케이크가 완성되었다. 오븐 안에서 부풀어 오르는 반죽을 보면 마음이 따스해지고 안정이 된다. 베이킹이 선사하는 마력이다. 내가 좋아하는 치즈케이크를 만들려면 케이크 베이스를 굽고 그 위에 치즈 반죽을 부어 구어야 하기 때문에 베이킹의 마력을 두 번이나 거치게 된다. 덕택에 조급한 마음이 조금은 진정이 된 것 같았다. 치즈케이크를 차갑게 굳히는 또 다른 기다림을 거쳐야 했지만,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의 감동을 떠올리며 마냥 즐겁기만 했다.
그나저나 왜 아이들은 치즈케이크의 매력을 알지 못할까? 내가 먹을 치즈케이크가 많아져서 좋긴 하지만 맛있는 걸 같이 나누는 기쁨은? 딸은 오랜만에 구운 초코머핀을 두 개나 먹었고 그와 아들은 저녁 디저트로 초코머핀을 한 개씩을 먹었다. 비어 가는 머핀 틀을 보며 이렇게 각자 좋아하는 것을 한 공간에서 함께 먹는 것도 나누는 기쁨이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