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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Jan 01. 2023

체육시간에 다리를 다친 아들

여기저기를 다녀야 했지만, 다행히 무탈했다.

배경 이미지: 다리를 다친 아들을 업고 가는 그, 왠지 듬직해 보인다. 그런데, 내가 더 오랫동안 아들을 업고 걸었다. 



아들이 학교에서 다리를 다쳤다.


2022. 8. 24


아시안 마트에서 라면을 사고 돌아오는 길, 그에게서 아들이 체육시간에 무릎을 다쳐서 데리러 가야 한다며 가는 김에 딸도 데리고 오겠다는 메시지가 왔다. 집에 돌아가 한두 시간 정도 일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딸이 평소보다 일찍 돌아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 굳이 딸까지 데리러 오려는 이유를 물었다. 그가 할 일이 상당한데 한두 시간 있다가 또 학교에 가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일찍 데리러 가봐야 반가워하지도 않을 테고 집에 있으면 시시때때로 엄마에게 올 딸은 나를 위해서도 딸을 위해서도 예정대로 방과 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최선이었다. 결국 딸을 내가 제시간에 데리러 가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게다가 때마침 학교 근처를 지나고 있던 터라 내가 아들을 데리러 가기로 했다.


걷기 어렵다는 아들을 둘러업고 학교를 돌아서는 나를 딸이 반겼다. 그러나 딸은 금세 방과 후 무리에게 돌아갔다. 급한 맘에 학교를 나서려는 나를 학교 간호사가 잡았다. 간호사는 집으로 돌아가서 얼음찜질을 해주고 다음날 만약 걷지 못하면 의사를 만나라는 조언을 했다. 아시안 마트에서 사 온 라면이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양손에 쥐고 아들을 엎고 집으로 가는 길은 너무 멀게 느껴졌다. 반 이상은 괜찮을 것 같았지만, 집까지는 무리였다. 결국 그에게 전화를 걸어 마중 나올 것을 요구했다. 통화를 하기 위해 손을 사용하느라 등을 구부린 채 있느라 아들이 등위에 대충 매달린 상태가 되었는데, 아들은 그 상황을 무서워했다.


더는 아들을 엎고 갈 수 없겠다 싶을 때서야 그가 보였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할 정도로 습도가 높은 데다가 선선하지 않았던 온도에 아들까지 둘러업고 걸어서 땀이 비 오듯 했다. 아들을 업고 집으로 향하던 그도 금세 온몸이 땀으로 뒤덮였다. 그렇게 아들을 집에 데려와 얼음찜질을 시키고 다리를 들어 올리게 하고 어찌 된 일인지를 물었다. 체육시간에 친구와 공중에서 부딪혔고, 체중이 실린 채 무릎으로 바닥을 치며 떨어져서 걷기가 고통스럽다고 했다. (대충 여기까지가 9월 20일에 마지막으로 저장되어 있었다.) 핀란드의 삶에 익숙해지고 있는지, 당장 병원에 데려가고 싶은 마음을 한편으로 제쳐두고, 무탈하길 바라며 간호사의 조언대로 지켜보기로 했다.



괜찮다는 진단을 받기 위한 긴 여정


2022. 8. 25


다음날 아들은 완전 못 걷는 건 아니지만 걷는 게 힘들어 보였다. 일단 학교엔 결석을 알리고, 의사를 보기로 결정했다. 의사를 봐야 할지 안 봐도 될지 애매했는데, 그럴 땐 심적 안정을 위해 의사를 보는 게 좋다. 괜찮다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 싶고, 걷기 힘들어하니 팔꿈치 목발이라도 얻어오라고 그를 떠밀었다. 어린이병원으로 바로 가야 할지 평소처럼 보건소로 가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는데, 일단 낮시간엔 보건소로 가는 게 먼저라 그와 아들은 보건소로 향했다. 평소엔 전화로 예약을 잡았지만, 나름 응급이길래 예약 없이 보건소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의사를 보기 위해 갔지만, 간호사를 만났고, 결국 어린이 병원으로 가라는 소견을 듣고 보건소를 나왔다. 어린이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를 만나서 뼈는 다치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불편한 걸음을 보조할 팔꿈치 목발도 빌려왔다. 


