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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Feb 07. 2023

유행 지난 모피, 과거를 현재로...

모피를 즐겨 입던 러시아인들이 떠오르면 함께 떠오르는 한국 정치인들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이 글은 1월 7일 얼룩소에 먼저 공개한 글입니다.



핀란드에서 마주쳤던 모피를 즐겨 입던 러시아 쇼핑객들


며칠 전 헬싱키 중심가를 걸었다. 거리는 평일 낮이지만, 방학기간이라 적당히 붐볐다. 문득 이맘때 거리를 메우던 러시아 쇼핑객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러시아정교회는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이 아닌 율리우스력을 사용하는데, 율리우스력에 따르면 크리스마스가 1월 7일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러시아정교회의 크리스마스를 따른다. 연말과 새해 그리고 러시아의 크리스마스까지 겹친 긴 연휴기간, 상당수의 러시아인들이 크리스마스 선물 구매를 위한 핀란드 쇼핑여행을 즐겼다. 핀란드의 크리스마스 이후 시작된 세일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코로나와 전쟁으로 러시아 쇼핑여행객이 사라졌다. 러시아 쇼핑여행객을 겨냥해 러시아 국경 근처에 세워진 아웃렛 쇼핑센터는 지난해 10월 파산했다. 


코로나와 전쟁 이전에, 러시아 쇼핑객들은 1월의 추위를 대비해 다양한 모피제품을 걸치고 헬싱키 중심가를 누볐다. 크리스마스 이후 세일제품을 공략하다 보면, 거리에서 또는 상점에서 모피코트, 모피목도리, 또는 모피모자를 걸친 러시아인들을 마주했다. 그들이 대부분 러시아인들이라고 단정할 수 있던 이유는 나라마다 선호하는 패션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핀란드인들은 대체로 모피를 선호하지 않는다. 모피가 동물학대와 뗄 수 없다는 비판에, 일찍부터 핀란드 젊은 세대들은 모피패션과 거리를 두었다. 가격이 비싼 이유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 시절 젊은 세대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모피에 대한 견해를 바꾸지 않았고, 새로운 젊은 세대들은 모피를 유행 지난 할머니 세대의 패션으로 취급했다. 그래서 평소 헬싱키 겨울 풍경에서 모피를 마주하는 일은 드물다. 물론 추위를 많이 타는 어르신들은 예전에 구입했던 모피를 잘 관리해서 여전히 잘 입고 다니신다. 


예전에 모피를 두른 러시아 쇼핑객이 유난히 더 많이 눈에 띄던 날 쇼핑을 하다가 제품 하나 계산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소비한 적이 있었다. 평소보다 많은 고객과, 고객 1인당 구매량이 상당해서 계산대의 줄은 쉽게 줄지 않았다. 미처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던 나는 점원에게 붐비는 이유를 물었고, 덕택에 러시아 쇼핑객들에 대한 시야가 트였다. 그 후 되도록이면 이 시기의 쇼핑을 피하게 되었다.


핀란드에 살아서 핀란드인들과 동화되어서일까? 어느샌가 자주 보지 않던 모피를 보면 유행 지난 패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패션계에서 인조모피가 유행하고, 모피가 자리를 잃어가기 전부터였다. 이런저런 경험 덕에 나라마다 사람마다 새로운 생각이나 패션을 받아들이는 시기가 제각각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러시아는 모피의 유행이 사라지는데 얼마나 걸릴까 궁금한데, 러시아에 관심이 지대한게 아니라 이미 사라졌을지 아님 여전할지 모르겠다. 핀란드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들이 상당하지만, 그들은 핀란드의 영향을 받아 러시아에 사는 러시아인들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러시아를 여행하거나 핀란드를 여행하는 러시아인들을 봐야, 그들의 패션을 논할 수 있을 텐데, 그럴 기회가 당분간은 없을 것 같다. 



유행 지난 모피처럼, 유행 지난 빈곤 포르노... 


최근, 러시아 쇼핑객들의 빈자리가 장소에 어울리지 않던 러시아인들의 모피 사랑을 떠오르게 했다면, 지난해엔 다른 일로 핀란드에서 유행 지난 모피를 많이 마주하던 특별한 시기를 떠오르게 했다. 언론에 김건희 씨의 빈곤포르노 논란이 보도되었을 때다. 모피처럼 유행 지난 구도의 사진을 마주했을 때 내 머릿속엔 언론과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디자인 전공자가 아니었나? 트렌드 파악도 안 했나? 나서기 좋아하고 관종인듯한 그녀가 사진에 대해 말을 보태지 않았으리 만무한데, 아니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도를 녹여냈을 텐데... 한참 유행 지난 빈곤 포르노를 들이밀다니... 아무리 레트로가 유행이라지만, 저건 아니지 않나? 관심 없던 분야에서 배경지식을 살펴보지도 않은 채, 어찌 한번 긍정적으로 튀어보려던 욕망만 채우려다 망신당했는데, 망신 아니라고 우겨대는 꼴이 어이없었다. 편들어 주는 정치인들과 언론도 부끄럽지 않은지? 


