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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Nov 07. 2022

핀란드 전국 학생 체스대회

생각지도 못했던 딸의 메달 소식

배경 이미지: 29일 경기 시작 직전의 풍경, 핀란드 기준으로 엄청난 인파가 몰린 대회였다.



2022. 10. 29 ~ 30


아이들 체스 관련 행사는 웬만해선 빠지지 않는 그다. 그런데 그의 덕질 관련 행사와 아이들의 체스대회 일정이 겹쳤다. 꿩 대신 닭이라고, 내가 아이들 체스대회를 따라가면 될 꺼라 생각한 그는 아쉬워하면서도 망설임 없이 덕질을 선택했다. 그러곤 시시때때로 아이들과 영상 통화하느라 애가 달았다.


토요일은 등록확인 일정 덕에 10시까지만 가도 돼서 조금 수월한 출발이었지만, 네 번째 경기가 오후 6시 시작이라 집에는 밤 9시가 다 돼서야 돌아왔다. 일요일은 오전 9시에 다섯 번째 경기가 시작돼서 아침 6시 반에 일어났다. 다행히 윈터 타임이 시작되는 날이라 한 시간을 벌어서 아주 고되진 않았다. 그렇지만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에서 경기가 치러져 오가느라 지치는 것도 상당했다. 게다가 예년과 달리 작년에 이어 올해도 200여 명의 학생들이 대회에 참여해, 갑자기 많아진 참가학생들 덕에 경기 운영이 조금씩 지연되었다. 아이들 체스 선생님에 따르면 1980년대나 볼 수 있던 대회 참가율이었다. 코로나의 여파가 체스에 긍정적이었던 걸까? 코로나 탓에 체스를 즐기는 인구가 증가해서 체스 세트 가격까지 올려놨다던데...


체스대회가 열린 곳은 옆 도시 학교였는데, 학교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대회 측에서 점심 케이터링 예약을 받았다. 당연히 학교 주변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를 먹으면 된다고 생각한 그는 점심 케이터링을 신청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넉넉했던 탓에 토요일엔 1.2 km 떨어진 곳에 있던 피자집까지 아이들과 함께 걸어가 점심을 해결했다. 일요일엔 토요일의 피자 맛이 별로여서 2.7 km 떨어진 버거킹에서 버거를 포장해왔다. 토요일에 하루 종일 앉아서 아이들을 기다리느라 시간을 보낸 게 오히려 날 지치게 한 것 같아 버거킹 버거 포장은 나 혼자 운동삼아 도보로 왕복했다.


딸은 처음 참여하는 전국대회라 그런지 대회 내내 살짝 흥분해 있어서 혹여 다칠까 염려가 되었다. 안 그래도 토요일 대회장 가는 길에 수선을 떨다 앞을 주시하지 않아 지하철 카드 찍는 곳에 얼굴을 부딪혀 울기까지 했다. 앞을 잘 보고 다니라던 나의 당부를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출생 연도를 기준으로 아들은 D 그룹에, 딸은 F 그룹에서 경기를 치렀다. 두 아이들 모두 열심히 경기에 임했고 잘했지만, 우리 아이들보다 잘한 아이들이 있었다. 은근 기대했던 아들은 메달을 따지 못했다. 그런데, 의외로 딸이 여자부문에서 은메달을 땄다. 체스 인구가 남자아이들에 편중되어 있는 탓에 여자아이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차원에서 여자아이들만 모아서 순위를 매겨 메달을 따로 주는데, 그 순위에 들었던 것이다.


딸 그룹의 메달권에 든 여자아이들 모두가 승점이 같아 메달 색을 정하기 위해 재경기를 치렀다. 딸의 첫 재경기 상대는 첫 경기에서 딸이 진 상대로 대회 기간 내내 함께 뛰어놀며 친구가 된 아이였다. 딸의 기억력에 의존해 경기를 복기한 그가 딸이 두 번 다 같은 방법으로 손쉽게 그 친구에게 패했다며 자신이 함께였다면 두 번째 경기는 다른 양상을 보였을 거라며 아쉬워했다. 그러게 말이다~ 이 사람아! 


