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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Dec 24. 2022

공공장소에서 아들 안아주기 금지

아들의 성장, 아들과 나 사이에 새로운 규칙이 생겼다.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2022. 12. 22


딸이 학교 크리스마스 공연에 참여한다 하여 그와 함께 학교로 향했다. 아들이 1학년일 땐 모든 게 새롭고 신기했는데, 한번 겪었다고 딸의 1학년 행사는 설렘보단 호기심 반 의무감 반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강당에서 자리를 찾다가 강당으로 들어서는 아들과 마주쳤다. '엄마!'를 외친 아들이 반가운 나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이 먼저 아들에게 향했다. 껴안으려고 팔을 내밀며 다가서자 아들은 몸을 살짝 틀며 '엄마!'를 외쳤다. 첫 번째 '엄마!'는 반가움을 담았는데 두 번째 '엄마!'는 그러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알아들었는데 모른 척 아들의 요구를 무시할 순 없기에 엉거주춤 뒤로 물러섰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 강당으로 반 전체가 이동하고 있는데, 엄마와 마주친 것까진 반가웠지만, 반 아이들 앞에서 혼자만 엄마에게 안기긴 쑥스러웠나 보다. 벌써 그런 나이인가? 아들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서운함은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내겐 애교만점의 딸이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마주친 딸은 나를 보자마자 온몸으로 반가움을 발산하며 뛰어와 안겼다. 아들의 거절로 느낀 서운함, 헛헛함을 딸의 망설임 없는 넘치는 사랑표현으로 밀어낼 수 있었다.


딸은 딸대로 아들은 아들대로의 기쁨이 있기에 아들이 주는 기쁨을 포기할 순 없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과 함께 강당에서의 일에 대해 되짚어봤다. 혹시 엄마가 안아주는 게 완전히 싫은 건지 친구들 앞에서 안아주는 게 부끄러운 건지를 확실히 하고 싶었다. 나에게도 아들에게도 상처가 되지 않도록 명확히 하고 싶었다. 아들은 집에서 안아주는 건 좋지만 밖에서 그러는 건 왠지 부끄럽다며 싫다고 했다. 그렇게 아들과 나 사이에서 새로운 규칙이 하나 생겼다.


저녁시간 아들의 대부(종교적 의미는 없음)이자 나의 절친이 5살인 둘째 딸과 함께 방문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교환하기 위해서였다. 사정상 짧은 만남이었지만, 친구에게 낮의 일을 하소연했다. 친구 좋은 게 뭔가? 이럴 때 마음을 털어놔야지. 친구는 아들의 요구사항을 아주 명료하게 정리해 줬다.


No hugging in public!


공공장소에서 안아주기 금지, 조금 아쉽지만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었다. 자긴 아직 맘대로 껴안을 수 있는 딸이 있다며 함께 온 딸을 안으며 장난치는 절친과 나도 아직은 맘껏 껴안을 수 있는 딸이 있다며 유치하게 받아치는 나... 이런 게 친구의 위로지! 친구덕에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조금 수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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