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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Mar 19. 2019

'똥똥똥' 사건과 재미있는 Karkki!

과묵한 아들이 먼저 말을 건넸다! "오늘 재미있었어!"

2019. 3. 1



'똑똑똑'이 아닌 '똥똥똥'


금요일 오후, 엄마가 맞아주기를 선호하는 아들이 직접 문을 따고 들어왔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아들을 맞이할 준비는 전혀 되어있지 않았고, 무언가를 하던 중이라, 대충 왔냐고 인사만 하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아들이 '똑똑똑'이라고 외쳤다. 귀엽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하는 중인가 보다 싶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겨울이라 여러 겹 껴입은 옷을 벗으려고 애쓰면서 아들이 계속해서 '똑똑똑'이라고 외쳤다. 무언가 매우 급한 듯한 아들의 모습에 아들이 '똑똑똑'이 아닌 '똥똥똥'이라고 외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화장실이 무척 급했던 것이다. 그제야 아이가 옷을 벗고 화장실로 바로 갈 수 있도록 화장실 문을 열어주고 불을 켰다. 신발을 벗겨주자 아들은 쏜살같이 화장실 문도 닫지 않은 채 변기에 앉았다. '문 닫아 주세요.'라는 아들의 요청을 들어주고 허물처럼 벗어놓은 옷을 정리했다.


신기하게도 다른 날과 다르게 겉옷 바지, 장갑, 신발이 전혀 젖어있지 않았다. 겨울이라 이곳저곳 눈이 쌓여 있는데, 아들은 하굣길에 눈밭에서 뒹굴면서 놀다 오는 듯하다. 학교에서 돌와온 아들의 겉옷 바지, 장갑, 신발은 늘 젖어 있다. 모두 방수 기능이 있는 제품들이라 속까지 젖는 일은 거의 없지만, 젖은 부분을 제대로 말리지 않으면, 나중에 물 썩은 고린내가 독하게 난다. 자주 빨면 방수 기능이 없어지기 때문에 매번 빨 수도 없다. 다행히 우리 집은 욕실을 건조하게 유지시키기 위해 24시간 빵빵하게 돌아가는 라디에이터가 있어 아들의 젖은 옷을 말리기가 용이하다. 며칠째 영상을 웃도는 날씨로 젖은 눈 때문에 잔뜩 젖어왔었는데 무슨 일일까? 마침 오늘 영하로 떨어진 날씨 때문인가? 그래도 너무 다 뽀송뽀송한 걸 보니 화장실이 엄청 급해서 한눈팔지 않고 집으로 곧바로 왔나 보다.



재미있는 Karkki!


그 와중에 아들이 화장실에서 소리친다. 오늘 학교가 재밌었다고! 평소 오늘 학교가 어땠냐는 나의 질문에 묵묵부답이거나 모른다는 대답을 하던 아들이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학교가 재밌었다고 하더니! 혁명이다. 그러고는  Karkki를 먹어서 재미있었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까륶끼는 우리말로 단 것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데 주로 젤리를 일컫는다. 아들이 선뜻 학교 이야기를 해주었으니, 내용이야 어쨌든 기쁘기도 하고, 앞으로도 쭈욱 자신의 생각을 나눠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아들의 말에 신나게 맞장구를 쳐줬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아들의 대모가 초대한 인어공주 발레 공연 관람 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대모가 인어공주로 출연한 공연이 재밌었냐는 질문에 흔쾌히 수긍을 하던 아들에게 무엇이 제일 재밌었냐고 묻자, 아들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까륶끼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안타깝게도 3D 안경까지 동원된 공연보다 중간 휴식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사준 젤리가 아이의 맘을 더 사로잡았다.


저녁에 다음날 한글학교 학부모 간담회를 위한 사전 질문지를 살펴보는데, 학생이 느끼는 학교 활동 중 가장 좋았던 것을 묻는 문항이 있었다. 대답을 잘 안 해주는 아들을 달래며 대답을 쥐어짜 보니 간식이라고 한다. 쉬는 시간에 먹는 간식을 언급해서, 수업시간에 재미있는 것은 무엇이냐고 구체적으로 물어보자, 노래 듣기도 좋다고 선심 쓰듯 답한다. 아들은 마치 어디든 먹으러 다니는 것처럼 말한다. 그런데 왜 그렇게 입이 짧고 비쩍 말랐을까? 아들이 내 품에 안기면 뼈 몽둥이로 매 맞는 느낌이라 아픈데... 원래 목적보다 중간에 나오는 간식이나 젤리가 좋은 아들, 어느 순간 먹는 것만큼 아니 그보다도 더 수업도 즐기고 공연도 즐길 수 있기를 바라며 아들의 환한 미소에 나의 '에휴~'하는 마음과 '피식'하는 마음을 꼭꼭 숨기며 환하게 웃으며 화답한다.

공연 전 3D 안경을 써보는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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