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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Feb 08. 2023

어떤 사과를 받고 싶나요?

묵묵히 다 들어주고 사과해라. 토 달지 말고...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입덧과 수박 내동댕이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일이다. 갑자기 찾아온 아기였기에 둘 다 준비가 되지 않아 당황했고, 서로 힘들었다. 이런저런 다툼이 종종 있었다. 하루는 그에게 수박을 사다 달라고 했는데, 그가 깜빡했다. 집에 들어서는 그에게 실망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수박이 먹고 싶다고 했는데라고 툴툴대자, 그는 한숨을 크게 쉬며 뒤돌아 나갔다. 그러고는 수박 한 통을 사 와 바닥에 내동댕이치듯 내려놨다. 그때를 떠올리면 수박을 내동댕이 치던 그의 모습과 나의 서러웠던 감정도 함께 떠오른다.


서운했다. 깜빡해서 미안한데, 너무 지쳐서 그러니 다음날 사다 주겠다고 달래줬다면 받아들였을 텐데... 내 반응에 화났다는 무언의 항의를 하고 수박을 사 와 내던지다니... 게다가 그 사온 수박은 상태가 좋지 않아 바로 내다 버려야 했다. 수박이 가격이 좀 되는데, 홧김에 잘라진 수박도 아니고 수박 한 통을 확인도 하지 않고 덥석 사온 그에게 무슨 말을 한들 들리지 않을 것 같아 나는 말을 아꼈다.


핀란드는 겨울이 긴 기후 탓에 많은 채소와 과일을 수입한다. 유통과정이 길다 보니 전반적으로 채소와 과일의 신선도가 떨어질 때가 흔하다. 게다가 한국보다 슈퍼마켓의 품질관리가 느슨해 상한 채소나 과일을 상품 진열대에서 마주하기도 한다. 그래서 채소나 과일은 잘 살펴보고 사야 한다. 살펴보고 사도 가끔 겉은 멀쩡한데, 속에 곰팡이가 핀 파프리카를 마주하는 경우가 있다.


지금 같으면 그냥 예쁘게 말하면 넘어갈 일을 크게 만든다고 한 마디 했을 것이다. 게다가 상한 수박 또는 쓰레기를 사 왔으니 가서 바꿔오든가, 버리던가 알아서 하라고 했을 것이다. 아니 내가 그냥 사 왔거나, 그가 아마 유들유들하게 말로 넘겨서 큰 부딪힘 없이 넘어갔을 것이다. 그때는 심한 입덧으로 힘들고 지친 데다가, 그의 의외의 행동에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게다가 서로를 맞춰가는 상황이라 싸움이 잦은 편이었다.


한동안 그때의 기억이 선명했지만, 상처가 커서 회피하고 싶었는지 그때의 일을 언급하진 않았다. 지금은 시간이 지나 빛바랜 사진처럼 그때의 기억이 옅어졌다. 시간 탓일 수도 있고, 그 이야기를 한번 꺼내서 풀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한참이 지난 뒤 그에게 그 일을 언급하며 항의한 적이 있다.


내가 오래된 수박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는 그때 자기가 잘못하긴 했는데, 이제 와서 시간을 돌릴 수도 없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그의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곰곰이 고민했다. 그리고 그에게 임신 때 서러운 일들은 그냥 기억하는 게 아니고 돌에 새기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잘 잊히지 않으니, 기억 속 어딘가의 있는 그 돌을 꺼낼 때마다 그냥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그땐 미안했다고 사과해 달라고 했다. 그는 내 요청에 수긍했는지 더 이상 논쟁을 이어가지 않고 사과했다. 어쩌면 그냥 빨리 그 시간이 지나길 원해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난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때 오랜 기간 마음속 구석에 어찌할지 몰라 꼬기꼬기 접어놓았던 서러움이 많이 풀렸던 것 같다. 그 뒤로 한번 더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는데, 그를 놀리는데 이용했고, 처음 그 이야기를 꺼낼 때처럼 그때의 서러운 감정이 되살아나진 않았다. 잘못을 되돌릴 수 없지만, 그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사과하고 토닥여주는 것이 나도 몰랐던 내가 원하는 사과였다. 지금 생각 같아서는 아마 그 일을 다시 언급할 일이 없을 것 같긴 한데, 미래의 나에 대해선 내가 아직 잘 알지 못하니 살아봐야겠다.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강요하지 않았으면...


한국사회는 학교폭력이나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강요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만하면 충분하지 않으냐고 피해자도 아니면서 가해자를 용서하자고 우기기보다는 피해자에게 어떤 사과를 원하는지 한 번쯤 물어보는 건 어떨까? 아님 만약 자신이 피해자라면 어떤 사과를 원할까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억울하니까 그 억울함을 이야기해서 풀고 싶은데, 지나간 일을 어찌 되돌리냐고 자꾸 조용히 하라고 한다면 피해자의 상처를 키우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용서는 피해자가 하는 것이고, 사과도 피해자가 받아들일 때 피해자가 사과를 받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가해자가 난 사과 했으니 괜찮다고 떠들거나 제삼자가 그만하면 되었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걸 모두가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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