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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Jan 12. 2023

뜬금없이, "김치 먹고 싶어요!"

배추가 김치 재료라고 설명하자, 김치 먹고 싶다는 아들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2023. 1. 11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헬싱키 시에서 드디어 모국어 수업으로 한국어 수업을 개설했다. 핀란드는 다양한 모국어 사용을 적극 장려하는 나라라 지방자치단체에서 모국어 수업을 지원해 준다. 그러나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학생이 너무 적어서 수업이 없었는데, 이번에 생겼다. 더욱이 운 좋게도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수업이 개설되었다. 한국어 수업을 듣기 위해 멀리 가지 않아도 돼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감기에 걸린 아들은 집에서 쉬느라 가지 못했고, 딸만 첫 수업을 들었다. 얼핏 파악하기론 1학년인 딸, 딸과 같은 반 아이, 5학년인 우리 아들, 그리고 다른 학교에서 온 6학년 아이까지 총 네 명이 수업을 듣는 것 같다. 선생님에게 아파서 수업을 빠진 아들을 위해 유인물이 있다면 딸의 손에 하나 더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딸은 반달 동요 악보를 들고 왔다.


아들이 빠진 수업을 만회할 수 있도록 동요 가사를 소리 내어 읽게 하고 모르는 단어들의 뜻을 설명해 주었다. 유튜브에서 동요를 찾아 들려주고 따라 부르도록 했는데, 맘이 좀 아팠다. 나를 닮아 아들이 음치인 것 같다. 머 그도 그다지 노래를 잘 부르는 게 아니니...


수업 내내 동요만 배웠으리 만무해서 딸에게 무얼 배웠는지 물었더니 마트 관련 동영상을 봤다며, 배추와 무를 언급했다. 장보기 관련 단어들을 배운 것 같았다. 딸이 처음에 배추를 패추라고 얼버무려서 못 알아들었는데,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핀란드어로 italialainen kaali (italian cabbage)라고 설명해서 살짝 헤맸다. Chinese cabbage인 배추 설명이 이렇게 어렵다니... 


아들도 배추가 먼지 모르는 눈치인지라 김치의 주재료라고 설명해 줬다. 그랬더니 뜬금없이, "김치 먹고 싶어요! 김치 주세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감기에 도움이 되면 되었지 나쁠 게 없을 것 같아 김치를 조금 덜어줬다. 저녁 먹기 전이었는데, 아들은 김치가 맛있다며 간식 먹듯이 김치만 먹었다. 


아들의 김치 사랑은 저녁을 먹은 뒤에도 계속되었다. 저녁 먹은 식탁을 정리하고 잠깐 쉬고 있는데, 아들이 김치를 더 달라고 했다. 저녁 먹을 때는 안 찾더니, 저녁 먹고 한참 지나 또 김치를 간식처럼 먹었다. 엄마가 담은 김치가 맛있다니 뿌듯하긴 한데, 마치 감자칩 먹듯이 김치를 먹으려는 것 같은 아들의 독특한 취향에 자꾸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2022년 11월 23일에 찍은 사진


아들이 김치를 간식처럼 먹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에도 그런 적이 있다. 토요일에 하는 한글학교를 결석해서 놓친 부분을 따라잡으려고 공부시키는데, 아들은 배고프다며 간식으로 이것저것을 먹어댔다. 프렌치프라이로 시작해서 쿠키로, 마지막엔 김치로... 보다 못해 짜다고 그만 먹으라고 하니, 아들은 김치가 든 병을 손에 꼭 쥐고 한국어 공부를 했다. 그 모습이 어이가 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위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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