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 Feb 27. 2023

아들과 함께한 수학공부

아빠가 좋은 선생님인데, 굳이 엄마가 아들을 힘들게 한건 아닐까?

배경 이미지: 수학 문제 하나 이해하기 위해 이런저런 수학문제를 풀어야 했던 아들



월요일: 세 개의 미지수가 있는 연립방정식


일주일간 스키 방학인 아들을 그냥 놀리기가 아쉽다 싶었는데, 언니가 보내준 문제집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4학년 문제집이길래 5학년인 아들이면 충분히 잘 풀겠지 싶어, 풀어보라고 했더니 아들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 a + b = 3 7/8, b + c = 3 2/8, c + a = 2 3/8에서 a, b, c 값을 구하는 문제였는데, 아들은 문제를 어떻게 손대야 할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반에서 수학을 제일 잘한다고 들었는데, 금세 풀이방법이 보이는 문제를 풀지 못하는 아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문제를 보고 풀기는 했는데, 이게 미지수가 세 개인 연립방정식이라고 불린다는 걸 몰랐다. 여러 번의 검색으로 간신히 용어를 알아냈다. 문제는 풀 수 있는데 용어들은 기억 저편으로 다 사라진 것 같다.


아들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나는 내가 속성으로 푼 방법을 보여줬다. 아들은 내 풀이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난 딱 보면 척하고 푸는 법이 보이는 문제를 풀지 못하는 아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쨌든 문제를 봤으니 아들이 문제를 푸는 법을 배웠으면 해서 한참을 궁리한 끝에 기초적인 접근을 하려고 미지수를 두 개로 낮추고 분수가 아닌 정수를 이용한 연립방정식 문제( x + y = 10, y - x = 4 )를 줬다. 곧잘 푸는 것 같아 분수 값이 들어간 연립방정식을 풀게 했더니, 분수의 덧셈 뺄셈이 서툴러 보여서 분수의 덧셈, 뺄셈 문제를 여러 개 내줬다.


분수의 덧셈, 뺄셈에 익숙해진 것 같아 아들에게 다시 미지수가 세 개인 문제를 줬다. 왠지 헤매는 것 같아 이래저래 열심히 설명해 줬는데, 아들이 이항의 개념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차분히 이항을 설명해 줬다. ( 3 + 2 = 5, 3 + 2 - 2 = 5 -2 vs. a + b =5, a + b - b = 5 - b , 내 기준에 과하게 친절했다. ) 설명을 좀 따라오는 것 같길래, 미지수가 세 개인 연립방정식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하나의 문자에 관한 식으로 정리해서 푸는 방법과 함께 세 개의 식을 더하거나 빼면서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 드디어 문제 푸는 법을 이해한 아들은 자신을 울상 짓게 한 문제를 풀었다.


하루 종일 수학에만 매달린 것은 아니지만, 아들은 문제 하나를 이해하고 푸는데 하루를 보냈다. 아들은 지쳐 보였지만, 한편으로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성취감을 느낀 것 같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여기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수학문제를 모른다고 외면하기보다는 그 문제를 풀기 위해 다양한 문제를 풀어보며 배우는 과정을 경험했다는 점이 제일 마음에 들었는데, 아들은 어떻게 받아 들지 궁금하다.



수요일: 수열


화요일은 수영장에 다녀오느라 지쳤던 데다가 월요일의 아들이 대견했기에 그냥 넘어갔다. 그러나 수요일에 마냥 게임만 하는 것 같은 아들을 차마 그대로 둘 수 없었다. 머리를 썼으면 하는 생각에서 수열 문제를 줬다. 10번째와 20번째의 수를 구하는 문제였는데, 아들은 성실히 수열을 일일이 나열해서 풀었다. 그 와중에 20번째는 계산 실수로 틀렸다.


아들이 수열의 개념을 이해해서 기뻤다. 그러나 나는 아들이 수열을 일일이 나열해서 문제를 풀기보다는 수열의 규칙을 발견하고 공식을 만들어서 공식에 대입해서 문제를 풀기를 원했다. 내가 먼저 문제를 휘리릭 푸는 모습을 보여준 뒤 설명을 해줬다. 아들이 풀던 수열문제의 핵심은 1부터 n까지의 숫자의 합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단순하게 공식( s = ( n + 1 ) x n / 2 )을 알려줬지만, 아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일일이 숫자를 써가며 공식을 풀어서 설명해 줬다. ( 1 + 2 + 3 + 4 + 5 + 6 + 7 +8 + 9 + 10 = 1 + 10 + 2 + 9 + 3 + 8 + 4 + 7 + 5 + 6 = 11 + 11 + 11 + 11 + 11 = 11 x 5 = 55 )


