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남에게 주는 건 괜찮지만, 타인의 친절은 부담스러운 핀란드 사람들
지난 토요일, 아이들이 어린이 체스대회에 참여했다. 청소를 위해 나는 점심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아이들과 대회 끝까지 함께 했다. 아들은 A그룹에서 금메달을, 딸은 D그룹에서 5번의 경기에서 2승을 거두는 걸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경기 후 중고체스물품 나눔이 있었다. 딸은 거기서 아주 작은 체스세트를 얻었다. 나눔 행사와는 별개로 딸은 원하던 체스판이 그려진 머그컵도 얻었다.
그전 대회에서 머그컵을 사달라던 딸의 부탁에 다음에 사주겠다고 약속했던 그였다. 약속대로 머그컵을 사주려 했는데, 현금이 없었다. 모바일페이로 컵값 5유로를 지불하려 했지만, 운영자가 대회를 정리하는 마당에 모바일페이를 신경 쓰는 게 싫었나 보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라 모바일페이가 익숙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운영자가 딸이 귀여우니 머그컵을 그냥 가져가라 해서 딸은 머그컵을 공짜로 얻었다. 무뚝뚝한 핀란드인들이 의외로 타인에게 특히 어린아이에게는 잘 베푸는 편이다. 그런데 타인의 친절은 상당히 부담스러워하는 편이다. 물론 어린아이들은 예외다.
어느 토요일, 아이들이 한글학교 수업을 듣는 동안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날따라 그 카페는 카드결제가 되지 않았다. 기계가 일시적으로 고장이 났던 것 같다. 현금이나 모바일페이만 가능해서 카드만 들고 왔던 한 남자가 주문을 포기하고 카페를 나서고 있었다. 뒤에 서있던 사람이 그가 허탕 치는 게 안타까웠던지 커피값을 대신 내주겠다고 했다. 카드만 있던 남자는 그 친절을 어색하게 거절하며, 다른 곳에서 커피를 사면 된다며 카페를 나섰다. 그냥 웃으며 고맙다고 하고 커피를 얻어 마셔도 될 것 같았는데...
예전에 그가 집 근처 슈퍼에서 지갑을 깜빡한 할머니를 대신해서 물건값을 계산한 적이 있다. 금액이 얼마 되지 않아 할머니의 번거로움을 덜어드리고 싶어서 한 일이었다. 그는 물건값을 돌려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기분 좋게 돌려받게 되었다. 그의 도움을 받았던 할머니가 물건값을 돌려달라며 물건값이 든 봉투를 슈퍼에 맡겨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베푼 친절이었는데, 신세를 꼭 갚으려 애쓴 할머니의 행동이 귀여웠다.
핀란드 사람들은 친절에 인색하지 않다. 평소에는 개인공간을 존중한다고 절대 관심 없는척하지만, 친절을 베푸는 데는 망설임이 별로 없다. 사실 부담스러울까 봐 망설이는 사람도 있다. 부담이 되는 금액이 아니라면, 타인을 위해 지갑을 여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체스컵값이나 커피값, 얼마 되지 않는 물건값 등을 받지 않거나 대신 지불해 주려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은 이런 친절을 망설임 없이 즐겁게 받아들인다. 부모도 아이에게 향한 친절은 쉽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어른들은 타인의 친절을 아이들처럼 맘 편히 받아들이지 않고 불편해하는 편이다. 상황상 어쩔 수 없이 친절을 받아들였다면 그걸 최대한 돌려주려 애쓴다. 슈퍼의 지갑을 깜빡한 할머니처럼 말이다.
한국인 지인이 주고 간 에스프레소 머신을 핀란드 친구에게 준 적이 있다. 커피를 안 마시는 우리에겐 짐이었고 커피를 즐기는 핀란드 친구에겐 쓸모가 있을 것 같아 덥석 주었는데, 친구는 기계값을 얼마를 쳐주면 좋겠냐고 내게 물었다. 친구 사이에 그런 질문은 하면 안 된다며 상황을 넘겼지만, 종종 비슷한 상황을 처하곤 한다. 친절을 베푸는 것엔 인색하지 않으면서 왜 타인의 친절을 부담스러워하는지? 이 맛에 핀란드에서 사는 게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