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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Mar 24. 2023

대화가 가능한 아들과 딸

운 좋게 내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아이들을 만난 것 같다. 

배경 이미지 출처: Pexels



얼마 전 오랜만에 절친을 만났다. 이런저런 친구들이 이곳저곳에 있지만, 가장 가까이에 변함없이 오랜 시간을 함께 해서인지, 안 만나면 상당히 허전한 친구다. 게다가 아들의 대모이기도 하다. 머릿니, 요충, 세탁기와 밥솥 고장 등의 일로 2월이 슝가고 나니, 지쳤던지 3월 초엔 감기가 걸려 한동안 집에만 머물렀다. 그래서 친구를 2달 만에 겨우 만났다. 2달간의 밀린 대화를 나누다 친구가 나는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오래전 아이들과 나의 일화를 언급했다. 대화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어린 내 아이들에게 이러저러하니 그건 안된다고 말했는데,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던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나는 친구에게 좋게 하지 말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엄마의 험악한 폭풍 잔소리를 겪어야 하니, 그냥 좋게 말할 때 들어주는 게 편해서 그럴 거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친구는 그래도 그렇게 얌전히 대화가 된다는 게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문득 예전 일이 하나 떠올랐다.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나 유치원생 때 일이다. 토요일 한글학교에 갔다가 눈 쌓인 놀이터 언덕에서 아래로 썰매를 타며 놀고 있었다. 놀이터에 있던 책받침과 비슷한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데, 썰매가 너무 잘 미끄러져서 아들이 다칠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아들에게 위험해 보이니 썰매 없이 그냥 엉덩이로 눈 위 미끄럼을 즐기라 했고, 아들은 바로 썰매를 버리고 미끄럼을 탔다. 한 겨울이라 방수 기능이 좋은 방한복을 입었던 터라 그냥 썰매 없이 언덕 위에서 눈 위를 미끄러워 내려와도 괜찮았다. 그때 옆에 있던 다른 학부모가 어떻게 아들과 그렇게 교양 있는(civilized) 대화가 가능하냐며 감탄했다. 썰매를 타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고 위험해 보이니, 위험한 요소를 제거하고 썰매를 즐기라고 했는데, 거기에 굳이 싫다고 할 이유가 있나 싶어 난 오히려 그 학부모의 반응이 의아했다. 내 아들이 특별한 건가? 나에게 평범한 일상이었는데, 그 학부모의 교양 있는 대화라는 말 덕에 대화가 가능한 어린 아들이라는 추억이 남았다.


내 아이들이 내 말을 매번 다 잘 들어주진 않지만,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 보면 내 의견을 잘 들어주는 편이다. 왜 그럴까? 하지 말라는 말을 아예 안 하는 건 아니지만, 덮어놓고 안 돼라곤 하지 않아서 그렇지 않을까? 게임을 좋아하는 아들에게 나는 게임을 하지 말라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숙제, 체스 연습, 한국어 드라마 보기 등등 해야 할 일을 하고 게임을 즐기되 때때로 눈을 쉬게 해줘야 한다는 정도의 조언을 할 뿐이다. 잠들기 전, 과자가 먹고 싶다고 칭얼대는 딸에게 양치를 할 시간이니 지금은 안되지만, 내일 간식으로 챙겨 먹으라고 대안을 제시해 준다. 그러면 딸은 수긍한다. 어차피 거기서 우겨봐야 그냥 먹지 말라는 말이 튀어나와 상황이 악화되기만 한다. 기본 원칙이 있고, 그 원칙을 지켜주면 적당한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해줘서 아이들이 나나 그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아이들이 울거나 의기소침해 있으면 진정한 뒤 자신의 상황이나 감정을 설명해 달라고 대화를 유도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인다. 타당한 주장에 동의해 주고, 서운한 상황에 대해서는 상대방의 입장도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해선 사과도 한다. 욱하는 성격 탓에 과하게 화를 낼 때가 많아서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편이다. 약속을 할 때도 꼭이라는 말보다는 가능하면 해주겠다던가 깜빡할 수도 있으니 잊은 것 같으면 상기시켜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어른이라 다 할 수 있다기보다는 함께 해야 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삶의 모습과 태도가 모인 덕에 아이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하지마에 대해 쉽게 수긍하는 것 같다. 아니면 내가 운 좋게 천성이 순한 아이들을 만난 걸 수도 있다. 부모가 애써도 힘든 아이들이 있으니 그런 점에서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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