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축근무의 애매함

당신의 단축근무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동료는 있다? 없다?

by Ji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육아휴직에서 복직한 R은 단축근무를 신청했다. 이제 막 1살이 지난 아들이 어린이집에 오래 머무는 게 안쓰러웠던 듯했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는 한 회사에 일정기간 이상 근무했을 경우 단축 근무 신청이 법적으로 보장되기에, 80%만 일하기로 한 R의 단축근무는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것 같았다. R의 매니저는 복귀한 R의 업무 범위를 설정하고 R과 협업할 팀의 매니저들과 미팅을 통해 그녀의 복직이, 그녀의 단축근무가 무리 없이 이루어지도록 조율했다.


80%만 일하던 스위스에 거주하던 친구의 경험을 들었던 적이 있기에, 단축근무가 완정 생경하진 않았다. 실제론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있었는데, R이 친분이 있는 동료라 유심히 살펴볼 기회가 되었다. 80% 근무면 주 4일 근무이니 소득이 줄더라도 일주일에 휴일이 하루 늘어난 대가라면 그다지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주 4일 근무에 대한 동경이나 긍정적인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디자인 작업에 대한 소요시간을 예상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예상보다 시간이 더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이유로 R의 매니저가 80% 근무를 감안하여 R에게 할당했던 프로젝트들이 100% 근무로도 버거울 때가 종종 있었다. 결과적으로 R의 매니저는 업무 분배를 잘못한 것이었다. 게다가 단축근무가 아주 흔한 편은 아녔기에 R이 80%만 일한다는 것이 자주 잊히곤 했다. R의 단축근무를 고려해서 협업하는 동료는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정상근무를 하더라도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여러 개일 경우 프로젝트 간 충돌이 발생하고 개인의 시간 안배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니까. 노키아는 유연 근무제를 표방하는 회사로 직원의 근무시간을 일일이 따지는 회사가 아니었다. 때로는 초과근무를 하고 나중에 한가할 때 개인이 알아서 대체 휴가를 챙기는 자유로운 회사 문화에서 단축 근무를 하던 R은 자신의 단축근무 상황에 대한 목소리를 조금 높였어야 했던 건 아닐까?


복직한 R은 일단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는데 집중했다. 단축근무로 줄어든 업무시간에 밀려오는 업무를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던 R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불합리하다는 걸 깨닫는데 시간이 걸렸다. R은 매니저에게 협업에 대한 조정을 요청하며 상황을 개선해보려 노력했다. R의 상황을 바꾸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R을 옆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R의 상황이 완전히 개선되었다고 느껴지지 않았고 내 사전엔 단축근무는 없다는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쩌다 보니 R은 80%의 월급을 받으며 100%의 월급을 받는 남들처럼 일하고 있었다.


만일 R이 자신의 단축근무에 대해 사무실 주변 동료들과 자주 대화를 했듯이 협업하던 동료들에게 알렸다면 상황이 나아졌을까? 내가 R이 단축근무를 하고 있다고 상기하고 있던 거에 비하면 그녀와 협업하던 동료들이 R의 단축근무에 대해 이해한 정도는 매우 적지 않았을까? R이 협업하는 동료들과 어떤 식으로 커뮤니케이션했는지는 옆에서 지켜보지 않아 확신할 수 없지만, 자신의 단축근무의 상황과 적게 일할 권리를 알리는데 망설임이 있진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그렇다고 내가 R의 입장이었다 한들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회의를 하다가도 아이를 픽업해야 한다와 같은 계획된 개인 일정을 위해 단호하게 일어서던 동료들이 종종 있었다. 난 그들의 단호함이 좋았다. 종종 약속시간보다 쓸데없이 늘어지던 회의를 마무리하게 해주기도 했고, 회의를 주재하던 사람의 시간 안배에 대한 어리숙함이 우회적으로 지적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지칠 법도 했지만, 자신의 상황에 대한 제약과 자신의 권리를 자신 있게 반복해서 외치던 몇몇 동료들은 비효율적인 일처리를 오히려 효율적으로 이끌어주었다. 때로는 그들 덕에 기다림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삶과 일의 균형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들이 현명했다.


디자인처럼 일을 정량화하기 힘든 직군은 단축근무 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시간으로 맺고 끊기가 가능한 업무와 달리 유연한 근무가 요구되는 업무에서 균형 있는 단축근무 실현은 쉽지 않다. 그런데 정상근무를 하더라도 일이 과하게 몰려들 땐 상황을 조율하기 위해 적극적인 의사소통이 요구되니 단축근무 탓이 아닌 그저 일이 과한 상황이라 여긴다면 조금은 맘 편히 상황 대처가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근무시간을 주장하고 구분할 수 없는 개인이거나 상당수가 단축근무를 하는 직장이 아니라면 정량화가 힘든 업무를 하는 사람들에게 단축근무를 추천하지 않는다. 여차하면 일은 더 하고 보상은 덜 받는 상황에 처하기 쉽기 때문이다.


R이 단축근무 계속했던 걸 보면 시행착오 끝에 개인적인 균형을 찾긴 했던 것 같다. 그러나 R의 업무 집중도와 다른 동료들의 업무 집중도를 떠올리면 R은 분명 자신의 단축 근무 시간보다 좀 더 많은 업무를 처리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시니어 디자이너 몇 시간, 주니어 디자이너 몇 시간, 프로젝트 매니저 몇 시간 등 작업 시간을 세분화하여 견적을 내던데... 그들이 견적을 내고 계획을 세우는 방법을 뜯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내게 그런 기회가 생길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딩크 선언, 커리어에 도움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