또 다른 아이와는 접점 끝에 시간으로 경기를 이겼다. 이때 딸은 상대가 체스 시계를 누르는 것을 잊고 있을 때 모른척하며 상대의 시간이 소진되도록 내버려 뒀다고 했다. 경기의 규칙 중 하나지만, 아직 어린 나이라 보통 시계를 누르라고 서로 알려주는 경우가 많은데 딸은 경기를 정말 이기고 싶었나 보다. 두 번째 재경기가 한없이 길게 이어지고 있을 때 아들은 경기과정을 주시하며 동생의 주변을 맴돌았다. 딸이 메달 색을 정하는 경기를 한다고 했을 때부터 아들은 마치 자신의 일인 양 기뻐하고 흥분했다. 동생을 놀리는 재미를 즐기는 오빠의 모습만 보다가 동생을 응원하는 사랑스러운 오빠가 모습을 보니 마음이 뿌듯해졌다.


다른 두 아이가 경기를 하는 동안 아들은 딸이 이긴 아이를 응원했고, 나는 딸을 이긴 아이를 응원했다. 딸이 이긴 아이가 딸을 이긴 아이를 이기면 승점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메달 색 결정이 복잡해질 수 있었다. 아들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딸이 금메달을 따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지쳐서 그만 집에 가고 싶어서 딸이 은메달을 가져가는 걸로 마무리되었으면 했다. 미안 딸! 다행히 딸을 이긴 아이가 경기를 이겨 금메달을 따면서 딸의 은메달이 확정되었다. 이전에 취미 대회에서 동메달을 딴 적이 있어서 체스로는 두 번째 메달이다. 이번 대회로 딸은 난생처음 핀란드 국내 레이팅 점수 1285를 획득했다. 아들은 자신이 여태껏 딴 수많은 메달보다 이번에 딸이 딴 메달이 크다고 불만을 표했다. 


좌: 둘째 날 처음 경기 시작 전 딸, 중간: 딸의 메달 정하는 경기에서 동생을 주시하고 있는 아들, 우: 은메달 목에 걸고


아이들의 체스대회를 돌이켜 보며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이 떠올랐다. 핀란드의 아이들 체스대회는 일반적인 핀란드의 거주 인구의 국적 또는 인종 비율과 다른 양상을 띤다. 핀란드인이 다수인 핀란드에서 체스 관련 행사에서는 러시아계 사람들이 다수가 된다. 거기에 인도인들의 수도 늘어나고 있고, 상대적으로 핀란드인이 줄어들고 있는 느낌이다. 핀란드인이 다수가 아니고 소수 쪽에 가까운 느낌이다. 그리고 간간이 보이는 중국인들이 있다.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러시아 쪽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그들의 행동이 눈에 더 띄는데 부모들이 코치처럼 굴면서 선을 넘는 경우가 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아이들에게서 물러나 있어야 하는데, 끝까지 붙어 있다가 부모가 경기 시작을 정하는 시계를 눌러주고 물러서는 경우도 봤다. 경기에 크게 영향을 미치진 않지만, 시계는 선수들이나 심판이 누를 수 있는데 엄밀히 따지면 반칙이고 실격패 당해도 할 말이 없는 행동이다. 


게다가 끝까지 붙어있는 부모들을 보면 아이들에게 대회가 기본적으로 주는 긴장감에 스트레스를 추가하는 것 같아 그들의 아이들이 안쓰럽다. 그가 아이들과 함께였다면 그도 비슷한 행동을 했을까? 은근 바지바람이 있는데... 나는 할 말도 없던데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 걸까? 차라리 경기가 끝나고 경기를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라면 할 말이 있겠다 싶은데 그들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그나저나 나는 아이들을 따라다니기만 했는데, 왜 한없이 피곤했을까? 어쩌다 그 여파가 그다음 주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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