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이 긴 드라마. 허구지만, 그리운 후계동 사람들. 반복되는 되새김질.
배경 이미지 출처: http://program.tving.com/tvn/mymister 스크린 캡처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 '네!'
나는 편암함에 이르렀나?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내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이다. 나는 한편으로는 편안함을 이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루지 못한 것 같다. 죽기 전에나 온전한 편안함에 이르지 않을까? 적어도 그랬으면 좋겠다. 편안히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도록... 내가 이룬 편안함은 가정이다. 그가 있고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들과 딸이 있다. 투닥투닥 살아가는 일상이라 때로는 화도 내고 소리도 지르지만, 많이 웃기도 하고 자주 행복해서 가슴이 따스해지기도 한다. 가족과 대체적으로 무탈하게 평온한 삶을 이어가고 있으니 가족과 평안함을 이뤘다 여긴다. 이뤄야 하는 편안함은 백수 탈출이다. 긍정적으로 사회에 이름을 알릴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저 적당한 밥벌이를 하는 것만으로도 편안할 것 같다.
지안이 편안함에 이루도록 도왔던 아저씨 동훈은 주변의 인물들에게 사람 좋은 아저씨였지만, 자신의 아내인 윤희에게는 편안함을 주지 못했다. 윤희의 외도는 명백한 윤희의 잘못이지만, 윤희가 외로웠던 것은 부부 모두의 잘못이 아닐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루면 상당한 부딪힘을 겪는다. 그 경험에서 다름을 인정하고 접점을 찾아 시간을 나누며 서로를 받아들여 살아가야 무탈한 부부의 삶이 되는 게 아닐까? 동훈과 윤희는 다름에 대한 마찰을 마주하지 않고 한 발짝씩 물러서면서 서로 멀어졌다. 자기 생각만 하느라 어긋난 게 아니고 과도한 배려로 포기를 반복하면서 서로 기대지 못하는 각자 외로운 혼자가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로 적당히 인생을 공유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후계동 사람들... 현실에서 그런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을까? 혹시나 그런 이들을 알게 된다면 조금 부러울 것 같다. '나의 아저씨'에서 후계동 사람들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그려졌다. 그런데 후계동 아저씨들 정도의 삶에 이르는 것조차 어려운 요즘이 아닌가?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정상은 아니지만 나름 고위직까지 도달했던 한때 잘 나갔던 평균 이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게다가 묵묵히 걸어가는 인생의 내리막길을 여전히 함께할 친구들이 있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20대 초반 첫 직장에서 후계동 사람들처럼 거의 매일 저녁을 같이 보낸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은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연락도 닿지 않는 그 시절 직장 동료들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던 사회초년생이 회사가 전부라고 여겼기에 가능했던 시간이었다. 그때는 챙겨야 할 가족이 없었고,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후계동의 아저씨들은 가정이 있는데, 지나치게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북적북적 친구들과 즐거움도 나누고 고됨도 나누다 돌아서는 그들에게 가족들과 나눌 무언가가 남아있을까? 가족과 같은 친구들이 가족을 대체하면서 가족의 자리를 위협하는 건 아닐까? 후계동 패거리들에게 동훈의 아내, 윤희가 느꼈던 불편함이 이것이라...
화면으로만 바라보는 달동네의 모습은 정겹다 못해 그립다. 내가 지금 그 풍경의 일부로 살아간다면 불편하겠지만, 달동네에 살지도 않았는데, 묘하게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내 마음을 툭툭 건드리는 기찻길과 달동네의 풍경이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있다. 내게 맞지 않는 곳이라고 떠났는데, 17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 난 한국이 너무 그립다. 돌아간다면 또다시 몸서리치며 돌아설지도 모르지만... 다시 한국에서 자리 잡고 살 기회가 있을까? 예전엔 미쳐 생각지 못한 감정을 다루느라 애쓰는 나를 어찌 달래야 하나?
지안은 상속포기를 몰라 엄마의 빚을 상속받아 성인이 되기도 전에 자신의 힘든 환경에 무거운 짐을 더했다. 거기에 할머니까지... 부모가 없는 지안이 할머니를 부양하지 않아도 된다는 동훈에게는 상식이 지안에게는 놀라운 선물이었다. 동훈이 없었다면 지안은 할머니와 어떤 이별을 했을까? 지안처럼 무지 때문에 힘든 삶에서 짐을 덜을 기회를 놓치는 사람들이 현실에도 있을 것이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면 조금은 인정받으며 무탈하게 살았을 지안이었을 텐데... 인스턴트커피를 들이부으며 쪽잠자는 지안의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스무 살이니 어찌어찌 하루를 살아내겠지만, 안에서부터 몸이 조금씩 무너질 텐데... 지안처럼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20대가 현실에도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힘든 사람들이 망설이지 않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회적 도움의 수혜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그 도움을 어렵지 않게 받아 그들의 삶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내일을 꿈꿀 수 있도록...
문득 생각나는 다른 나라 이야기, 미국에서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 입학 허가를 받은 학생들이 결국 입학을 포기하는 사례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이유를 설명하는 방송을 들은 적이 있다. 가정형편이 어렵다면 금전적 부담을 여러 장학 혜택으로 현저히 줄일 수 있지만, 여러 혜택에 대한 무지로 대학 입학을 포기하는 입학 예정자들이 상당하다는 보도였다. 주변에서 대학을 다닌 사람이 없어서 다른 입학 예정자들보다 혜택에 대한 정보 접근이 어려운 똑똑하지만 무지한 어린 청년들이 내일의 가능성을 포기하게 된다는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음치라서 일까? 아니면 아직 초등학생 (사실 국민학생)이던 시절 밤마다 중학생이었던 언니가 듣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들 탓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너무 많이 겪어서일까? 난 노래에 굉장히 무심한 편이다. 어쩌다 마음에 와 닿는 노래가 들리면 좋구나 생각하고 금세 다른 데로 관심을 돌리는... 누가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잘 모르는... 그래서 한국처럼 노래 부르며 노는 문화가 아닌 타국에서 사는 게 다행인 사람이다. (물론 여기도 노래 부르며 노는 사람들은 있다. 가라오케가 나름 인기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가수 아이유도 잘 모르고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배우 아이유를 만나면서 가수 아이유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나의 아저씨' 보기 전엔 내게 배우 아이유는 '호텔 델루나'의 장만월이었다. 그러나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을 볼 때면 배우 아이유가 장만월이었다는 걸 잊게 했다. 이전 그림에 덧칠해서 새로운 그림을 그렸는데 이전 그림이 묻어나는 것처럼 배우의 강한 개성 탓에 이전 배역의 모습이 간혹 보이는 배우들이 있는데,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은 그렇지 않았다. 하얀 도화지에 새 그림을 멋지게 그려 넣는 배우 아이유가 좋아졌다. 장만월이 아닌 이지안이 아닌 다른 여러 사람으로 계속해서 배우 아이유를 만나고 싶다. 새로운 배역과 함께할 배우 아이유를 기다리며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