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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Mar 08. 2022

종종거림이 부른 부작용

뒤틀어진 나의 시간, 쉽게 상처받는 마음, 휴식이 필요하다!

배경 이미지 출처: Pexels



어쩌다 듣게 된 수업 덕에 두 달 정도를 다소 쫓기듯이 살았다. 중간에 감기 앓이로 2주 정도를 억지로 쉰 탓일지도... 지난 2월 19일 워크숍 수업 이후, 워크숍 리포트, 밀린 과제 하나와 마지막 과제까지 마쳐야 하는 상황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어찌어찌 하나씩 해내며, 어느 순간 과제를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여 기쁘기도 했다. 가족과 이리저리 시간을 보내다 휘리릭 지나가는 주말까지 양해를 구해 틈틈이 과제를 했다. 할 일을 미루는 습관도 옆으로 미뤄놓고 과제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마지막 수업이 있는 3월 2일 새벽까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적어도 이틀은 맘껏 쉬리라 다짐했지만, 미뤄두었던 것들에 대한 욕심을 채우다 보니 나를 몰아치게 되었다. 휴식이라 생각했는데 휴식이 아니라 머리가 마음이 서운했던 걸까? 이상신호가 감지되었다. 시간에 대한 나의 인식이 몇 번 뒤틀렸고, 예민해진 마음은 타인의 불편한 참견 한마디에 겉으론 지나쳤지만 속으론 과한 반응을 일으키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바쁘긴 한데 먼가 딱히 한 일이 없는 것 같은 불편한 마음이 나를 계속 다그치기도 했다. 


종종 대느라 미쳐 살피지 못해 여기저기 내게 붙은 부정적인 에너지 조각들을 털어낼 때가 온 것 같다. 멍 때리기가 필요한 게 아닐까? 그전에 지난 며칠을 돌아보며 나의 바빴던 마음에 대한 이해를 하려 애써보는 건 어떨까? 해야 하는 또는 하고 싶은 일이라고 쌓아둔 욕심을 살짝 제쳐두고, 지친 내 안의 나를 다독거려줘야 할 것 같다. 왜 그리 바빴지? 친구도 만나지 않고, 장보기도 미루고, 김치 담기도 미루고, 그와 넷플릭스 보는 것도 미루고, 소소한 휴식을 채우던 나의 일상을 미루다 잠시 생긴 여유에 최대한 미루던 일상을 구겨 넣으려 애쓰다 보니 휴식이 휴식이 아닌 부담으로 다가오며 오히려 탈이 난 게 아닐까?



3월 2일, 수요일의 기억과 아들의 의도치 않은 격려


마지막 수업이 있던 2일은 새벽에 간신히 잠든 탓에 아침에 그를 도와 아이들을 챙긴 후 다시 잠을 청했다. 11월 말부터 12월까지 3주간 이어졌던 캐리어 코칭 프로그램 (Unemployment office에서 추천한) 이후, 추가적으로 온라인 워크숍과 1대 1 코칭이 한 달에 한 번씩 세 번 있었는데, 마지막 미팅이 나의 마지막 수업과 같은 날 오전 10시 30분에 잡혔다. 미팅 전 일어나 가벼운 마음으로 1시간 줌 미팅을 끝내고 늦은 아침을 먹고, 한동안 미뤄둔 장보기 겸 바깥바람 쐬기를 하고 돌아와 숨 고르고 나니, 딸의 음악놀이교실을 챙길 시간이 되었다. 딸의 수업 동안 아들과 딸을 위해 도서관에 예약해둔 책과 우편물을 챙겼다. 집으로 돌아와 간식을 챙겨주고 잠시 쉬었다가, 수업을 들으며 저녁을 먹을 요량으로 내 저녁을 챙기니, 어느새 마지막 수업 시간인 오후 6시가 되었다. 8시에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을 재우고 운동하고 설거지를 하고 나니 하루가 슝 지나갔다.


하루 온종일 바빠 보이던 엄마에게 아들이 새벽에 무얼 했냐고 물었다. 새벽에 잠시 깼는데 엄마가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며... 과제하느라 깨어있었다며 요즘 엄마가 분주했던 것도 그 때문이라 답하니, 아들은 엄마도 과제를 하냐며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봤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나 듣고 있고, 그 수업 과제를 했다며, 결과물을 보여주자 아들은 새벽까지 엄마가 잠들지 못한 이유를 단번에 수긍했다. 이걸 다 엄마가 했냐며 되묻는 아들의 표정에 나의 고단함은 샤르르 녹아내렸다. 아들아 네 눈빛이 엄마를 열심히 살라고 힘내라고 격려하는구나! 고마워! 사랑해!



3월 3일, 목요일의 기억


나를 분주하게 만들었던 주된 요인이었던 수업이 종강을 한 다음날은 한가로울지 알았지만, 다른 의미로 무척 바빴다. 집안일을 챙기고 전날 찾아온 우편물을 한국으로 발송하는 일을 챙겼지만, 러시아 덕에 항공우편에 문제가 있어서 다른 배송업체를 알아봐야 했다. 감기와 밀린 과제 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탓에 한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와 점심을 먹으며 수다를 즐기던 시간은 여유로웠지만, 만나는 장소까지 우편물 변수로 시간이 지체되어 서둘러 가야 했다. 딸을 데리러 가기 위해 돌아오기 전, 친구와 만났던 쇼핑몰에서 물건들을 사느라 시간에 쫓기기도 했다.


