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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Feb 13. 2023

핀란드 초등 5, 학습상담

아들이 잘 지내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시간

배경 이미지: 학습상담에서 자신을 분석 중인 아들



1년에 한 번 아이, 부모, 선생님과 함께 하는 학습상담을 지난 1월 30일에 했다. 멀 모를 때는 핀란드는 학생상담도 참 멋지게 한다 싶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냥 아들의 담임선생님이 열정적인 사람이다. 아들네 학교는 1학년때 담임선생님이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6년을 함께 한다. 아들의 담임선생님은 중간에 집안사정으로 휴직한 시기를 제외하곤 쭈욱 아들의 반과 함께였다. 아들이 1학년때는 선생님이 열정이 넘쳐 학습상담을 과하게 준비한 느낌이었다. 이젠 완급조절이 되는지 적당했다. 그러나 아이들을 향한 정성은 여전했다.


한국어로 재구성한 학습상담분석표와 아들의 그림


아들과 함께 들어선 교실엔 아들의 담임선생님이 펼쳐놓은 SWOT 분석과 비슷한 분석표가 있었다. 분석표는 세로는 성취여부(잘한다, 못한다)를 가로는 노력여부(노력한다, 노력 안 한다)를 기준으로 나눠져 있었다. 선생님은 아들에게 교과목이 적힌 카드를 주었다. 우리에겐 문장이 적혀 있는 카드를 보여주며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를 5개 정도 고르게 했다. 학습상담에서 주체는 학생이고 부모와 선생님은 추가적으로 의견을 더할 뿐이다.


아들은 처음에 수학 카드를 들고 망설이다 매우 잘하지만, 노력은 그럭저럭인 위치에 놓았다. 내가 노력은 하지 않는다 쪽에 가까운 것 같다 했지만, 숙제는 다 하니 중간이라는 선생님의 중재가 있었다. 아들에겐 숙제, 체스연습, 한국어 드라마 시청이 기본적 의무이다. 이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원하는 게임을 할 수 없다. 단 의무를 다하면 게임을 오래 해도 중간에 눈을 쉬어야 한다는 정도의 조언만 할 뿐, 게임을 하지 말라는 말은 딱히 하지 않는다. 여하튼 숙제는 게임을 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 빠짐없이 잘한다고 하자, 선생님은 좋은 원칙이라며 환영했다.


영어의 경우, 아들이 잘하고 노력도 하는 쪽에 놓았지만, 그와 내가 노력을 아주 많이 하는 쪽으로 더 밀어놓았다. 아들은 의식하고 영어공부를 하진 않지만, 때때로 내가 빌려다 주는 영어로 된 책(만화책 포함)도 읽고, 집에서 자주 영어를 사용하고, 그와 함께 80년대(예전) 팝송 가사를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 게다가 게임 관련한 동영상을 영어로도 많이 시청한다. 우리의 설명에 선생님은 감탄하며 정말 열심히 한다며 아들을 칭찬했다.


이외에 대부분의 교과목들이 잘하면서 노력도 좀 하는 위치에 놓였다. 핀란드어는 책을 꾸준히 읽는 편이라 영어보다는 덜 노력하지만 다른 과목보다는 좀 더 노력하는 위치에 놓였다. 이번학기부터 개설된 모국어 수업인 한국어도 넣자는 내 제안에 한국어는 다른 언어보단 못하지만, 매일 드라마도 챙겨보고 나와 함께 복습도 하니 노력을 하는 쪽에 놓였다. 만들기와 음악은 이도저도 아닌 정중앙에 놓였는데, 음악은 음치인 내 탓이라 해도, 손재주는 좋은데 왜 만들기와 음악이 비슷하다고 했는지 궁금하다. 


선생님은 왕따를 방관하지 않고, 돕는다는 문장카드를 골랐는데, 아마도 반 남학생들이 자주 싸워서 추가적인 수업을 듣고 있어서 고른 것 같았다. 아들이 연관되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지난해 축구하다가 치고받고 싸운 일로 반에서 축구가 금지되었다가 올 2월에서야 선생님 감독하에 다시 축구를 하게 된듯하다. 관심밖의 일에는 상당히 무관심한 아들이기에 왕따를 방관하기보다는 왕따의 상황을 인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거라는 나의 첨언에 선생님도 수긍했다.


친절히 말하고 욕하지 않는다는 문장카드에서는 한국어로는 욕을 몰라 욕을 하지 않고, 그에 따르면 게임할 때는 욕을 한다고 하는데, 선생님은 아들이 욕설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친구를 방해하지 않는다와 괴롭히지 않는다는 문장 카드를 보고 동생에게만은 예외로 놀려먹을 궁리로 꽉 차있다고 하자 선생님은 의외라 했다. 아들은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지도를 비교적 잘 따르는 편이라지만, 집에선 여러 번 말해야 움직인다. 조용한 듯 부끄럼을 많이 타는 아들이지만, 흥미를 가지는 분야에 대해서는 말도 많고 목소리도 커진다는 걸 알고 있지만, 발표력이 좋은 편이라는 말엔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학습상담 결과를 보니 아들이 학교생활을 잘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한편으로는 수업을 잘 따라가고 숙제를 잘하면 되지 무얼 더 얼마나 노력해야 하나 궁금해졌다. 분석표가 왠지 내게 아들이 노오력을 해야 한다고 말을 건네는 것 같아 조금 불편했다. 30분 예정의 상담이었는데, 조금 일찍 도착한 우리는 30분을 꽉 채우고도 몇 분이 더 지나고 나서야 상담을 끝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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