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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Jun 15. 2022

초등 4학년, 아들의 영어로 책 읽기

랜드 오브 스토리 6권을 2달 만에 읽어버린 아들! 그렇게 재밌니?

배경 이미지: 4월 30일 한글학교 가는 메트로에서 독서 삼매경 중인 아들



언어 차이를 핑계로 나는 아이들의 교육에 뒷짐 지고 있는 편이다. 내가 자란 나라라도 교육제도가 바뀌어서 생소한 부분이 있을 텐데, 더구나 내 가족의 나라긴 하지만 내겐 남의 나라인 핀란드에서 교육받는 아이들을 내가 좌지우지하는 건 아니지 싶다. 대상이 틀리긴 하지만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교육자인 그가 있는데 굳이 내가 나설 필요가 있을까? 고맙게도 나름 전문가인 그가 아이들을 충분히 잘 챙기고 있어서 더더욱 맘 편히 물러나 있다. 대신 나는 아이들의 먹거리, 한국어, 자잘한 놀이나 활동 등을 봐주곤 하는데,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주는 것도 내 몫이다.


책과 거리를 뒀던 어린 시절로 인해 원하던 공부를 할 때 읽기 속도가 느려 힘들었던 기억 탓에 내 아이들만큼은 어린 시절부터 책과 친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때때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아이들 앞에 슬며시 밀어놓는다. 읽으면 좋고 안 읽으면 하는 수 없다는 식으로 마음을 비운채 책을 던져놓으면 아이들이 적어도 한번 정도는 그 책을 들쳐본다.


해리포터를 다 읽고 한동안 윔피 키드에 빠져 킥킥대던 아들에게 내밀 책을 찾다가 랜드 오브 스토리를 알게 되었다. 기억이 희미한데, 원래는 아들의 즐길만한 한국어 책을 찾다가 발견한 책 중 하나였다. 일단 한국어 책을 공수하기 전에 어떤가 살펴볼 요량으로 도서관 사이트에서 책을 찾았더니 있길래 무작정 책을 빌려와 아들에게 내밀었다. 핀란드어 번역본이 없는 탓에 원서인 영어책이어서였을까? 아들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오디오 북 CD가 있던 게 기억이 나서 혹시나 들으면 더 편하게 접할 수 있을까 싶어 오디오북 CD를 빌려와 그에게 아들 휴대폰에 오디오북을 넣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오디오북을 쥐어줬는데, 아들은 의외로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고 금세 2권을 찾았다. 2권부터는 오디오북이 없어서 책으로 읽어야 하는데 괜찮겠냐는 내 질문에 아들은 망설임이 없었다. 그렇게 아들은 랜드 오브 스토리에 푹 빠져버렸다. 


아들의 휴대폰에 오디오북 파일 생성시기를 살펴보니 3월 13일로 되어 있으니 그즈음 시작해서 5월 중순 정도까지 약 2개월간 아들은 상당히 두꺼운 책 6권을 읽었다. 와우! 잠자기 전이나 체스 클럽 오가는 길의 트램에서 체스대회 쉬는 시간 틈틈이 아들은 랜드 오브 스토리를 열심히 읽었다. 가까운 도서관에 소장된 도서가 아니라 대여 요청 후 가까운 도서관까지 오는데 평균 소요시간보다 유독 시간이 더 걸려 1주일 넘게 기다린 적도 있었고, 5월 초 파업으로 인해 1주일간 도서관이 문을 닫아 2주를 기다려 책을 받은 적도 있다. 이를 감안하면 6권 다 읽는데 한 달 반이 걸렸다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난 왜 까마득히 오래되고 오래 걸린 일이라 여겨질까?


영어책에만 빠져 있는 아들이 영어는 충분히 잘하니 부족한 핀란드어를 채울 수 있게 한동안 핀란드어 책을 빌려다 주라는 그의 주장과 추천에 따라 아더 왕궁의 코네티컷 양키 핀란드어판을 빌려다 주었다. 그러다 랜드 오브 스토리의 프리퀄 책이 눈에 띄어 빌려다 놨더니 금세 읽고 나서 다음 책을 빌려달라 성화였다. 미안해 자기야! 특히 두 번째 프리퀄 책은 빌려온 날 저녁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단숨에 읽어버렸다. 책에 빠져 있는 아들의 모습은 사랑스럽다 못해 너무 멋져서 저절로 내 입가에 미소를 띠게 하며 나를 행복에 빠뜨린다. 중간에 랜드 오브 스토리 프리퀄을 두권이나 읽었지만, 아더 왕궁의 코네티컷 양키도 빌린 지 3주 만에 읽었고, 다음으로 삼총사를 핀란드어로 읽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 재미로 영어로 책을 읽다니! 난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영어로 책을 읽었는데... 아마도 딸을 낳고 나서 한국어도 영어도 잘 못해서 미친 듯이 책을 읽으면서 영어로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영어로 말하는 게 아주 자연스러운 세대라지만 그래도 아들이 대견하다. 그러고 보니 아더 왕궁의 코네티컷 양키도 삼총사도 난 읽지 않았다. 문득 아들 따라 책을 읽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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