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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Feb 03. 2023

딸의 철학적 사고: 배 속의 과일은?

단순한 계산문제를 철학문제로 바꾼 대답

배경 이미지 출처: Pexels



기억을 놓치지 않기에 일단 글을 끄적여놓고는 끝맺음을 미루는 경우가 있는데 이 글도 그중 하나다. 작가의 서랍 기록에 의하면 1월 28일에 저장된 글이다. 다행히 짧게 적어놓은 글이 그때의 기억을 소환하기엔 충분했다. 그래서 시간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어제오늘 마무리를 시도하고 있다.


초등 1학년인 딸은 저녁 9시쯤 잠자리에 든다. 그와 내가 번갈아가며 딸을 재운다. 너무 늦게 잘 때를 제외하곤, 우린 잠들기 전 딸과 각자의 방식대로 시간을 보낸다. 그는 딸과 함께 이런저런 대화나 놀이를 가장한 수학문제풀이, 영어단어공부 등을 한다. 나는 영어나 한국어로 동화책을 읽어주는데, 요즘은 주로 한국어로 된 동화책을 읽는데 집중했다. 이도 어찌 보면 책 읽기를 가장한 한국어 공부라 할 수 있겠다. 


여느 때처럼 한국어 동화책을 읽어주고 딸에게 잘 자라고 인사한 뒤돌아서는데, 딸이 마지막으로 수학문제를 하나 내달라고 애원했다. 딸의 애교 넘치는 부탁을 어찌 무시하랴? 단순한 문제를 낼 생각이었으나, 순간 장난기가 발동해 살짝 말장난이 섞인 문제를 내줬다.


엄마에게 복숭아 5개가 있다. 우리 가족 4명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엄마는 복숭아를 먹었다. 복숭아가 몇 개 남았을까?


딸은 복숭아가 4개 남았다고 했다가 복숭아 1개가 여전히 내 배 속에 있으니 그것까지 더해서 5개라고 답했다. 딸의 대답이 단순한 계산문제를 철학적인 토론문제로 바꿔놓았다. 나는 딸이 1개라고 대답할 거라 예상했는데, 그래서 답이 4개라고 고쳐주면 되겠다 싶었는데... 순간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한편으론 딸과 흥미로운 토론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제때의 꿀잠보다 중요한 것은 없기에 배 속에 있는 과일에 대한 존재유무에 대한 토론은 다음으로 미루고 딸을 재웠다.


과연 배 속의 과일에 대한 토론을 할 날이 오긴 할까 싶다. 그러나 이렇게 가끔 내 예상을 빗나간 생각을 하고 있는 딸을 마주할 때면 감탄스럽고 신기하다. 어떻게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까? 딸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은 얼마나 큰 걸까? 그걸 내가 잘 펼쳐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망치지나 말았으면 좋겠다. 딸이 지금처럼 또는 지금보다 더 예쁘고 현명하게 자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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