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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Apr 15. 2022

지하철 이용을 꺼리던 여행객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뉴스를 접하며 떠오른 생각 둘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오래 전의 일이다. 벌써 10살인 아들이 유모차를 타던 시절, 유모차를 밀며 8번 트램에 올라탔을 때 어느 중년 여인이 "Does this tram go to Ruoholahti?"라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질문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나와는 거리가 좀 있었기에 누군가 답하겠지라 여겼는데, 같은 질문이 계속해서 들렸다. 영어 발음이 아주 친근한 한국식이라 내겐 너무 잘 들렸는데, 핀란드인에게는 'r' 발음이 부정확해서 알아듣기 어려웠나 고개를 갸우뚱하며 여인을 불러서 세웠다. 


커다란 여행가방과 함께였던 한국 중년 여인이 한국말을 하는 나를 반갑게 바라보았다. "이 트램이 원래 Ruoholahti까지 가는데, 오늘은 헬싱키 시내에 행사가 있어서 거기까지 운행하지 않아요. Sörnäinen에서 지하철로 갈아타시면 Ruoholahti까지 가실 수 있어요." 중년 여인은 나의 설명을 흘려들으며 이 트램으로 Ruoholahti에 갈 수 없냐고 재차 물었다. 다시 지하철로 갈아타라는 내 말에, 그녀는 한숨을 쉬며 자신의 짐을 가리키며 지하철 타기가 꺼려진다 했다. 지하철 노선이 하나라 복잡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게 그녀는 무거운 짐을 드는 게 꺼려진다고 하소연했다. 헬싱키에 오기 전에 파리를 여행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파리 지하철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 여러 번 큰 가방을 들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던 게 상당한 고역이었다고... 


그제야 그녀가 왜 그렇게 고집스레 트램이 Ruoholahti까지 가는지를 물었는지 이해가 갔다. 다들 지하철로 갈아타라는 설명을 해줬을 것이고, 그녀는 파리의 경험 탓에 미처 엘리베이터가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못하고, 지하철 역의 계단을 내려가고 올라가야 할 여정을 상상하며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그녀에게 나는 헬싱키 모든 지하철 역에는 유모차와 휠체어의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있으니, 무거운 짐을 계단으로 나르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하며 지하철로 갈아타고 목적지까지 맘 편히 가라 했다. 엘리베이터 사인을 따라가면 어렵지 않게 엘리베이터를 찾을 수 있지만, 혹시 엘리베이터를 찾지 못한다면 주변에 물으면 될 것이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그녀의 질문에 대답한 사람들은 대중교통의 유모차와 휠체어에 대한 접근성이 너무나 당연한 사회기반이었기에 아무도 그녀의 큰 여행가방이 지하철로 갈아타는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고 도리어 그녀의 망설임을 이해하지 못했다. 모국어로 대화하던 나조차도 그녀의 구구절절한 설명이 없었다면 이해하지 못했을 그녀의 고민... 심지어 지하철과 기차에 자전거 휴대 승차가 가능한 나라... 간혹 휠체어나 유모차가 대중교통에 오를 때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연스레 도움을 주는 주변의 손길들, 휠체어를 탄 손님을 태우기 위해 수동 발판이 있는 버스에선 발판을 직접 내려주는 버스 기사들... 


한국의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뉴스가 눈에 띌 때마다 이제는 아니 벌써 사라졌어야 하는 뉴스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언론이 도가 지나친 시위라고 잘못된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아닐까? 시민을 불편하게 해야 그들의 요구에 반응하는 언론과 사회가 문제는 아닐까? 장애인이 아니라도 다리를 다쳐서, 또는 아이가 있어서, 무거운 짐이 있어서, 나이를 먹어서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에 혜택을 함께 누릴 우리 가족이나 지인들이 있을 텐데... 좋은 디자인, 좋은 서비스, 좋은 사회는 미처 어떤 것이 좋다고 느끼기보다 무엇 때문에 불편함이 없다는 것조차 모르다가 어쩌다 고마움을 느끼게 만드는 무엇을 내포하고 있어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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