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 Dec 13. 2022

체스, 다 이긴 게임에서 무승부...

아들이 화를 주체하는 법을 배워야 할 텐데...

배경 이미지: 블리츠 체스 시합 중인 딸, 얼굴로 지고 있다고 말하는 중.



아들의 체스 이야기


12월 10일 청소년 속기 체스 (blitz chess) 대회가 있었다. 3분의 경기시간에 수를 둘 때마다 2초가 추가되는 경기 방식이었다. 11살로 U12 그룹에 속한 아들은 아무래도 한 살 더 많은 아이들과 경쟁해야 하니 메달을 따기 어렵다고 그가 말했지만, 흘려들었다. 나는 아들이 블리츠 체스는 강하니까 메달을 딸 거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아들은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다.


11번의 경기에서 6승 1무 4패로 4위에 머물며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메달 수상자들이 모두 12살인 것을 감안하면 내년엔 메달을 기대해도 될 것 같다. 마지막 경기에서 아들은 상대방의 무승부 제안을 받아들이고서야 상대방이 시간으로 지기 직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승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아들이 이긴 경기였다. 아들은 그 상황에 화가 많이 나서 빨리 집에 가자며 우리를 재촉했다.


화가 날만한 상황이기 했지만, 아들은 엉뚱하게도 우릴 향해 화풀이를 했다. 차분히 짐을 챙기고 있는 나에게 퉁퉁 대며 가자하고, 다 필요 없다는 투의 말까지... 덕분에 그와 나까지 불쾌해졌다.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나는 꼭 안아주며 아들의 화를 어느 정도 받아주었지만, 아들은 자신의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상대방의 시간을 확인하지 않은 아들의 실수를 냉정하게 꼬집으며 타일렀다. 난 살면서 이런저런 기분 나쁜 일이 생기는데 그때마다 주변 사람에게 무례하게 굴 거냐며 아들을 혼냈다.


아들의 등수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그와 아이들은 집으로 향했다. 나는 연말 모임에 들렀다가 딸이 잠든 뒤에야 집에 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문득 아들의 상황을 되짚어 봤다. 아들이 실수했지만, 상대 선수가 교활했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아들처럼 화가 났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 가족들에게 화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아마도 혼자 화를 삭일 시간을 달라고 했을 것이다. 옆에 붙어 있으면 괜스레 가족에게 화풀이를 할 수도 있으니, 잠깐 동안 안정을 찾을 공간과 시간은 요청했을 것 같다. 물론 아들처럼 막무가내로 화를 냈을 수도 있다. 


하루를 돌이켜보며 그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에게 아들의 행동이 옳지 않았지만, 아들에게 미처 화를 풀 시간을 주지 않은 건 우리의 실수인 것 같다 했다. 그는 돌아와서 결과를 확인해보니 무승부가 아들의 성적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했다. 설령 이겼더라도 아들은 4위였다며, 단지 상대 선수가 무승부로 아들과 함께 공동 4위를 했을 뿐이라며, 아들이 결과를 알고 나서 화가 좀 누그러졌다고 했다. 


내 감정을 잊기 전에 때마침 잠들려던 아들을 붙잡고 짧은 대화를 나눴다. 가족에게 화풀이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엄마가 화를 내고 풀 시간을 주지 않고 화를 삼키라고 다그친 것은 잘못이라며 사과했다. 다음에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화낼 시간을 달라고 하되 엉뚱한 사람에게 화를 내지 말라고 아들을 타일렀다.


체스에 재능은 있지만, 슬럼프인 듯 한동안 제자리걸음 중인 아들... 본인이 더 답답하고 힘들 텐데 옆에서 지켜보기가 안쓰럽다. 그래서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맘에서 잘하는 블리츠 체스에서라도 메달 하나를 따기를 바랐는데, 아쉽다. 아들 체스 선생님이 내년에 시간 날 때 1대 1 과외를 하기로 했는데, 그때 슬럼프를 어느 정도 극복하길 소망한다. 돌이켜보면 지금이 더 높이뛰기 위한 제자리걸음 단계였기를..



딸은?


딸은 아빠의 바람 넣기 성공으로 대회전 일주일 넘게 꾸준히 매일 블리츠 체스를 두면서 대회를 준비했다. 점심 전엔 너무 긴장했었는지 경기를 내리 지다가 마지막 경기에서 1승을 이뤘다. 그리고 점심 후 2승을 추가했다. 내내 지고 돌아가면 슬펐을 텐데 다행이었다. 7살로 U8 그룹에 속한 딸은 그룹 내 유일한 여자아이였다. 덕택에 결과가 어떻든 여자부문 금메달을 받았다. 언젠가 전체에서 메달을 따면 좋겠다. 특히, 딸이 메달을 받을 때 여자라서 받는데라며 비아냥 거리던 금메달 받은 남자아이는 언젠가 꼭 이겨줬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감정, 우정 훈련 수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