1부터 n까지의 숫자의 합은 기본적으로 덧셈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하는 문제인지라 아들은 쉽게 이해했고, 1부터 1000까지의 숫자의 합도 별 어려움 없이 풀었다. ( 100 x 49 + 100 + 50 = 5050 ) 아들은 기특하게도 이후 추가로 푼 다른 수열문제는 수를 일일이 나열하지 않고 규칙을 찾아 계산해서 해당 수를 구했다. 당황해서 문제를 마주하려고도 하지 않던 월요일에 비하면 아들의 태도는 매우 긍정적으로 변했다.



기억은 새록새록, 초등학생 수학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희미한 기억 속에 아들만 한 나이에 내가 풀었던 수학 문제들은 내가 아들과 함께 푼 문제와 비슷한 문제도 있었지만, 더 어려운 문제도 있었다. 당시 수학경시대회를 준비하느라 중학생 수준의 문제를 풀었기 때문이다. 남학생, 여학생 1명씩 내보내기로 결정된 경시대회는 여학생 중 2등을 하는 바람에 나가지 못했다. 경시대회를 준비하느라 한동안 주중은 물론이고 주말까지 반납한 채 경시대회반에서 수학문제를 풀었는데, 그 시간을 즐겼던 탓에 그리 아쉽진 않았던 것 같다.


고이 접어두었던 기억을 펼치다 보니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 속에 어느 순간 내가 풀던 문제가 초등학생 문제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내 어린 시절과 교과과정이 바뀌었다 해도 언니가 준 문제집이 난이도가 심하다 싶었다.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초등학생 4학년 수준의 문제집이라기보다는 그중 아주 잘하는 아이들, 영재반이나 후에 과학고를 목표로 하는 아이들을 위한 문제집이라고 했다. 아들이 손도 못 댄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문제집이 재밌고 잘 풀 수 있는 아이라면 과학고 가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언니의 말에 순간 이 나이에 내가 과학고를 가야 하나 하는 어이없는 고민을 아주 잠깐 했다. 역시 한국이라 핀란드보다 수학 진도가 빠르구나 싶었는데 오해였다. 


아들에게 문제를 푸는 방식을 결국 이리저리 풀어서 설명해 줬지만, 내 입장에서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는 문제라 우선 잘 설명하지 않고 내 풀이를 이해하기를 바란 나의 도둑놈 심보를 반성하게 되었다. 급한 마음에 몸에 밴 주입식 교육 방법으로 공식만 던져주려던 내 모습도 떠올랐다. 내가 자랄 때 아쉬웠던 건 채워주고 싶고, 내가 못했던 걸 못하면 내 탓이라고 생각하고 응원하는데, 내가 잘했던 걸 못하면 일단 이해 못 하는 나의 태도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 나의 설명이 생략도 많았을 테고, 거기다 아들이 잘 못하는 한국어로 설명했으니, 어쩌면 수학문제보단 언어 때문에 더 알아듣지 못한 걸 수도 있다. 그 와중에 결국 문제풀이를 이해한 아들이 새삼 대견하다. 까먹지 말고 아들이 푼 문제가 초등학생 문제가 아니고 중학생 문제라는 걸 알려줘야겠다. 재미 삼아 가끔 그 문제집에서 한 문제씩 아들과 함께 풀어야겠다. 아들이 싫어하려나?


오빠 수학공부하는데 자기도 하고 싶다던 딸에게 1부터 10까지 더하는 연산문제를 내줬더니, 딸은 예상대로 차례로 덧셈을 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일일이 더하는 걸 쓰면서 하지 않고 눈으로 머릿속으로 수를 더해서 정답을 말했다. 1부터 20까지 더하는 연산을 시키니 딸은 그제야 적으면서 계산했다. 아들에게 설명했던 것처럼 좀 더 쉽게 더하는 법을 보여줬지만, 딸은 꿋꿋하게 쓰인 순서대로 덧셈을 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이라 아직 어려운 개념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이러든 저러든 답을 구하는 딸이 마냥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 와중에 자기가 배운 걸 딸에게 설명하려는 아들도 사랑스럽기 만찬가지였지만, 딸은 오빠의 설명은 듣지 않고 문제를 다 풀었다며 자리를 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성장검사, 그리고 일찍 일어나는 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