어린이집에서 딸을 데리고 나올 땐 급기야 주말 잘 보내라라는 말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쫓기듯이 여러 날을 보내서 그런가? 목요일 오후였지만 금요일 오후라 착각해서 주말에 쓸 것들을 챙겨 나왔다가 다시 두고 나온 뒤에 또 금요일이라는 생각이 들다니... 저녁엔 미뤘던 청소도 했다. 



3월 4일, 금요일의 기억


금요일도 여전히 시간은 내 편이 아니었다. Unemployment office 관련 요청 서류를 온라인으로 작성하고, 전날 우체국 사정으로 미뤄뒀던 한국으로의 서류 발송을 DHL을 통해 보냈다. 온라인으로 신청서를 작성하고 배송료를 지불한 뒤 가까운 편의점 같은 곳에 서류 봉투를 맡겨두는 이론상으론 간단한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았다. 지인의 부탁이라 내가 운송비를 내는 게 아니었지만, 할인행사를 이용하기 위해 처음 작성한 신청서는 폐기하고, 프로모션이 진행 중인 해당 홈페이지를 전화로 확인하여 재작성하였고, 끝까지 무탈하게 갈 수 있는지를 확인하느라 진땀을 뺐다. 


점심을 먹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잃어버려서 그리워진 볼펜을 사고, 김치, 무생채, 무 간장 장아찌 담을 거리를 장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니 하루가 슝 지나갔다. 너무 피곤해서 저녁 낮잠을 자고 일어나 계획했던 최소의 일을 다 해서 그런지 자정을 넘겨 잠자리에 들었다. 목요일과 금요일은 적당히 쉴 거라 마음먹었는데... 하고 싶거나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3월 5일, 토요일의 기억


토요일은 2주간 휴식 뒤에 가게 된 한글학교를 다녀왔고, 늦은 점심을 먹고 피곤에 절어 낮잠을 잤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순간 딸아이의 목소리가 귀에 꽂히며 잠이 깼는데, 토요일 아침 8시 알람이 울리고 깜빡 잠들어 다시 깼는데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아 한글학교에 늦겠다는 조급함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곤 일요일 아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늦잠을 잔 건가? 아이들 아침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며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4시... 한글학교 다녀온 뒤 피곤해서 낮잠을 잔 거라는 걸 깨닫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정신을 추스르고 전날 준비해 놓은 재료로 김치와 기타 등등을 만들었다. 며칠 뒤 오븐에 구을 덩어리 삼겹살도 양념에 재우고, 드디어 전날부터 먹고 싶었던 음식을 만들었다. 숭덩숭덩 썬 삼겹살에 간장과 고춧가루를 살짝 넣어 양파와 함께 버무려 볶았는데, 감격스러운 맛이었다. 식구들의 저녁은 이미 챙긴 뒤였지만, 오이 한 조각에 고기 한 조각을 얹어 딸에게 몇 점을 주었다. 혼자 맛있게 먹는 것도 좋지만 같이 맛있게 먹는 건 더 좋다. 


머가 그리 바쁘다고 먹고 싶은 것도 제때 못해먹었는지... 벌려놓은 뒷정리 설거지는 상당했고, 운동도 해야 했다. 유독 운동하기 싫다는 생각과 미루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 한 주였지만, 하루 미루면 내일 해야 하는데 그게 더 싫어서 운동도 챙겨했다. 여하튼 이번 주에 할 운동을 다해낸 내가 참 기특했다. 칭찬해! 나를~



3월 6일, 일요일의 기억


느긋하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을 챙기고, 장을 보고, 식구들 점심을 챙겼다. 아이들에겐 또띨라 피자, 그에겐 채식 버거. 잠시 쉬었다가 딸과 긴장되는 체스를 두 판 두었다. 딸의 체스 실력은 눈에 띄게 늘고 있었다. 망설임 없이 체스 기물을 움직였던 내가 이전과 달리 체스 기물을 시간을 들여 신중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뇌세포를 태우고 난 뒤 아이들과 함께 한국어로 더빙된 메리다와 마법의 숲을 같이 봤다. 며칠간 달고나 모양 뽑기 게임을 하고 싶다고 조르던 딸을 위해 달고나를 만들어줬고 저녁으로 시금치 크림 파스타를 만들었다. 딸을 재우고 하루를 되돌아보니 나를 위해 한 일이 없는 것 같아 갑자기 슬퍼졌다.


그에게 하루를 바쁘게 보냈는데 딱히 한 게 없는 것 같다 하자, 나와 함께 내 하루를 돌이켜 보며 그만하면 꽉 채워 보낸 날이라며 나를 위로했다. 오랜만에 한두 시간의 여유가 생겼는데 넋이 나가 무언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케이크를 구울 생각이었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동안 계속 종종거린 것 같은데, 손에 쥐어지는 것은 없고, 시간은 흘러가다 못해 뒤엉켜버린 것 같아 슬펐다. 나를 돌아볼 여유가 없어서였을까? 토요일 누군가 했던 의미 없던 말이 마음에 콕 박혀 상처 아닌 상처가 되어 되새김질되었다.


그의 위로가 필요했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를 너무 몰아붙여 한없이 날카로워져 별거 아닌 것들에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내 마음속을 있는 그대로 나누기엔 나 자신이 창피했다. 평소 같으면 별거 아닌 일로 넘겼을 일들을 붙잡고 늘어지는 거라... 시간이 지나면 잊히겠지만, 위로는 필요했다. 그에게 머리를 기대고 그냥 붙어있고 싶으니 신경 쓰지 말고 할 일 하라고 하자 그는 말없이 품을 내어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내 신경을 다른 곳으로 휙 돌려버렸다. 아니 내가 그랬던가? 우린 아이들의 체스 재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나의 우울함을 잠시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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