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 Mar 18. 2022

아들에게서 그를 보았다!

잠에 취한 채 침대를 정리하는 아들 vs. 마우스 패드를 정리하는 그

배경 이미지 출처: 우리 집 서버 어드매, 2013년 7월 31일 오후 산책 길에 찍은 사진으로 추정,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와 아들의 사진.



2022. 3. 16


10살 아들, 밤에 자다가 깨서 화장실에 스스로 갈 수 있을 테지만, 유독 아기 시절 이래저래 침대를 적시던 사고가 많았던지라, 우리는 여전히 자정 즈음 아들을 화장실로 데리고 간다. 이 일은 주로 그의 소관이다. 여느 때처럼 그가 자는 아들을 일으켜 세우는 것 같았는데, 둘이 투닥대는 듯한 소음이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살펴보니, 아들이 마치 화가 난 황소처럼 그를 머리로 들이받고 있었다. 그는 잠에 취한 아들의 어이없는 행동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어쨌건 내겐 너무나 사랑스러운 모습인지라 킥킥대며 아들을 달래 화장실로 이끌었다. 내가 알아서 하겠거니 싶었는지 그는 딸을 데리러 갔다.


잠에 취한 아들을 달래 화장실 미션을 무사히 마치고 침대로 데려다주었지만, 아들은 바로 침대에 눕지 못했다. 아들은 잠에 취해 정신도 못 차리면서 마치 베개가 어떤 위치에 정확히 있어야 하는 것처럼 베개를 여러 번 만지작 거린 후에 겨우 침대에 눕는 것 같았다. 그런데, 침대 옆에 놓여있던 뱀 인형들의 위치가 거슬렸는지 인형들의 위치도 다시 잡아준 뒤에서야 침대에 편히 누었다. 아들의 귀여운 강박 행동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누가 지 아빠 아들 아니랄까 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에게 무엇을 했길래 아들이 머리로 들이받냐고 장난스레 물었다. 그는 그저 고개를 내저을 뿐 아무 말이 없었다. 잠에 취해서도 물건들의 위치를 바로잡는 아들의 강박이 종종 마우스 패드의 위치를 바로잡는 그의 강박과 닮았다며 그 아빠의 그 아들이라는 말도 그에게 전했다. 드물게 '왜 하필 그런 걸 닮아.'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아들에게서 그를 볼 때마다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 특히, 아들과 딸이 깔깔거리며 웃을 때 어금니가 보일 정도로 활짝 웃는데, 그 모습이 내가 좋아하는 그의 웃음과 똑 닮았다. 그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아이들에게서 보이면, 안 그래도 이쁜 내 아이들이 더더욱 이쁘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가 깜빡한 쇼핑 아이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