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성장했다고 느낄 때: 아들의 유머, 작아진 실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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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로 무얼 먹었는지 꼬치꼬치 캐묻는 건 한국인의 종특이 아닐까? 오랜만에 점심으로 라면을 먹었다. 예전엔 혼자서 곧잘 라면에 밥까지 말아먹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라면 한 개를 다 먹는 게 버거워졌다. 평소 같으면 그와 함께 나눠먹으면 되는데, 그가 주말 외가 쪽 가족 모임을 위해 오전에 집을 나섰다. 혼자 다 먹기도 싫고 음식을 남기기도 싫었던 나는 12시에 수업이 끝나는 아들을 기다렸다.
예상대로 아들은 나의 라면 먹기에 동참했다. 식탁에 마주 앉아 라면을 먹으며 아들의 하루를 물었다. 예상대로 별일 없었다는 반응이었다. 조금은 다른 대답이 듣고 싶었던 나는 결국 음식으로 화제를 돌렸다.
"오늘 점심 머 먹었어?"
"치킨 커리"
"맛있었어?"
"웅."
"학교 점심으로 나오는 음식 중 머가 좋아? 미트볼? 마카로니 라띠꼬 (핀라드식 맥 앤 치즈)? 피자?"
"깔라뿌익꼬 (Kalapuikko)가 좋아."
"아 피시 스틱!"
"주황색... 잠시만! 이리 와봐 이 거!"
아들은 라면을 먹던 도중 방으로 뛰어가 인터넷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깔라뿌익꼬 사진을 찾아 내게 보여줬다.
"웅 먼지 알아. 엄마가 가끔 저런 거 사다 해줄게."
"웅."
"윤호야 이렇게 윤호가 윤호 생각을 말해줘야 엄마가 윤호가 원하는 걸 해줄 수 있어."
자신에 대해 잘 말하지 않는 아들이 조금이라도 더 자기표현을 하길 바라며 나는 종종 아들의 의사표현을 되새김한다. 그런데 순간 아들의 얼굴에 짓궂은 미소가 스쳤다.
"웅! 그런데 난 피자라는 음식도 좋아하고 핫도그라는 음식도 좋아해!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줄게!"
아들, 늘 심각하고 조용하기만 한 것 같았는데, 어느새 자신만의 유머로 나를 웃게 만들었다. 그새 또 자랐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러고 보니 발도 자라서 오늘 챙겨준 실내화도 신지 않았다던데... 내가 실내화를 챙겨주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챙겨주기 전까지 아무 말도 없고, 오늘도 내가 먼저 실내화를 신었는지 물으니 그제야 실내화가 작다고 몸소 신어서 보여주는 아들. 실내화 없이 양말만 신은채 교실을 돌아다니는 게 더 편한 걸까? 아님 그 정도 불편함은 딱히 거슬리지 않는 걸까? 한국말이 서툴러 엄마와 대화할 때 몸짓을 자주 섞는 아들, 아들의 노력이 고맙고도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