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 Dec 14. 2022

문이 안 열려 패닉에 빠진 딸

당황하면 우느라 정신이 없는 딸, 그런 딸을 도와준 고마운 이웃

배경 이미지 출처: Pexels



2022. 12. 13


오후 5시가 다 돼서야 초인종이 울렸다. 사랑스러운 딸이었다. 건물 문을 열어주고, 우리 집 문을 열고 딸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2층 사는 이웃이 눈에 띄었다. 핀란드어로 무슨 말을 했으나, 인사만 가볍게 하는 사이라 내게 말을 건네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2층 사는 이웃은 계속 말을 건넸고, 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영어로 이야기해줄 수 있냐고 물었지만, 그는 내 이야기를 듣지 못한 건지 영어를 못하는 건지 계속해서 핀란드어로 설명을 이어갔다. 핀란드어를 거의 못하는 나였지만, 눈이 많이 내려 쌓인 탓에 아파트 문이 열리지 않았고, 그 때문에 딸이 패닉에 빠져 울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딸에게 달려가려고 신발을 신으려던 찰나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딸일 것 같아 기다렸다. 그 사이 방에 있던 그도 나와서 이웃의 이야기를 들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나에게 달려오는 딸을 꼭 안아주었다. 딸이 내게 안기는 것을 보고서야 2층의 이웃이 내려갔다. 그가 이웃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었던 것 같은데, 온통 딸에게 신경이 쏠려있어서 기억나지 않는다. 딸은 오는 길에 친구와 눈에서 뒹굴었는지, 옷에 눈이 상당히 붙어있었다. 내가 딸의 젖은 옷과 장갑을 정리하는 사이 그가 딸을 달랬다. 그는 당황했을 딸의 모습을 펭귄의 디뚱 거리는 모습으로 흉내 내면서 딸의 무서웠던 감정을 웃음으로 걷어냈다. 우리 둘 다 각자의 언어로 문이 열리지 않으면 놀라지 말고 다시 초인종을 눌러서 내려와 달라 부탁하면 된다고 딸을 다독였다.


아직 초등학교 1학년이라서일까? 딸은 추운 문밖에서 계속 있어야 할까 봐 두려웠다고 했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내게 아침도 먹지 않고 학교에 가서 점심과 방과 후의 간식으로 내일을 버텨야 할까 두려웠다고 했다. 그럼 밖에서 밤을 보낼 거라 생각했냐고 묻자 무섭다는 엉뚱한 대답만 돌아왔다. 밤이 오고 잠을 자야 한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나 보다. 그나저나 내가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그에게 확인했는데, 거의 못하는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딸의 이야기라서 인지 완벽하게 알아들었다는 답을 들었다. 담에 2층의 이웃을 만나면 오늘 미처 하지 못한 감사의 인사를 꼭 해야겠다. 친절하게도 딸의 상황을 알려주러 계단으로 4층까지 올라와 설명해주다니 고마운 맘이 크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2년 마지막 어린이 체스 시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