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뭐고 봄이나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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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20분 알람이 울리면 좀비처럼 일어나 아이들 아침을 준비한다. 그 와중에 커튼을 열면 어둑했던 집에 빛이 스며든다. 그 빛의 밝기에 따라 기분이 바뀐다. 3월 20일에는 커튼을 열었는데도 집안이 밝아지지 않았다. 온 세상이 회색빛으로 보이는 창밖 풍경에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핀란드에 봄은 언제 오는 걸까? 봄이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풍경에 마음이 우울해졌다. 그런데 내 페이스북 피드에서 핀란드가 6년 연속 행복한 나라 1위를 했다고 떠들어댄다.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아이들의 평화로운 아침을 위해 참았다. 그나마 다음날인 21일 아침에는 커튼을 열었을 때 햇빛을 보았다. 기분이 좋아지면서 전날이 떠올랐다. 맑은 날 핀란드가 행복한 나라라는 뉴스를 접했다면 조금은 수긍할 수 있었을 텐데... 다른 사람들은 이 뉴스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궁금해서 찾아봤다.
핀란드 국영방송사인 YLE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핀란드가 6년 연속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기사 링크 포스트를 찾아 댓글을 확인해 봤다. 핀란드어 기사의 댓글(398)은 번역기를 돌려 일일이 거의 다 확인해 봤고, 영문기사 댓글(544)은 지쳐서 훑어보는 수준으로 확인했다. 핀란드어 기사의 댓글이 영문기사 댓글보다 부정적 반응이 월등히 많았다. 그러나 영문기사의 댓글도 부정적인 댓글이 적지 않았다. 아마도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댓글을 달아서일 것이다. 특히, 핀란드 사람들은 아주 큰 불만이 없는 한 가만히 있는 성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사에 동의하는 대부분의 핀란드 사람들은 기사를 접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반응의 전부였을 것이다.
행복한 나라가 아니라며 불만을 제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사의 제목만 봤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준이 머냐부터 정부나 국회가 답한 것일 거라는 추측이 보였다. 복지국가라고 그냥 행복한 나라라고 믿는 거 아니냐는 주장도 있었다. 국회위원 선거철이라 그런지 극우가 판을 치고 있어 행복과 멀어지고 있다는 정치와 연관된 댓글도 꽤 눈에 띄었다. 핀란드 뉴스도 안 살펴보냐는 비아냥도 있었다. 정신건강, 자살률, 약물문제, 소득격차, 빈곤문제, 인플레이션 등 핀란드 사회문제들을 나열하며 행복한 나라일리 없다는 사람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기사를 읽었거나 행복보고서의 기준을 이해한 사람들 중 일부는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들에게 기사를 읽어보라고 권유했다. 행복보고서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란 개개인의 행복을 논하는 게 아니라, 개개인이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다거나, 사회구성원들이 가장 덜 불행하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같은 관점에서 착각을 일으키는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용어를 고칠 필요가 언급되었다. 무료교육, 쉬운 의료접근성, 깨끗한 자연, 좋은 치안, 신뢰할 수 있는 정부 등을 언급하며 삶의 질 측면을 강조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주 긍정적인 반응은 매우 드물었는데, 가난하지 않고 건강해서 아름다운 자연을 누리며 사는 게 행복하다는 사람이 있었다. 불행한 사람들이 이미 자살해서 행복한 사람만 남았다, 더 행복한 나라로 가겠다는 꿈을 꿀 수 없어서 슬프다, 다른 나라는 얼마나 나쁘길래..., 핀란드 사람들이 자잘한 불평을 하지 않아서 행복하다고 착각한 것 같다, 행복한 나라인데 왜 인력부족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지 궁금해하는 등의 매우 핀란드스러운 흥미로운 반응들이 눈에 띄었다. 작년 조사에 답했던 사람이라는 댓글도 있었다. 그 당시 실업자였고, 아이가 둘이나 있는 한부모 가장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삶에 만족한다며 젊었을 때 해외살이가 다른 곳의 삶을 예상하게 해 줘서 더 만족할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댓글로 보면, 6년 연속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결과에 기뻐하는 사람보단 부정직인 사람이 많은데 이유가 뭘까? 개인적으로는 이 결과가 발표되는 시점의 날씨를 탓하고 싶다. 행복보고서가 어떤 기준으로 작성되는지 아는 나조차도, 봄이 절대 올 거 같지 않은 날씨에 행복한 나라라는 소식이 약 올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름에 이 소식을 접했다면 수긍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을 것 같다. 사람의 행복에 날씨가 상당히 중요하다는 걸 한국을 떠나고서야, 영국과 핀란드 같이 어둡고 흐린 날이 많은 나라들에 살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핀란드는 어둡고 긴 겨울 탓에 계절성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상당하며, 이것이 핀란드의 정신건강 관련 사회문제의 원인이기도 하다. 한국은 날씨에 있어서는 예전보다 나빠졌지만,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행복이라는 단어가 일으키는 착각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행복보고서, 가장 행복한 나라 등의 용어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이런저런 말이 많더라도 행복보고서 기준으로 핀란드가 6년 연속으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선정된 이유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핀란드도 사람 사는 곳이기에 다른 나라처럼 여러 사회문제로 시름하기도 하지만 사회적 안전망이 두텁고 단단해서 삶의 나락으로 떨어질 확률이 적고, 무료교육을 통해 누구나 다양한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점은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것이다.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는 하지만, 금전적, 신체적, 또는 정신적 삶의 고비에서 다시 일어서기를 기다려주고 지지해 주는 사회가 아니라면, 생존만 생각하다가 행복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는 이들이 다수 생길 수도 있다.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 가능성이 있는 핀란드처럼 한국도 한국 나름의 방법으로 행복의 가능성이 많은 사회로 변화되었으면 한다.
"Most folks are as happy as they make up their minds to be."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려있어."
- Abraham Lincol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