(도덕적 이유로 지양되고 있는 빈곤 포르노를 철 지난 유행이라고 표현하는 게 마음에 다소 걸리긴 하지만, 모피도 도덕적 이유로 지양되고 있다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철 지난 유행으로 비교하는 관점으로 접근한 글이기에 독자에게 양해를 구한다.)


일부는 오드리 헵번 코스프레라고 하던데, 나는 오히려 2011년 나경원 씨의 장애 청소년 알몸 목욕 관련 사건이 떠올랐다. 그때 논란은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정치생명에 큰 타격을 입지 않아서 그런가? 10년이 넘게 지나서 데자뷔 같은 일이 또 생겼다. 나경원 씨 사건과 비교하는 언론이 많았다면 어땠을까? 이번 일이 2011년에 얼렁뚱땅 넘어간 것처럼 쉽게 넘어갔는데, 두 사건이 크게 비교되었다면 어땠을까? 2011년에는 무지라 탓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무지라고 핑계대기엔 한국이 지나치게 잘살아서 선진국의 품격을 지녀야 한다는 논조의 언론보도가 있었다면 대중은 어떤 반응을 했을까? 언론이 자꾸 호감 가는 유명인과 비교해서, 관종짓을 부추기는 것 같은데, 언론이 굳이 칭찬받지 않을 일에 유명인과 비교를 끼워 넣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용히 봉사한다면서 언론 불러서 취재하게 하는 것도 말 그대로 조용히 봉사하게 언론이 보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과거를 현재로 살고픈 대통령부부?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 다른 시대를 살아가기도 한다. 모피가 철 지난 유행인 핀란드에서 모피가 패션 아이템인 러시아인들을 마주하기도 하고, 인권을 철저하게 존중하는 나라에 본사를 둔 회사가 인권이 무시되는 나라에 하청을 주며 인권향상 위해 애쓰기도 하고, 인권을 무시하기도 한다. 예전에 노키아 입사를 위한 적성검사 때 만난 그룹 토론자 중 한 명이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는 노키아의 근로표준보다는 그 나라의 근로표준을 적용해 이익을 취해도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너무나 토론을 잘하던 토론자들 덕에 토론 내내 조용했던 내가 나도 모르게 '그럼 인권은?'이라는 질문이 튀어나오게 한 발언이었다. 발언자를 제외한 다른 토론자와 관찰자의 소리 없는 동의의 술렁임은 내 가치관과 맞는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나저나 인권을 다소 무시하는 발언을 한 그 사람은 입사했으려나?  


다시 돌아와 한국의 많은 이들이 특히 청년들이 2023년을 현재를 살아가는데, 많은 정치인들이 아직도 박정희 시대나 전두환 시대를 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시간을 되돌리려 애쓰는 모습이 보여서 정치 그만두고 집에 돌아가 잠이나 자라고 해주고 싶은 정치인들은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노년층과 일부 중년층의 지지를 바탕으로 버티고 있다. 그들은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타임슬립을 통해 과거로 회기해 제2의 인생을 사는 게 아닌 그 반대의 상황을 갈구하는 것 같다. 구미에 맞는 과거를 떼어와 현재에 끼워 넣으려고 애쓰고 있는 것 같다. 역사를 제대로 배우고 평가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이들의 태도를 견제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안타깝게도 대통령부부도 과거의 추억을 현재에 끼어 맞춰가며 살려고 애쓰는 것 같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다른 정치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대장이니까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목소리 크니까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하려 하는 것 같다. 거기에 아내니까 남편 일에 감나라 배나라 잔소리를 할 수 있고, 남편 지위를 등에 업고 아랫사람 맘대로 부리며 하고 싶은 거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같다. 아니 절대왕정의 왕권을 원하는 것 같다. 그들은 알까? 멀리서 보면 되게 촌스럽다는 걸? 1970년대 사람을 어쩌다 모르고 2020년대에 힘 있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중요한 자리에 던져놨는데, 힘만 과시하고 책임은 나 몰라라 해서 모두가 좌불안석이 된 것 같다. 많은 이들이 그저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상황이 우습지 않은가?


아직 임기를 1년도 채우지 않았는데, 이태원참사는 골치 아프니 나 몰라라하고, 심지어 축소하려 애쓰고, 안 그래도 긴 노동시간은 더 늘리려 한다. 물난리에도 남일인 양 퇴근했고, 휴가를 핑계로 미국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 만나지 않는 외교 참사를 벌였다. 청와대가 무서운지 들어가지도 않고 급하게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를 각각 마련하느라 어마어마한 세금을 낭비하고는 결국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통령주재행사를 치르는데도 부끄럼이 없어 보인다. 그 와중에 사회적 약자인 화물연대에겐 대화보다는 진압을, 부자를 위해서는 감세정책을, 사회약자를 위한 복지 예산은 삭감을...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대통령 놀이나 해보자는 듯이 마구잡이 사면 단행까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맘대로 하고 있다. 누군가는 애를 써서 한국을 현재로 미래로 향하게 하는데 대통령이 깽판 치며 한국을 과거로 돌리려 한다. 촌스럽다. 한없이 촌스럽다. 유행 지난 촌스러움을 동경하는 그들의 촌스러움을 2023년에는 얼마나 목격해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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