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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Dec 17. 2022

아침밥 먹다 딸 숙제 들고뛰기

숙제 전해주기 미션: 딸의 아기 시절을 소환해준 숙제를 놓고 갔다.

배경 이미지: 여권도 씹어먹으려던 아기 시절의 딸



2022. 12. 1


딸은 9시 5분까지 등교하는 화요일을 제외하곤 8시 15분까지 등교해야 한다. 밥도 천천히 먹고,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오빠랑 투닥거리기까지 하는 딸이 제시간에 등교하도록 하려면 그와 내가 시시때때로 딸을 재촉해야 한다. 


"옷 갈아입어. 밥 먹을 시간이 15분이야. 멍 때리지 말고 음식을 입에 넣고 씹어. 밥 먹는데 왜 장난감을 만지작 거리니? 장난감은 식탁에 있을 이유가 없으니 치울게. 5분 남았네. 대화는 학교 다녀와서 하고 먹는데 집중해. 이 닦자. 가방 챙겨라. 옷을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챙겨 입기엔 시간이 부족해."


12월 1일, 유달리 꾸물대던 딸 때문에 아들까지 지각할 것 같아 먼저 보냈다. 먼저 간 오빠 덕에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딸은 반쯤 울면서 집을 나섰다. 드디어 평화롭게 아침을 마저 먹을 수 있겠구나 싶었지만, 딸의 떠난 자리를 정리하던 그가 딸이 숙제를 놓고 갔다고 외쳤다. 순간 나는 밥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서둘러 코트를 챙겨 입고 스카프를 둘렀다. 발코니에서 딸을 부르려던 그를 말리며 내가 가져다주는 게 빠를 것 같다 하자 그가 딸의 숙제를 주었다. 열쇠를 챙기며 집을 나서는 내게 출근해야 하는 그가 좋은 하루 보내라는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아침 먹다 갑자기 뛰었다. 머리는 일어나자마자 대충 질끈 묶은 채로, 분홍색에 귀여운 회색 코끼리가 여기저기 있는 수면바지를 입고 열심히 뛰는데 딸의 친구 엄마와 마주쳤다. '세수를 했던가? 주로 아침 먹고서 양치하고 세수하는데...' 멋쩍은 인사를 건네고, 학교까지 가지 않아도 되길 바라며 계속 뛰었다. 학교 가는 길 중간 즈음 서둘러 학교로 향하는 딸이 보였다. 혹여 지각할까 봐 불러 세우지 못하고 달려가서 딸을 붙잡고 가방을 열어 숙제를 한 종이를 넣어주었다. 잘 가라고 등을 두드려주곤 집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 여러 생각이 스쳤다. '코트가 무릎 위까지 오는 길이라 다행히 수면바지가 눈에 많이 띄진 않았겠다. 딸의 친구 엄마는 나의 몰골과 분홍색 수면바지를 봤을까? 학교까지 가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 숨이 차긴 했지만 잘 뛰었다. 운동습관 들인 지 2년 다 되어가는데, 운동 덕인 거 같다. 그는 벌써 출근했으려나? 딸에게 책가방을 전날 챙겨놓으라고 해야겠다. 그러고 보니 딸만 서둘러 학교에 가던데 느긋이 걷는 아이들은 머지? 지각할 텐데... 눈 와서 미끄러우니 뛰어가다 다칠 수도 있으니 느긋이 걷는 게 나으려나?' 아파트 건물을 나서는 그와 인사를 하고 집에 돌아오니 12분이었다. 지금쯤 딸도 학교에 도착했을 테니 지각은 면했겠다 싶어 안도가 되었다. 식탁 위엔 먹다 남은 식은 아침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아침부터 뛰게 한 딸의 숙제는 딸의 아기 시절에 대한 질문지였다. 질문지는 생일과 출생 당시 몸무게와 키, 좋아하던 장난감, 좋아하던 일, 부모로서 딸의 어떤 면을 좋아했는지, 첫니는 언제 나왔는지, 처음 말했던 단어, 언제 혼자 일어섰는지 등을 물었다. 덕택에 우리는 잠시 딸의 아기 시절을 떠올렸다. 아기 때 사진까지 첨부해야 해서 아직도 내 눈엔 어린 딸의 더 어린 시절을 사진으로 돌아보게 되었다. 딸이 즐겨하던 일로 종이 먹기를 적으며 함께 웃었다. 딸이 처음 말한 단어는 기억이 희미해 말문이 트였을 때 말하던 단어들 중 하나인 '맘마'를 적었다. 가끔 예전을 되돌아볼 수 있는 이런 계기는 언제나 환영이다. 지금도 예쁘지만 아기 때 빛나던 딸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리워할 수 있어서, 가슴 벅찬 느낌에 한껏 빠질 수 있어서 좋다.


좌: 종이 씹어먹던 딸, 우: 문제의 숙제 질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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