메신저의 대화와 휴대폰의 통화 기록을 근거로, 괜찮다는 진단과 팔꿈치 목발을 얻기 위한 그와 아들의 진료 여정을 정리해 봤다. 오전 10시 전에 집을 나서서 보건소에 접수를 마치고 기다리기 시작한 시간이 10시 18분쯤이다. 간호사를 만나서 어린이 병원으로 향하라는 조언을 들은 게 10시 36분, 어린이 병원에 도착해서 접수를 마친 시점이 11시 35분이었다. 기다리다 엑스레이를 찍은 시간이 12시 33분, 13시 49분에 그가 내게 건 전화는 아마도 무탈하다는 진단을 알리며 아들과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겠다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15시 7분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트램에 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아들이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긴 했지만, 그 한마디를 확인하기 위해 그와 아들은 보건소를 거쳐 어린이 병원에 가야 했고, 기다리다 보니 점심시간까지 놓쳐서 늦은 점심까지 먹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약 6시간을 아들이 다리 진단에 소비해 버린 그는 하루가 어이없이 지나감을 허탈해했다.


어린이 병원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아들



아들의 사고로 자세히 들여다본 핀란드 의료 시스템


학교에 간호사가 상주해서 아들이 다쳤을 때 상황을 판단해 주고, 의료적인 조언까지 해주는 점은 좋았다. 아들의 진료 여정에 병원비가 청구되지 않는 것도 좋았다. 이곳저곳을 오가느라 차비가 낭비되었지만, 그보단 쓸데없이 소비된 시간이 무척 아까웠다. 팔꿈치 목발은 기간 제한 없이 빌려 쓸 수 있었고, 괜찮아지면 돌려주면 되었다. 단지, 그가 돌려주러 갔을 때 목발을 따로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잘 보이는 곳에 놓고 와야 했던 상황이 아쉬웠다. 그가 첨부터 무작정 목발을 두고 오려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체스 수업을 듣는 동안 돌려주면 된다고 짧은 방문 계획을 세운게 실수였다. 진료접수를 하는 것처럼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다 시간에 쫓겨 목발을 다시 집으로 가져오는 우스운 상황은 피하기 위해 메모와 함께 목발을 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따로 목발에 대한 연락이 없었으니, 문제없이 처리되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자녀의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한 금전적이 지출이 없는 것은 좋지만, 보이지 않는 지출에 대한 배려가 아쉽다. 아들과 함께 하느라 소비하게 된 시간은 사실 부모의 근무시간과 연결되어 있다. 게다가 걷기 힘들어하는 아이를 데리고 이곳저곳 전전하는 것도 그다지 좋은 경험은 아니다. 아픈 사람이 회복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과정이 빠질 수 있다면 좋겠다. 예를 들어 학교 간호사가 걷기 힘들면 의사를 만나라는 진단을 내렸을 때, 그 진단만으로 어린이병원에 바로 갈 수 있었다면 환자 입장에서 진료에 소비한 시간이 상당히 줄었을 것이다. 아들의 경우엔 불합리해 보였지만, 보건소를 거쳐야 하는 과정이 대체적으론 불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요구하는 환자를 거르기 위함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의료서비스가 조금 더 촘촘하고 구체적으로 변화해 나가길 바라는 것은 무책임한 비판이 아닐 것이다. 



글을 마치며...

8월 말에 일어난 일을 당일이나 다음날 적다가 만 것 같은데, 9월에 글에 손을 댔었나? 글을 마무리하기 위해 다시 글에 손을 대기 전에 마지막으로 글이 저장된 날은 9월이었다. 여하튼 이 글을 12월 마지막 날과 새해에 이어 썼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그와 나눈 메신저 대화를 찾아가며 되새김질하며 복원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쓰다만 글을 마치고 싶었고, 나중에 읽으며 추억하고 싶었다. 새해엔 중간에 놓아버리는 글이 없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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