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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Jan 02. 2023

새해 저녁엔 뭘 먹을 거예요?

아마도 아들이 먹고 싶은 거?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2022년 마지막 날과 2023년 첫날


아들: "오늘이 새해?"

나: "아니야. 오늘은 새해 전날이야."

아들: "일요일?"

나: "아니. 토요일!"

아들: "새해 저녁엔 뭘 먹을 거예요? 특별한 날이잖아요!"

나: "그래서 오늘 저녁에 라끌렛 먹을 거자나."

아들: "오늘 저녁도 특별하지만, 내일도 특별하잖아요!"

나: "그래서 멀 먹고 싶은 거니?:

아들: "맛있는 거."

나: "그 맛있는 게 머야?"

아들: "김밥이나 카레."

나: "카레는 어떤 카레?"

아들: "그냥 카레(normal curry)."

나: "너에게 그냥 카레가 먼데?"

아들: "한국카레 말고, 그냥 카레."

나: "아... 너 타이커리 말하는 거니? 아빠랑 같이 나눠먹는 거?"

아들: "어."

나: "글쎄, 내일 저녁 메뉴는 내일 정할 거야."


2022년 마지막 날, 아침을 먹던 아들과의 대화는 2023년 첫날의 저녁메뉴였다. 아직 2022년의 만찬도 즐길 시간이 꽤 남아있는데, 아들은 2023년 첫날의 저녁 메뉴를 정하고 싶어 했다. 아들과의 대화에서 결론을 내리진 않았지만, 아들의 저녁 메뉴 요청은 하루 종일 내 머리 한 구석에 머물렀다.


'내가 먼저 해줬고 더 자주 해준 카레가 타이커리라 아들에겐 타이커리가 카레의 기본이 된 것 같다. 그나마 해준 타이커리도 편한 대로 레시피를 수정해서 퓨전인데, 아들은 카레 중 엄마표 채식 퓨전 타이그린커리나 타이레드커리가 제일 맛있다고 한다. 그래서 특별한 날 저녁메뉴로 꼽았나 보다.


딸이 먹기엔 타이커리가 좀 매운 게 문제다. 카레를 하면 딸에게 다른 음식을 준비해줘야 하는데, 무얼 해주지? 원래 새해엔 떡국을 먹으니 아침부턴 먹기엔 좀 거창하니 저녁에 떡국을 끓여줄까? 근데 떡국은 고기육수를 사용해서 채식주의자인 그가 못 먹는다. 


우리 모두가 좋아하고, 식성에 따라 만드는데 추가의 노력이 크게 들지 않는 메뉴는 김밥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드는 노력이 상당하지만, 아들이 특별히 엄마에게 요청한 메뉴 중 하나니, 들어줄까? 마침 밥도 새로 지어야 하니 타이밍도 괜찮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내 마음은 김밥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아들에겐 내색하지 않았고, 새해가 밝았다. 모두들 늦잠을 잤고 10시가 되어서야 아침을 먹었다. 자정에 마신 스파클링 와인 속풀이를 위해 아침엔 나만을 위한 북엇국을 끓였다. 나머지 식구들은 평범한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 김밥을 쌌다. 그의 김밥엔 시금치, 당근, 오이, 체다슬라이스치즈, 계란, 순무생채를 넣었고, 아이들의 김밥에 시금치, 오이, 쇠고기볶음, 계란을 넣었다. 내 김밥엔 시금치, 당근, 오이, 쇠고기 볶음, 계란, 간장무장아찌를 넣었다. 유달리 예쁘게 말아진 김밥을 썰어 각자의 접시에 담아서 식탁에 올려두었다. 


아들의 요청대로 저녁으로 김밥을 먹어도 좋겠지만, 김밥이 눈에 보이면 먹어버리는 식구들이니, 김밥이 점심이라고 선언했다. 대신 저녁은 가볍게 핀란드식 시금치 전을 먹게 될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아침을 느지막이 먹었으니, 편할 때 각자 점심을 챙겨 먹으라고 하곤 나는 바로 김밥을 먹었다. 아침 먹고 바로 김밥을 마느라 분주했던 나는 김밥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반면에 식구들은 오후 2시가 다 돼서야 김밥을 먹었다.


늦은 점심을 먹던 아들에게 아들의 요청에 따라 김밥을 만들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엄마가 아들의 부탁을 흘려듣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실은 새겨듣는 데다가 되도록이면 들어주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제는 지난해의 마지막이라 특별했고 오늘은 새해라 특별하다는 아들에게 너와 함께 하는 모든 날이 특별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언제가 좋을까? 올해 안에 잊지 말고 적당한 때에 꼭 말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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