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 Feb 24. 2022

뭔가 특별한 볼펜, 발로그라프!

있을 땐 몰랐는데 없어지니 아쉽고 그리운 볼펜, 새로 장만하련다!

배경 이미지 출처: Pexels, 사진의 볼펜은 발로그라프가 아니다!



2022. 2. 23


지난 12월에 어쩌다 그의 볼펜을 얻어 쓴 적이 있다. 그 볼펜이 유독 필기감이 좋았다. 손으로 글씨를 쓸 일이 거의 없다 보니, 편한 필기도구를 딱히 찾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어쩌다 받은 볼펜들을 손에 잡히던 대로 쓰던 내가 필기감에 매혹되다니... 흔치 않은 일이었다. 자연스레 그 볼펜의 필기감을 사심 없이 칭찬했는데, 그는 내 칭찬을 아니 볼펜에 대한 만족감을 흘려듣지 않았다.


얼마 후, 크리스마스 선물로 볼펜을 받았다. 그가 아닌 아들에게서... 그가 필기감에 감탄하던 내 모습을 기억하고, 아들에게 내 크리스마스 선물로 필기감 좋은 볼펜을 추천해줬다. 그렇게 볼펜 하나가 내 일상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좋은 필기감을 가진 볼펜과 때마침 손에 쥐어진 작은 수첩이 예전보다 좀 더 메모를 하도록 부추겼다.


그제 보고서를 작성하다 막혀서 침대에 뒹굴며 생각을 끄적이고 싶다는 충동에 종이와 볼펜을 찾았다. 필기감 좋은 그 볼펜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지? 분명 지난 토요일 워크숍 때 쓰고 챙겼는데, 평소 두는 곳에 없었다. 있을만한 곳도 여기저기 찾아봤으나, 볼펜은 자취를 감췄다. 마지못해 손에 잡히는 다른 볼펜을 쥐고 끄적이는데 불편했다. 볼펜 하나 바뀐 것뿐인데 매우 불편했다. 그 볼펜이 없었을 땐 어찌 지냈던가?


결국 사라진 볼펜에 대한 아쉬움을 그에게 토로했다. 필기감이 좋아 손으로 끄적이는 걸 즐기기 시작했는데, 미쳐 인식하지 못한 작은 즐거움을 볼펜이 사라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다른 볼펜을 써도 되지만, 손에 익은 편한 필기감을 잊을 수 없어 그 볼펜을 다시 손에 쥐고 싶었다. 찾지 못하면 내가 그 볼펜을 사야 할 판이었다. 그제야 발로그라프 (Ballograf) 볼펜이 필기감이 좋고 볼펜심을 따로 살 수 있어 오래도록 쓸 수 있다던 그의 발로그라프에 대한 예찬이 귀에 들어왔다.


흘려듣던 그의 이야기도 귀 기울여 듣게 되었다. 발로그라프는 꽤 오래된 스웨덴 브랜드로 그의 어린 시절 (아마 30여 년 전?) 핀란드에서 널리 애용되었다. 자연스레 그도 부모님께 선물 받아 한동안 잘 사용했지만, 내가 그랬듯이 언젠가 잃어버렸다. 아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갔을 때 서점에서 발로그라프를 발견한 그는 아들에게 나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발로그라프를 권했다. 그렇게 내 손에 발로그라프가 들어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쉬움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커지는 걸 보니 발로그라프를 사러 가야겠다. 아들은 자기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발로그라프를 준 걸 기억하지 못했다. 아들이 발로그라프를 산 집 근처 서점이 없어졌는데, 새 발로그라프를 사러 어디로 갈까?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아저씨', 끝없이 맴도는 질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