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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Mar 28. 2022

아들의 영어 시험 결과

내가 못하던 걸 잘하는 아들이 대견해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배경 이미지: 아들의 영어 시험지



2022. 3. 24


아들이 영어 시험지를 가져왔다. 60점 만점에 59점을 받아, 10점 만점으로 환산해서 10-의 점수가 기록된 시험지였다. 아들의 좋은 영어시험 결과에 한 없이 기뻤다. 보통 아들의 시험 성적에 크게 반응하지 않는 편인데, 아들이 기특해 지갑에서 1유로 동전을 꺼내 건넸다. 그 모습을 본 그가 좋은 성과에 대한 용돈을 따로 주지 않아도 되겠다 했다. 그는 아들이 시험이나 체스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면 1유로씩 추가로 용돈을 준다. 원래 2유로 주려다 그가 아들에게 당연히 1유로를 줄 것이라 생각하고 1유로만 준 건데... 그가 생각을 바꾼 탓에 아들에게 조용히 1유로를 더 챙겨주었다. 아들은 크게 미소 지으며 고맙다 했다. 그러고는 두 번째 준 1유로는 한국에 가서 쓸 거라며, 따로 모아두겠다 했다. 아들은 평소에 쓰지 않는 동전 지갑을 보여주며, 한국에 가서 사용할 돈을 동전 지갑에 따로 모으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 가긴 가려나? 코로나가 잠잠해져야 갈 텐데...


아들은 나를 닮았서인지 수학은 잘하고 언어엔 좀 약한 듯하다. 취학 전 스스로 글 읽기를 깨친 그는 내심 아들도 당연히 취학 전에 핀란드어를 읽을 거라 여겼는데, 아빠의 기대와 달리 아들은 수학에만 두각을 보였다. 글자에 관심이 없는 아들에 대한 실망을 보상받으려는 듯이 그는 아들의 수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해 곱셈과 나눗셈에 대한 개념을 초등학교 입학 전에 슬쩍슬쩍 가르쳤다. 결국 아들은 학교에서 읽기를 배웠다. 이미 핀란드어 읽기를 터득하고 들어온 동급생들도 상당했는데, 그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느린 출발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들의 수학 성적은 늘 만점에 가까웠지만, 핀란드어 성적은 그럭저럭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과 비슷한 모습에 나는 그저 나를 닮아 그렇구나 싶었다. 언어는 아빠를 닮았으면 좋았을 텐데... 맘대로 되는 게 없는 세상이다. 


언젠가 아들의 시험 결과에 대체로 시큰둥한 나의 반응에 그가 왜 아들의 좋은 수학 성적에 기뻐하지 않냐고 물었다. 나를 닮아 수학을 잘하는 게 당연한 결과라고 여겨지는 것을 어찌하랴? 대신 아들의 핀란드어 성적이 수학만큼 좋지 않아도 나를 닮아 그러려니 하고 아들을 탓하지 않으니 나름 공평하지 않은가? 상대적으로 낮은 언어 성적을 볼 때마다 내 탓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만약에 아들이 핀란드어를 잘하고 수학을 못했다면 오히려 내가 그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그런데, 아들이 만점에 가까운 영어 시험지를 가져왔다. 아무래도 집에서 영어를 쓰는 빈도가 높다 보니 남들보다 영어를 잘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나의 어린 시절과 비교가 안 되는 아들의 영어실력이 너무나 기특했다. 순간 유튜브를 통해 스스로 영어를 배워,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딸이 떠올랐다. 딸은 영어에 있어서 아들에게 좋은 자극이다. 동생에게 뒤쳐질 수 없다는 오빠의 자존심을 의도치 않게 건드리며 영어공부에 대한 동기 부여를 하고 있으니... 오빠의 좋은 성과에 대한 딸의 공헌이 어느 정도 있다는데 생각에 딸에게도 추가로 50센트의 용돈을 주게 되었다. 


문득 아들의 반 친구들의 성적도 궁금해졌다. 아들보다 높은 점수를 맞은 친구는 없는지? 주변 친구들의 성적은 어떤지? 예상대로 아들은 여자아이들의 성적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 그러나 선생님이 만점을 받은 친구는 없다고 하셨으니, 자신이 반에서 1등일 것이라 확신했다. 이전에 반 친구들의 수학 시험 결과를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 결과와 큰 차이가 없는 듯했으나, 예외가 한 명 있었다. 반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 중 하나가 의외로 영어 성적이 좋았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라도 하나 잘하는 게 있는 아이라면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잘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자존감으로 이어져 나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할 테니 자포자기한 문제아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같은 반 아이가 하나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내 아들에겐 더 좋은 환경이 되는 것일 테니... 맘 속으로 그 아이를 응원하게 된다. 그나저나 난 진정 한국 사람인가 보다. 그는 아들이 성적만 관심 있던데, 난 꼬치꼬치 다른 아이들의 성적까지 캐묻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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