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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Oct 12. 2023

오디오북 듣기에서 책 읽기로...

아들의 핀란드어가 눈에 띄게 늘었던 계기 하나, 해리포터!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2020년 2월 스키방학을 계기로 핀란드에 코로나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의료붕괴를 예방하고 감염속도를 늦추기 위한 대책 중 하나로 학교들은 한동안 원격수업을 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아들은 3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약 두 달간 원격수업을 들었다. 워낙 급작스러운 일이라 좌충우돌하는 느낌이었지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학습을 지속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특히, 아들의 담임선생님이 수업에 디지털 도구와 자료들을 적절하게 활용해서 원격수업의 아쉬움을 최소화시켜 더더욱 다행이었다. 


독서를 권장하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는 핀란드답게 아들의 담임선생님은 원격수업으로 바뀐 직후 원격수업기간 동안 학생들이 적어도 책 한 권을 읽도록 독려했다. 집에 적절한 책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수 있도록 일시적인 방문시간도 마련해 주었다. 4월 중순에는 공공도서관을 이용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대안으로 헬싱키 시에서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빌릴 수 있는 유료서비스를 6월 중순까지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디지털 자료를 잘 활용하는 아들의 담임선생님은 수업에 해당서비스를 활용해 아이들이 서비스를 더 잘 이용할 수 있도록 장려했다. 


덕분에 아들은 오디오북에 빠져들었지만, 6월 중순 무료 이용기간의 종료와 함께 오디오북의 재미가 사라졌다. 그가 해당서비스의 유료구독을 고려했지만,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에 유료구독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 해 8월, 내가 사용하는 전자도서관 앱에서 책을 고르다 우연히 핀란드어로 된 해리포터 시리즈의 오디오북을 발견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리즈의 1권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빌려 아들에게 들려줬다. 아들은 잠들기 전에 꾸준히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오디오북을 들었다. 


1권 듣기를 끝낸 아들은 자연스레 2권을 찾았다. 그러나 해리포터 시리즈의 2권인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오디오북을 기다리는 줄이 꽤 길었다. 1권은 특별행사기간이라 누구나 기다림 없이 들을 수 있었는데, 2권은 아니었다. 반면 책은 며칠 내로 빌릴 수 있었다. 아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해리포터 2권을 어느 매체로 소비할지를 물었더니 망설임 없이 책을 선택했다. 그렇게 아들은 독서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맘으로 책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자 해리포터 영화도 보여줬다. 한 권을 다 읽을 때마다 그 책에 해당하는 영화를 보여줬는데, 아들의 독서 의욕을 더욱 북돋아 주었다.


아들은 시간 날 때마다 해리포터 책을 읽었다. 나의 '읽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의 강요 아닌 권유가 효과를 보는 듯해서 뿌듯했다. 해리포터 속 아이들의 성장에 따라 책의 단어 수준도 높아진다고 알고 있었기에 더욱 신났다. 아들이 이전에도 장편 소설을 몇 권 읽긴 했는데, 자기 전에 습관처럼 읽는 것 같았다. 독서가 과제니까 하는 느낌이랄까? 해리포터를 읽으면서부터 아들은 독서의 즐거움을 깨달은 것 같았다. 아들이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는데 얼마나 걸렸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은 걸로 기억한다.


모국어가 늘었다고 하는 게 좀 어색하지만, 해리포터를 읽고 난 뒤 아들의 핀란드어는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학교에서 읽고 쓰기를 배우서 그런지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이미 글을 읽을 줄 알았던 아이들에 비해 아들의 핀란드어 발달이 좀 느리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기록에 남지 않는 시험 성적이 7, 8점대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으면서 9,10점대로 바뀌었다. 그는 그때 아들의 핀란드어가 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해리포터를 읽으면서 아들의 글을 읽는 속도가 점진적으로 빨라졌다고 했다. 이전에는 읽는 속도가 좀 느린 편이었는데, 해리포터를 다 읽고 나서는 읽는 속도가 빠른 편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 자체가 글을 더 빨리 이해한다는 뜻이니, 아들의 핀란드어가 향상된 결과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들이 수학은 반에서 제일 잘하고 영어도 잘하는데, 핀란드어가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는데, 다행이었다. 어렸을 때 수학은 매우 잘했지만 언어를 잘하지 못했던 나를 닮은 것 같아 아들에게 미안했는데, 어쩌다 내민 해리포터가 내 마음속 빚을 어느 정도 청산해 주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내가 싫어하던 것들은 아들에게 강요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면 좋은 것들은 자연스럽게 권하려고 애쓴다. 강요가 아닌 권유가 쉬운 일이 아니라 권유가 강요로 변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독서는 시시때때로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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